나는 아직 내 인생의 옆모습을 보지 못했다

슬링키로 생각해 본 시간과 실패

by할롬

봄학기가 되면 나는 막내딸에게 슬링키를 빌린다. 알록달록한 나선 모양의 장난감으로, 계단 위에 올려놓으면 몸을 구부렸다 펴면서 한 계단씩 스스로 내려오기도 한다.

“엄마 수업에 이것 좀 가져갈게.”

그러면 딸은 꼭 묻는다. “대학생들이 이걸로 배운다고요?”

자기 장난감이 대학 강의에 쓰인다는 사실이 꽤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나는 실제로 슬링키를 들고 교실에 간다. 쭉 잡아 늘이면 긴 나선이 된다. 한쪽 끝에서 시작해 철사를 따라가면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학생들에게 우리가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온다. 하루 다음에 또 하루가 오고, 한 해가 지나면 다음 해가 온다. 우리는 슬링키의 철사를 따라가듯 시간이라는 한 방향을 따라 살아간다.

그런데 슬링키를 꾹 눌러 위에서 보면 전혀 다른 모양이 나타난다. 길었던 나선은 사라지고 하나의 원처럼 보인다. 이번에는 옆에서 보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인파가 된다. 이 장난감으로 학생들에게 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학에서도 그렇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신호를 그대로 바라보는 대신, 그 안에 어떤 주기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보는 주파수 영역(frequency domain)으로 옮겨 볼 수 있다. 같은 현상인데 바라보는 좌표가 달라진다. 나는 이 대목을 가르칠 때마다 성경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읽었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빨리 간다는 말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슬링키를 손에 들고 있다가 이 대목이 훅 들어왔다. 시간 안에서 사는 존재와 시간을 밖에서 바라볼 수 있는 존재에게 시간은 과연 똑같이 보일까.

우리는 시간을 한 방향으로밖에 경험하지 못한다. 지나간 어제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미리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이 방식이 시간의 유일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다. 영화 [Arrival] (한국제목: 컨택트)의 원작이다. 이야기 속 언어학자는 지구에 온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면서 그들에게 시간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차례차례 흘러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외계인이 먹물을 허공에 뿌린 듯 둥근 문자로 보여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글자씩 써가는 우리의 문장과 달리, 문장을 시작하는 순간 이미 끝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글자다. 나는 그 둥근 문자를 보면서 엉뚱하게도 딸에게 빌려온 슬링키를 떠올리며 감독의 비주얼 선택이 탁월했다고 혼자 손뼉 쳤다.

물론 주파수 영역이 미래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공학이 하나님의 시간을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흥미롭게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산다. 그래서 오늘의 실패는 너무 크고, 지금의 기다림은 너무 길다. 지금 실패라고 부르는 일이 십 년 뒤에도 실패일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결국 어디에 쓰일지 우리는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내 삶에도, 그 순간에는 결론처럼 보였지만 나중에는 한 장면에 불과했던 일들이 많다.

나는 초등학교 때 모든 달리기에서 항상 꼴찌였다. 그게 너무 지겨워서 6학년 마지막 운동회 때는 앞의 아이가 넘어져서라도 꼴찌를 면하고 싶었다. 달리기가 시작되자 내 앞에 가는 아이의 등을 뚫어지게 보면서 달렸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런 요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몇십 년이 지난 후 대학 교내 5킬로 달리기에서 여자 부분 1등을 했다. 운동을 지지리도 못하는 아이가 내 이야기의 끝은 아니었다.

슬링키를 위에서 보면 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옆에서 보면 한 바퀴를 돌 때마다 한 칸씩 올라가 있다. 나는 여전히 이 나선을 한 칸씩 걸을 수밖에 없다. 다만 지금 내가 제자리를 도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어쩌면 아직 옆에서 본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수업을 끝내고 슬링키를 딸아이에게 돌려주었다. 대학생들이 자기 장난감으로 배웠다는 사실에 신나 있었다. “또 뭐 필요한 것 없어요?”

그러면 다음에 장난감 다이아몬드를 빌릴 수 있냐고 물어본다. 열전달 수업에, 전도도가 가장 높은 물질로 꼽히는 다이아몬드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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