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람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by김상범

멘토링 프로그램 첫 만남. 삼십 대 초반의 창업가 앞에서, 당신은 25년간 은행 지점을 운영하며 겪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가장 극적이었던 순간부터 골라 말한다. 외환위기 때 부도 직전 기업을 살린 일, 무리한 대출을 막아 지점을 지킨 일.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고, 젊은 창업가의 표정에서 뭔가 어긋나 있다는 게 읽힌다.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 정작 자신의 고민은 한 번도 꺼내지 못했다. 헤어질 때 그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지만,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앞서 35장에서 우리는 나눔을 마지막 자산이라 불렀다. 그런데 정작 무엇을 나눌지 물으면, 대부분은 ‘내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라 답한다. 이 대답은 절반만 맞다. 경험담은 나누는 사람에게는 뿌듯하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종종 쓸모가 없다. 상황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무엇보다 듣는 사람이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모른 채 던져지기 때문이다. 후배는 존중하는 마음으로 듣지만, 정작 자기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는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미국의 조직행동학자 캐시 크램(Kathy E. Kram)은 1985년 『Mentoring at Work』에서, 멘토링을 두 가지 기능으로 나눴다. 경력 기능(career function)과 심리슬롯적 기능(psychosocial function)이다. 경력 기능은 후원, 노출, 코칭처럼 상대의 실제 경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도움이다. 인맥을 연결해 주거나, 기회가 될 자리에 이름을 올려주거나, 지금 막힌 구체적인 문제를 함께 풀어주는 일이다. 심리슬롯적 기능은 역할모델, 수용, 상담처럼 상대의 정체성과 자신감을 지지하는 도움이다. 조언을 앞세우기보다, 상대가 지금 겪는 불안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주는 역할에 가깝다. 크램은 미국 기업 여러 곳의 멘토-멘티 관계를 오랫동안 관찰한 끝에 이 틀을 정리했다. 그가 만난 성공적인 멘토들은 예외 없이 두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었다. 조언만 하는 멘토는 정서적으로는 따뜻했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했고, 인맥과 기회만 연결해 주는 멘토는 효율적이었지만 관계가 오래가지 못했다. 크램은 이 두 기능이 함께 작동해야 멘토링이 실제로 효과를 낸다고 봤다. 하나만 있으면 반쪽짜리다.


경험담은 이 두 기능 어디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 화자에게는 의미 있는 이야기지만, 청자의 경력에 구체적으로 연결되지도 않고, 청자의 지금 불안을 직접 다루지도 않는다. 그저 ‘옛날에 나는’으로 시작하는 독백에 머무를 뿐이다.


멘토링을 꺼리는 4050에게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내가 줄 게 뭐가 있나?’라는 생각이다. 젊은 세대는 기술도 빠르고, 정보도 넘쳐난다. 내가 아는 걸 그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 같다. 겸손해서 하는 생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음 세대를 위한 기회 하나가 그대로 묻히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생각은 착각이다. 젊은 세대에게 부족한 건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 속에서 무엇이 진짜 위험하고 무엇이 괜찮은지를 가늠하는 감각이다. 이 감각은 검색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수십 년의 판단이 쌓여야 생긴다. 문제는 그 감각을 어떻게 전할지 모른다는 데 있을 뿐, 감각 자체가 없는 게 아니다.


그날 저녁, M씨는 첫 만남을 곱씹으며 며칠을 고민했다. 삼십 년 가까이 지점을 옮겨 다니며 수많은 후배들을 가르쳐 온 사람이었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다는 느낌은 분명했지만, 정확히 무엇이 부족했는지는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방법을 바꿨다. 준비해 온 이야기 목록을 접어두고, 질문 하나로 시작했다. “지금 가장 막힌 게 뭡니까?”


창업가는 그제야 진짜 고민을 꺼냈다. 초기 투자자를 설득할 때, 리스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질문 하나로 분위기가 바뀌는 걸 지켜보며, M씨는 그 순간 자신이 진짜 가진 게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25년간 심사해 온 리스크 평가 기준, 그리고 지금도 연락이 닿는 몇몇 투자 심사역이었다. 첫 만남에서 늘어놓았던 부도 기업 이야기는, 정작 이 두 가지에 비하면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날부터 M씨의 멘토링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경력 기능으로는, 창업가의 사업계획서에서 투자자가 가장 먼저 의심할 지점을 함께 골라내고, 그 부분을 밤새 고쳐 다시 검토했다. 그다음, 예전 동료였던 투자 심사역 한 명에게 직접 연락해 만남을 주선했다. 소개 한 통이었지만, 그 자리는 창업가 혼자였다면 몇 달을 기다려도 얻기 힘든 자리였다.


심리슬롯적 기능으로는, 투자 유치가 늦어질 때마다 밤늦게 걸려오는 창업가의 전화를 피하지 않고 받아, 그가 느끼는 불안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었다. “저도 그 나이에 대출 승인 하나 때문에 밤을 새운 적이 많습니다.” 이 한마디가, 어떤 조언보다 창업가를 안심시켰다. 리스크를 계산하는 법을 가르쳐준 것보다, 그 불안이 특별한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준 것이 더 오래 남았다.


석 달 뒤, 창업가는 첫 투자를 유치했다. 그날 저녁,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은 투자자도, 동업자도 아닌 M씨였다. 간단한 저녁 자리를 마련해 축하 인사를 나눴다. 창업가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해주신 이야기들은 사실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런데 사업계획서 같이 고쳐주신 날이랑, 밤새 불안하다고 했을 때 들어주신 건 잊을 수가 없어요.” 전화기 너머 창업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M씨는 그제야 첫 만남에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이해했다.


부도 기업 이야기는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줬을 뿐, 창업가의 문제를 하나도 풀어주지 못했다. 반면 함께 고친 사업계획서 한 장과, 밤새 나눈 짧은 통화 한 번은 실제로 무언가를 바꿔놓았다. 들려준 게 아니라, 함께한 것이 남았다.


17장과 22장에서 찾은 재능과 시장의 자리는, 여기서 다시 쓰인다. M씨의 재능은 리스크를 읽는 눈이었고, 그 재능이 좁혀진 시장의 자리는 은행 업무가 아니라 초기 창업가의 불안한 순간이었다. 멘토링도 결국 이 두 장에서 다진 원리 위에 서 있다. 막연히 나누는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정확히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는 일이다. 재능을 좁혀 상품으로 만들었던 논리가, 이번에는 후배를 향한다는 점만 다를 뿐 방향은 똑같다. 시장을 향해 던졌던 질문을, 이번에는 다음 사람을 향해 다시 던지는 셈이다.


멘토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점검할 게 있다. 내가 줄 수 있는 경력 기능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내가 줄 수 있는 심리슬롯적 기능은 무엇인가. 둘 다 답할 수 있어야, 비로소 나눌 준비가 된 것이다. 이야기만 준비된 상태로는, 아무리 진심이어도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 진심은 전달 방식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된다.

당장 이 두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면,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이미 멘토링의 시작이다. 경력 기능은 반드시 거창할 필요가 없다. 인맥 한 명, 오래 지켜본 업계 감각 하나면 충분하다. 심리슬롯적 기능도 다르지 않다. 대단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지금 겪는 불안이 유별난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나도 그랬다.”는 한마디로 충분할 때가 많다.


35장이 나눔의 마음가짐을 다뤘다면, 36장은 그 마음가짐을 구체적인 두 가지 기능으로 옮기는 법을 다뤘다. 그런데 이 두 기능을 제대로, 그것도 꾸준히 발휘하려면, 먼저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예전 자리에 그대로 매여 있으면, 시간도 마음도 다음 사람에게 내어줄 몫이 남지 않는다. 자리를 완전히 채우고 있는 사람에게는, 누군가를 위한 빈틈이 생기지 않는다.


37장에서는 이 나눔을 시작하기 위해 먼저 떠나야 할 자리, 불타는 갑판을 다룬다. 자리를 지키려는 마음과,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려는 마음은 같은 시간 안에서 공존하기 어렵다. 물려줄 준비가 됐다면, 이제는 비켜설 차례다.

"들려준 게 아니라, 함께한 것이 남았다."


SELF COACHING

경험은 저절로 자산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의미를 발견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자산이 된다. 잠시 바카라을 덮고, 아래 질문을 통해 나만의 경험을 미래의 기회로 연결해 보자.


① 돌아보기 — 최근 후배나 젊은 사람에게 조언을 건넨 적이 있다면, 그건 경력 기능이었는가? 심리슬롯적 기능이었는가?

② 깨닫기 — 나는 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쪽이었는가? 상대의 질문을 먼저 들었는가?

③ 발견하기 — 내가 지금 다른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연결해 줄 수 있는 인맥이나 기회는 무엇인가?

④ 선택하기 — 지금 멘토링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조언인가 곁에 있어 주는 것인가?

⑤ 실행하기 — 이번 주, 조언 대신 “지금 가장 막힌 게 뭡니까?”라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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