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경윤 147
1.
옛사람들의 피서법에 탁족(濯足)이 있다. '발을 씻는다'라는 뜻인데, 이 말은 행위보다는 장소가 중요하다. '탁족'은 여름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이 좋은 산이나 들에서 발을 씻고 노는 모임을 뜻한다. 옛날에는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었으니, 더위를 피해 자연스레 시원한 바람과 물이 있는 장소를 찾아갔을 것이다.
초나라 굴원의 <어부사>에도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탁족이 흐린 물에 발을 씻었을 리 만무하고, 분명 시원한 물에 발을 담갔을 것이다. 시원한 물에 닿는 것만으로도 몸의 온도가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
물론 모슬포 지근에도 탁족을 할만한 곳이 있다. 안덕계곡 같은 곳은 그늘지고 시원한 물이 흘러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가깝다면 걸어서 다녀오겠지만, 가기도 귀찮고 몸도 말을 안 들을 때에는 시원하게 샤워를 한 후 집 근처 그늘진 벤치에 앉아 시원한 아이스커피나 한 잔 하면서 시집을 읽는다. 왜, 하필 시집이냐? 짧기 때문이다. 더위도 지친 몸이 긴 글을 감당할 수가 없다. 이럴 때는 짧은 시를 읽고 눈을 감고 음미하고 있노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몸도 마음도 회복된다. 탁족보다 더 총체적인 탁신(濯身)이다.
3.
내가 여름에 즐겨 회상하며 읽는 시는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이다. 이 시를 읽으며 몸이 늠름해지고, 마음이 청량해지는 기분이 든다. 좋은 에너지가 뿜뿜이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시원하고 좋은 시로 탁족 해보길 권한다. (암송하면 더욱 좋다. 언제든지 꺼내 읽을 수 있으니!) 전문을 수록한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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