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경윤 97 (2026. 5. 28)
-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연기되는 것이다"
1. UC 버클리의 한 강의실,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
선생님, 안녕하세요.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세계적인 석학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선생님의 바카라, 『젠더 트러블』은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 페미니즘 운동에 엄청난 충격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여성’이라는 범주 자체를 문제 삼으셨는데요. “여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왜 그렇게 중요하고, 또 위험한 질문이 될 수 있는 건가요?
(차분하고 지적인 눈빛으로,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반가워요.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성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페미니즘 운동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가장 큰 딜레마를 안고 있는 질문입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운동이죠. 그런데 그러려면 먼저 ‘여성’이 누구인지, 그 공통된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규정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여성은 이러이러한 존재다’라고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그 규정의 틀에 맞지 않는 수많은 여성들을 배제하게 될 위험에 빠집니다. 예를 들어,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존재다’라고 정의한다면,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을 수 없는 여성들은 어떻게 되나요? ‘여성은 부드럽고 감성적이다’라고 정의한다면, 그렇지 않은 여성들은 ‘진정한 여성’이 아니게 되는 걸까요?
‘여성’이라는 단일하고 보편적인 정체성을 상정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종류의 ‘억압’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바로 이 ‘여성’이라는 범주가 가진 숨겨진 폭력성과 배제의 문제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뭉치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억압을 낳을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정말 중요한 지적이네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성(sex)’과 ‘젠더(gender)’를 어떻게 구분하시나요? 이 구분이 선생님 철학의 핵심적인 출발점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전통적인 페미니즘은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섹스(sex)’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생물학적인 성, 즉 남성의 몸이냐 여성의 몸이냐 하는 자연적인 사실이라고 보았죠. 반면 ‘젠더(gender)’는 슬롯가 우리에게 ‘너는 남자니까 씩씩해야 해’, ‘너는 여자니까 얌전해야 해’라고 가르치는 슬롯적, 문화적인 성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가 남긴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바로 이 구분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생물학적인 여성(sex)으로 태어났지만, 슬롯에 의해 ‘여성성(gender)’을 강요받는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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