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경윤 91 (2026. 5. 19.)
철 지난 사장沙場에 꽂아둔 일산日傘처럼 세월의 더깨에 비스듬해지는 입추 가까운 볕, 손꼽아 기다리던 러브레터처럼 계절의 배달부에 실려 느릿느릿 밀려왔다 멀어지는 하오의 금빛 바람. 산정山頂 이만 피트, 희박한 공기 사이로 떨어지는 새벽 유성들처럼 잊을 만하면 귓바퀴를 울리며 들리는 송장까마귀 울음소리. 나는 지금 혈혈단신 잉크 냄새 빳빳한 새 교과서보다 낯선 지방을 더듬고 있는 중이다. 여름 햇살은 벌써 북녘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해 성하盛夏의 비냄새를 잊어버린 지도 이십여 일이나 지났다. 이곳은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고 다만 오후 두 시의 초침처럼 한없이 늘어지는 시간만이 게으른 울음을 토할 뿐이다.
주머니에 모아둔 날이 많지 않은 나 같은 늙은이가 영속하는 길은 남은 시간을 한없이 쪼개는 일. 묵직해진 남은 날을 생각하며 또박또박 200자 원고지에 철필을 긁적이듯 정문에서 느린 삼백여 걸음. 세 명의 사내가 미루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듬지에 삶과 죽음과 눈물과 회한의 사연이 적혀 있다는 듯이 사뭇 망연자실해서. 수은주를 한껏 팽창시킨 날씨 탓에 늘어질 대로 늘어진 순간과 순간 그 사이에 끼여버린 사람처럼 그들은 좀체 미동조차 않는다. (105~106)
- <두번째 이야기 : 잃어버린 꽃>의 앞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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