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식에는 시공간을 넘어 거친 손으로 나를 이끄는 듯한 힘이 있었다.
얼마 전 가족들과 강릉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두부였다. 정확히는 단골 두부집이다.
나의 고향은 강원도 강릉이다. 강릉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군 복무까지 그곳에서 보냈기에 스스로 강릉을 고향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당시 강릉에서는 남동생,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아버지는 몇 주에 한 번씩 인천에서 내려오셨다.
아버지가 오시는 날에는 우리 가족만의 루틴이 있었다. 먼저 경포대 근처 해수사우나에 들러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때를 밀었다. 목욕을 마치면 선교장 근처 단골 두부집으로 향해 두부전골을 먹었다. 그러고는 경포 호수를 한 바퀴 산바카라한 뒤, 대형마트에 들러 몇 주간 먹을 장을 봤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시작된 이 일상은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가고 가족 모두가 인천으로 떠나기 전까지, 적어도 10년간 이어졌다.
25년 전부터 다녔던, 10년의 추억이 담긴 그 단골 가게를 15년 만에 다시 찾았다. 우연히 위치를 옮겨 여전히 영업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아버지와 남동생뿐만 아니라 나의 아내, 아이도 함께였다. 가게 사장님은 아버지를 단번에 알아보고는 '왜 이리 오랜만에 오셨냐'며 마치 몇 달 만에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맞아주셨다. 물론 나와 동생은 알아보지 못하셨다. 우리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었고,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너무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이곳은 초당두부마을의 원조격이었던 고분옥 할머니의 셋째 딸이 운영하는 가게다. 고분옥 할머니의 가게는 늘 손님으로 북적였지만, 맛이 크게 다르지 않은 셋째 딸의 가게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우리가 매번 이 가게를 찾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분옥 할머니의 두부집은 사라졌고, 셋째 딸의 가게 역시 선교장에서 주택가로 자리를 옮겼다.
이 집의 메뉴는 딱 세 가지다.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두부전골, 모두부, 순두부. 우리는 두부전골과 모두부를 주문했다. 정육면체 모양의 모두부는 물기 없이 단단하고 투박했고, 맛은 삼삼하고 담백했다. 함께 나온 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콩의 진한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두부전골은 독특했다. 두부와 파채, 팽이버섯만 들어가 있는데도 국물에서는 푹 익은 묵은지 특유의 칼칼함과 시원함이 느껴졌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그 맛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골이 나오자 우리 가족은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나는 음식을 남김없이 비워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들었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맛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두부전골을 먹는 동안 나는 순식간에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이 음식에는 시공간을 넘어 거친 손으로 나를 이끄는 듯한 강렬한 힘이 있었다. 그 맛 속에는 당시 내가 느꼈던 혼란과 원망, 바카라임감과 안도감 같은 여러 감정이 엉켜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 두부전골의 맛을 온전히 순수하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지도 모르겠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설 때는 명절을 보내고 친척 집을 떠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 한편이 가볍고 개운하면서도 시원섭섭했다. 사장님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표현이 서툴고 무뚝뚝한 강릉 어른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도, 오랜 단골을 향한 반가움과 고마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강릉을 떠난 후에도 종종 강릉을 찾았지만, '고향에 돌아왔다'는 실감을 한 적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두부전골을 먹으며 나는 비로소 고향에 왔음을 느꼈다. 강릉을 떠난 이래 나는 줄곧 변화와 성장을 목표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25년 동안 한결같이 맛을 지켜온 그 가게에서, 나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