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마음

아이의 질문 속을 헤엄치며 진짜 어른의 마음을 배워간다

by윤성용

세 돌이 조금 지난 딸이 있다. 아이의 꿈은 ‘이모’가 되는 것이다. 쑥쑥 자라서 이모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단다. 어서 자동차도 운전하고, 탄산이 잔뜩 들어있는 따가운 주스도 마시고, 빨갛고 매운 김치도 먹고, 요리도 하고, 아이돌 언니들처럼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게 아이의 소망이다.


‘지금이 제일 좋을 때야’라는 고루한 말은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나 또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 테고, 어른들로부터 수없이 들었을 그 말이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음은 자명하니까. 대신에 나는 “그래, 잘 먹고 잘 자면 금방 쑥쑥 자랄 거야. 엄마보다 더 커질걸?” 하고 말해준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이 아빠보다도 클 수 있는지 묻는다. “아빠만큼 클 수는 없을걸?” 하고 답하면, 아이는 다시 “왜 아빠보다 클 수 없어?” 하고 되묻는다. 나보다 키가 훌쩍 커진 아이를 올려다보는 상상을 하니 괜히 기분이 묘해졌다. “글쎄. 그래도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질 수는 있겠다”라고 농담을 던지니,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이는 요새 궁금한 게 참 많다. 무엇이든 “왜?”라고 묻고 나름대로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아직은 뜻대로 잘 안되는 모양이다. 어쩌면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어제는 아이가 느닷없이 물었다. “아빠, 마음이 뭐야?” 아내와 대화하던 중에 나온 ‘마음’이라는 단어가 아이의 귀에 걸렸나 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득해졌다.


“마음은 있잖아, 눈에 안 보여. 이 안에 숨어 있거든. 그래서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줘야 해. 예를 들어 친구가 막대사탕을 먹고 있으면 ‘나도 저 사탕이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그러면 아빠는 슬이가 말하지 않아도 ‘아, 슬이가 사탕을 먹고 싶구나’ 하고 알 수 있어. 마음은 눈에 안 보이지만, 사랑하는 사람 눈에는 더 잘 보이는 법이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어?”

“모르겠어.”

“응, 아직 몰라도 돼.”

“여기에 있어?” 아이가 배를 가리키며 묻는다.

“아니, 여기에 있는 거야.”


나는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을 포개어 아이의 가슴팍에 가만히 얹어준다. 부드러운 옷감과 얇은 피부 아래로 콩닥거리는 심장 박동이 전해졌다. 따뜻했다. 아이는 가만히 제 가슴을 쓸어보다가 이내 딴소리를 늘어놓는다.


“나는 엄마 뱃속에 있었대.”

“그래, 맞아.”

“근데 뿅 하고 나왔대.”

“응.”

“근데 왜 뱃속에 있었어?”


질문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는 아이의 귀에 대고 “그건 비밀이야. 이모가 되면 알 수 있어” 하고 속삭인다. 아이는 “왜 비밀이야?” 하고 묻고, 나는 장난스럽게 “아빠 마음이야” 하고 받아친다. 그러자 아이는 손을 뻗어 내 가슴팍을 가만히 만져본다. 마치 내 마음이 어떤 모양인지 느껴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이제 아이는 마음이란 ‘잘은 모르지만 가슴속에 숨어 있는 무언가’로 기억한다.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진다. 정작 어른인 나는, 내가 잘 이해하고 있지도 못한 언어들을 마치 다 안다는 듯 너무 쉽게 쓰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아이의 끊임없는 “왜?”라는 질문은 늘 나를 멈춰 세운다. 그리고 익숙해서 무뎌졌던 세상의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천천히 뜯어보게 만든다. 아이가 쑥쑥 자라는 동안, 나 역시 아이의 질문 속을 헤엄치며 ‘진짜 어른’의 마음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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