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 생일에 친구들로부터 받은 선물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바로 애플망고였다. 호불호나 만족도를 바교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정말 ‘인상 깊은’ 선물이다.
같은 선물을 두 개나 받았는데, 하나는 신입사원 때 제주도 여행을 같이 간 선배가 보내줬다. 그때 제주도에서 내가 망고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며 보내준 선물에 마음이 뭉클했다. 다른 하나는 남동생이 보내줬다. 평소 생일이면 서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오만 원 정도를 보내주곤 했는데, 이렇게 선물을 보내준 것은 낯설었다. 그것도 하필 나에게 각별한 망고라니? 어쩌다 망고를 보내준 건지 궁금했지만 귀찮아서 더 묻진 않았다.
망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내가 동남아를 좋아하는 이유의 20% 정도는 망고가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망고는 내가 유일하게 가진 알러지다. 망고를 먹으면 입 주변에 수포가 올라오고 눈이 부어서, 급기야 현지 병원을 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망고는 포기할 수 없어요. 동남아 여행을 갈 때면 나는 과도와 비닐장갑과 알레르기약을 꼭 챙겨 간다. 망고를 향한 내 사랑은 알러지 따위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먼저 종프가 보낸 애플망고를 받고 놀랐다. 박스에는 내 손바닥만한 애플망고가 네 알 들어 있었다. 선물하기 메인에 떠 있는 베스트 상품이라 약 4만 원이라는 가격을 알게 될 수밖에 없었는데, 겨우 네 알에 4만 원이라니. 얼마 전 과일가게에서 망고 두 알에 만 원에 파는 것도 비싸게 느껴졌는데, 다시 보니 선녀였다. 아직도 나는 돈 쓰는 데에 구질구질한 편이라 과일에 비싼 돈을 쓰는 게 (비록 내 돈이 아닐지라도) 왠지 마음에 켕겼다. 한 알에 만 원, 국밥 한 그릇…이라는 계산이 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동생이 준 망고는 그냥 동생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취소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선물로 보내준 마음이 있을 거다. 내 돈 주고 사기 아까운 것일수록 오히려 선물로 받기 좋은 물건이기도 하다. 그분들 덕분에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야호!
망고는 후숙과일이기 때문에 며칠을 실온에 둬서 말랑해질 때까지 잘 익혀 먹어야 한다. 퇴근하고 오자마자 전자레인지 위에 올려둔 망고들을 살펴보았다. 마치 뭔가가 부화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살뜰히 망고를 챙겼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조금씩 더 말랑해지고 조금씩 단내가 나기 시작하는 망고들을 보니 설렜다. 내일이면 먹어도 될까? 생각하며 잠들기도 했다. 마침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망고의 중심을 비껴간 곳에 과도를 콱 박아 넣고- 속을 쩍 갈라서 노란 속살과 흘러내리는 과즙을 본 순간 심장이 뛰었다. 아 맞다, 나 방금 양치했는데! 혹시 시게 느껴질까봐 고민하면서 칼에 묻은 작은 조각을 먼저 입에 넣은 순간, 과육이 사르르 녹으면서 극강의 단맛이 느껴졌다. 입에 남은 치약향 따위에 묻히지 않는 맛이었다. 순식간에 망고 하나를 다 해치웠다.
망고 한 개가 은근히 양이 되는지, 배가 불렀다. 그러고도 3개나 남았다. 그것들도 하나씩 잘 익혀먹을 생각에 부자가 된 거 같았다. 아니, 그리고 한 상자가 더 오고 있잖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게 설레기도 했다. 올여름에 잠깐 본가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임시보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집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감각은 오랜만이었다. 물론 지금은 망고가 기다리고 있다. 아니, 내가 망고를 만날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걸 수도…
그렇게 며칠을 보내며, 나는 처음 받았을 때 비싸다고 생각했던 망고 가격이 전혀 비싸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망고 한 상자가 내게 준 것은 단순히 망고 네 알이 아니라, 그 네 알이 달콤해지기를 기다리고 한 알씩 까먹는 나날의 설렘과 기쁨이었다. 일상 속에 이런 작은 행복포인트가 있으니, 적어도 이 순간만은 삶의 채도가 확 높아지는 느낌이다.
아, 맛있는 걸 먹는 일은 참 행복한 일이야! 내 옆자리 동료분은 음식의 맛을 잘 못 느껴서, 언젠가 약 한 알로 허기와 영양분을 채울 수 있게 되면 무조건 그 약을 먹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날이 오더라도 맛있는 걸 먹고 싶다. 그 원초적인 감각에 충실한 순간이, 어쩌면 가장 순수하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인 것 같다. 아마 그때가 되면 음식의 가격은 더 높아질까 낮아질까?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가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특권층만 누릴 수 있는 행위가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래도 나 자신한테 망고 몇 날알은 사주면서 살 수 있기를. 나 스스로한테 너무 야박해지지 않기를.
+) 아니나 다를까 며칠 동안 망고를 먹었더니 입술과 인중, 눈 주변에 가렵고 부어오르고 시작했다. 내게 망고 알러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왜 하필 망고일까!!! 하고 슬퍼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당연히 망고여야 할 수도 있겠다. 이토록 큰 기쁨을 느낀다면, 그에 대한 대가는 있어야 할 테니까…^^ 오늘 회사에 가면 사내병원에 들러서 알러지 약을 받아야겠다. 그렇게 내 기쁨의 대가를 겸허히 받아들여야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