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고민

언제나 나와 함께 하는 고민에 대해

by쪼이



얼마 전, 10주 동안 회고를 써서 공유하는 회고모임의 오프라인 행사를 참여했다. 행사 중간에, 3X3 네모칸 각각에 해당하는 미션을 해서 빙고를 채우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각 칸에는 어떠어떠한 사람 3명이 모여서 사진 찍기, 뉴비한테 응원의 메시지 받기, 본인만의 회고 루틴이 있는 사람 찾기 등등의 미션이 있었다. 낯선 사람한테 말 거는 걸 어려워하는 나는 속으로 ‘아 왜 이런 걸 해~~(투정)’을 했으나 돌이켜보니, 그 프로그램이 그날 행사의 킥이었다!

참여자들이 두루두루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취지에 맞게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빙고를 채우던 나는 어떤 단발머리 여자분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 미션 어떤 거 남으셨어요?”하며 서로의 빙고판을 바라보는데, 둘 다 <이번 주 회고 주제 공유하기>라는 미션이 남아 있었다. 이번 주가 바로 또 한 기수가 끝나는 10주 차였다. 나는 속으로 진부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면서 “어, 음… 상반기 회고나, 지난 10주 회고를 하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보며 그분께 되물었다. “XX님은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분이 대답하셨다.


저는 '반려고민'에 대해서 쓸 거예요.



반려고민이요? 항상 함께하는 고민이라는 뜻인가요? 하니 맞다고 대답하셨다. 대표적으로 어떤 것이 있냐고 하니까, 바로 ‘이직’이라고 대답하셨다.


“어, 그런데 이직은 하면 끝나는 고민 아니에요?”

“아, 그러면 그다음 이직을 고민해야죠. 그렇게 항상 이직 고민을 해요.”


음. 솔직히 그때 그 대답을 들었을 때는, 또 이해가 안 됐다. 그럼 대체 언제 그 고민은 끝이 나는 거지…? 계속 미래에 올 더 나은 것을 바라면,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는 항상 만족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그럼 대체 언제 행복해져…? 극도의 현재지향형 인간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또 한 명의 미래지향형 인간을 만난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 메모어에는 이렇게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면서.


그렇게 짧은 대화를 끝내고 돌아선 그분과는 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또 마주쳤다. 공교롭게 옆자리로 배정된 것이다. 어! 하며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생각보다 우리는 통하는 게 많았다. MBTI도 똑같았다. 그날 모임에서 감명 깊었던 부분도 비슷했다. 개발자로 일하면서 AI한테 업무를 시키고 있다는 그녀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와, 저 최근에 바이브코딩 처음 해봤는데, 제 AI가 너무 멍청해요! 그녀는 비개발자들이 바이브코딩을 마주했을 때 흔히 겪는 일이라며 핸드폰을 열어서 해결방법을 AI한테 물어서(ㅋㅋㅋ) 전해주기도 했다. 그런 우리를 보고 맞은편에 앉은 분들이, 우리 둘이 원래 아는 사이냐고 물어보셨다. 그날 처음 본 사이였지만 편했다.


그 자리를 파하면서, 그녀에게 좀 더 질척대고 싶었지만 참았다. 바이브코딩에 대한 내용을 인스타로 주겠냐는 말에 그녀가 슬랙 메시지를 택했기 때문이다. 나도 원래 낯선 사람과는 인스타 친구를 안 맺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녀도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때의 내가 그랬듯 억지로 모든 인연을 이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함께 한 그 시간이 의미 있으면 됐다. 오늘 나는 적어도 바이브코딩에 대한 디버깅 방법은 알아간다,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밤, 회고를 쓰면서 나는 나의 ‘일’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봤다. 사실 이번 회고 기수 내내 나의 목표도 일에 생각을 정리하는 거였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럭저럭, 이런저런 시간들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생각이 정리된 게 느껴졌다. 아아, 나는 모든 문제를 꼭 각 잡고 생각해서 풀어야 한다고 여겼는데 그냥 흘러가는 대로 시간에 맡겨두다 보면 풀리는 것들도 있구나, 싶었다. 아마 지난 10주를 처음 시작할 때의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방향을 못 잡았고, 그래서 회사에서 나의 의의를 찾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필 주변 사람들이 다 워커홀릭이기도 했고. 반면 지금은 미치도록 할게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없다는 부분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럴 때면 새삼… 진짜 신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때 문득, ‘반려고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반려고민. 어쩌면 ‘일’이 나의 반려고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더 나아가서 끊임없이 나의 유용함과 쓸모를 입증하려는 강박이 나의 반려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반려고민’이라는 말이 진정 와닿았다. 고민은 5분만 딱 해서 결론을 내리면 되는데, 왜 계속 끌고 가는지 의아해했던 내가 오만했다. 나의 삶이 유동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내 고민도 함께 출렁이는 거다. 만족과 불만족, 부족과 과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진동하는 게 삶이고 그 사이 어딘가에 항상 함께하는 게 반려고민이다. 지금의 나는 나의 반려고민과 멀어져 있는 상태지만, 또 어느 순간 균형추가 기울게 되면 다시 마주하게 될 수도 있는, 나의 반려고민.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 한 구석이 확 후련해졌다. 모든 고민은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모든 고민은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이 되기도 했다.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세상 모두가 그런 반려고민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좀 더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아마 그분은 모르겠지? 우연히 만난 내가, 본인이 던진 말 하나에 이토록 요동치고 그 단어로 아주 사골국까지 끓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날 회고에서 ‘반려고민’이라는 키워드를 썼다. 그리고 그걸 전체공개 게시판에 올렸다. 다음날 보니, 그분이 댓글을 남겨주셨다. 다음에 또 보자는 말과 함께.


아, 이래서 내가 이런 모임을 못 그만둔다.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또 하나의 무언가를 남긴 만남, 그것만으로도 이미 보석 같은 인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