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 │ 슬롯적 가치 디자인까지 26일
동네 한쪽에 작은 화단이 있습니다.
유명한 조경가가 만든 것도 아니고,
특별히 아름다운 시설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관리가 잘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지나가다 쓰레기를 줍고,
누군가는 꽃이 쓰러지면 세워 놓고,
물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알고 보니 이 화단은
동네 주민들이 함께 만들었다고 합니다.
꽃을 고르고,
흙을 나르고,
어디에 심을지 함께 정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화단이 왜 오래 관리되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공공의 화단’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화단’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전문가를 찾고,
좋은 재료를 고르고,
멋진 결과물을 만듭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건넵니다.
“여러분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잘 만들어 주었는데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조금 서툴러 보여도
사람들이 애착을 갖고 오래 사용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요?
저는 그 이유 중 하나가
‘결과를 받은 사람’과 ‘과정에 참여한 사람’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만들어 준 것은
좋으면 사용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의견을 냈고,
내가 결정에 참여했고,
내 손이 조금이라도 들어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 결과 안에 나의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학교 공간을 생각해 봅니다.
어른들이 모든 것을 결정해서
아주 멋진 공간을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싶어?”
“어떤 색이 좋을까?”
“친구들과 어디에서 이야기하고 싶어?”
아이들의 의견이 실제 공간에 반영되면
그 공간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학교가 만들어 준 공간’에서
‘우리도 함께 만든 공간’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모두 그대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전문가는 안전과 예산,
기능과 지속가능성을 판단해야 합니다.
시민에게 모든 결정을 맡기는 것도 참여디자인의 목적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디자인 과정에 넣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참여를 아주 마지막에 시작합니다.
이미 계획은 거의 끝났는데
설문조사를 합니다.
디자인이 완성된 뒤
선호도를 묻습니다.
A안과 B안을 만들어 놓고
하나를 선택해 달라고 합니다.
물론 이것도 의견수렴입니다.
하지만 정말 ‘함께 디자인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아쉽습니다.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만들어진 답 중 하나를 고르는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참여는 조금 더 앞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만들까요?”보다
“여기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부터 함께 묻는 것입니다.
전문가가 문제를 정해 놓고 해결바카라에 의견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발견하는 과정부터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원을 새롭게 만들려고 했는데
주민들은 새로운 시설보다 그늘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골목을 예쁘게 만들려고 했는데
주민들은 밤길 안전을 먼저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거리를 만들려고 했는데
상인은 물건을 내리고 싣는 공간이 더 시급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가 바라본 문제와
매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문제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여를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방법만으로 보지 않습니다.
참여에는 또 다른 힘이 있습니다.
사람이 결과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들이 만들었대.”
와
“우리가 만들었어.”
두 문장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라는 말이 들어가는 순간
사람은 결과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결과와 관계를 맺은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관계가 생기면
조금 더 관심을 갖습니다.
공공디자인에서는 이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공공의 것은 모두의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아무의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관리하겠지,
누군가 고치겠지,
누군가 치우겠지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면
조금 다른 감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건 우리가 이야기해서 만들어진 거야.”
그 한마디가 공간과 시민의 관계를 바꿉니다.
기업에서도 비슷합니다.
회사가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
멋진 문구를 벽에 붙인다고 해서
직원들이 그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외부 전문가가 완벽하게 만든 열 개의 문장보다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해 만든 한 문장이
더 오래 기억될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도 결국
로고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의미를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을 때 살아 움직입니다.
저는 여기서 디자이너의 역할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디자이너는 좋은 답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슬롯의 복잡한 문제에서는
한 명의 전문가가 모든 답을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디자이너는
서로 다른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게 하고,
서로의 생각을 보게 하고,
그것을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답을 만드는 사람에서
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이것이 제가 서비스디자인과 시민참여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워크숍에서 사람들이 포스트잇을 붙이는 모습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진을 찍어 보고서에 넣기 위해 참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의견이 실제 결정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했던 이야기가 정말 달라지게 만들었구나.”
그 경험이 다음 참여를 만듭니다.
반대로 의견을 계속 묻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두 번째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면 말합니다.
“말해 봐야 뭐 해.”
그 순간 사라지는 것은 의견 하나가 아닙니다.
참여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래서 참여를 요청했다면
무엇을 들었는지,
무엇을 반영했는지,
반영하지 못했다면 왜 그런지 다시 알려 주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참여는 질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응답으로 완성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모든 것을 대신 결정해 주는 것이
항상 최고의 배려는 아닙니다.
때로는 묻는 것이 더 큰 존중입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어떤 방법이 좋을까?”
그 질문은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생각이 이 결정에 중요합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관찰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것.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결정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롯적 가치 디자인에서
사람은 단순한 User가 아니라
때로는 Partner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에 누군가를 위한 무언가를 만들게 된다면
조금 일찍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다 만들어 놓고
“어떠세요?”라고 묻기 전에,
처음부터 이렇게 말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 무엇부터 바꿔볼까요?”
그 한 문장이
‘당신을 위한 디자인’을
‘우리의 디자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의 깨달음]
좋은 디자인은 사람의 의견을 듣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느끼게 합니다.
[오늘의 사유]
내가 유난히 애착을 갖고 있는 공간이나 물건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비싸거나 아름다워서인가요?
아니면 그 안에
내가 선택하고, 만들고, 함께했던 경험이 들어 있기 때문인가요?
[함께 사유해 볼 질문]
우리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디자인하면서
정작 그 사람에게 디자인할 자리를 남겨 두지 않고 있지는 않을까요?
사람을 사용자가 아니라
함께 변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초대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English Summary
Why Do We Care More About What We Help Create?
People often develop stronger attachment to places, services, and ideas when they have participated in creating them.
Participation is not simply asking people to choose between finished options. Meaningful participation begins earlier—when people can help define the problem itself.
The designer's role can therefore shift from providing answers to creating a process in which better answers can emerge together.
Design for people can become more powerful when it becomes design with people.
Co-Design
Participatory Design
Co-Creation
Ownership
Citizen Participation
Service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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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는 질문에서 시작되고, 디자인은 변화에서 완성된다.
디자인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무엇을 변화시켰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