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0 │ 슬롯적 가치 디자인까지 40일
집에서 오랫동안 사용하던 물건이 고장 났습니다.
예전 같으면 먼저 생각했습니다.
“어디에서 고칠 수 있을까?”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릅니다.
수리비를 알아보다가,
부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그냥 새로 사는 게 낫겠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고장 난 것을 고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사는 데 더 익숙해졌습니다.
새 제품은 계속 출시됩니다.
더 얇아지고,
더 빨라지고,
더 많은 기능이 생기며,
조금 더 세련된 모습으로 바뀝니다.
디자인도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질문도 필요합니다.
“이 제품은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을까?”
제품의 수명은 사용하는 사람의 습관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처음 어떻게 설계했는지도 중요합니다.
고장 난 부품 하나만 교체할 수 있는지,
분해할 수 있는지,
소모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지,
수리 방법을 알 수 있는지에 따라
같은 물건도 사용하는 시간은 달라집니다.
그러고 보면 버리는 순간 역시 처음 디자인할 때부터 어느 정도 결정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예를 들어 작은 부품 하나가 고장 났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 부분만 바꿀 수 있다면 물건은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품 전체가 하나로 붙어 있어 분해할 수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멀쩡한 부분까지 함께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비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선택 앞에는 이미 디자인된 조건이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디자인은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친환경 포장재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덜 버릴 수는 없을까?
조금 더 오래 사용하고,
고장 나면 고치고,
필요한 부분만 바꾸고,
다른 용도로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능력만큼
제품의 시간을 연장하는 능력도 디자인이 됩니다.
이런 변화는 환경에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수리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새것을 살 것인지,
고쳐서 계속 사용할 것인지,
일부만 교체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오래 사용한 물건에 담긴 기억을 계속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오래된 의자 하나를 생각해 봅니다.
조금 낡았지만 손에 익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사용했고,
그 의자에서 바카라을 읽기도 했으며,
누군가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런 물건은 가격만으로 가치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고쳐 쓸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물건 사이에 쌓인 시간을 이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된 건물이라고 모두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공간의 흔적을 살리면서 새로운 기능을 더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던 공간을 다른 목적으로 다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만이 발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무엇을 새롭게 만들 것인가?”
가 중요한 질문이었다면,
앞으로는
“이미 있는 것을 어떻게 더 오래 살아 있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도 중요해질 것입니다.
사람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일이 잘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관계가 조금 어긋나도,
계획이 틀어져도,
하던 일이 기대만큼 되지 않아도
모두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시작만이 답은 아닙니다.
조금 고치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 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계속 이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새것은 눈에 잘 띕니다.
새로운 건물,
새로운 제품,
새로운 기술은 쉽게 성과로 보입니다.
반면 고쳐서 10년을 더 사용한 물건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새롭게 만들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안에 더 중요한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버리지 않아도 되게 된 것.
그것 역시 분명한 디자인의 성과입니다.
그래서 슬롯적 가치 디자인을 평가할 때는 이런 질문도 필요합니다.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했는가.
얼마나 새로워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버리지 않아도 되게 했는가.
그리고 제품이 팔린 순간이 아니라,
그 제품이 사람의 삶에서 얼마나 오래 역할을 했는가.
디자인의 가치는 완성되는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는 시간 속에서 계속 만들어집니다.
@오성진 작가님 _ 에필로그
벌써 D-40일입니다, 100일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두달이 지났네요...
초심을 가지면서 추천 글 올립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소환된 우리들의 삶을 디자인하는 글입니다.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공유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깨달음]
좋은 디자인은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 내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의 시간을 더 오래 이어 주는 것도 디자인입니다.
[오늘의 사유]
집 안을 한번 둘러보세요.
고장 나거나 낡았다는 이유로 버리려고 했던 물건 중
조금만 고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없나요?
새것을 사기 전에 한 번쯤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이것을 조금 더 오래 살아 있게 할 방법은 없을까?”
[함께 사유해 볼 질문]
우리는 제품과 공간을 디자인할 때
판매되고 완성되는 순간까지만 생각하고 있나요?
아니면 고장 나고, 낡고, 다시 고쳐 쓰는 시간까지 디자인하고 있나요?
English Summary
Design Is Also About Making Things Last
Sustainable design is not only about recyclable materials or eco-friendly packaging.
It also asks whether products can be repaired, maintained, adapted, and used for longer.
Design influences not only how something begins its life, but also how long that life can continue.
Sometimes the most sustainable thing we can design is a reason not to throw something away.
Keywords
Sustainable Design
Repairability
Circular Design
Product Life
Adaptive Reuse
Design for Longevity
Social Value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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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는 질문에서 시작되고, 디자인은 변화에서 완성된다.
디자인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무엇을 변화시켰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