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치함은 타인의 삶을 파괴한다
새벽 2시 17분.
진동과 함께 울린 전화.
“선생님, 우리 애가 그럴 리 없어요. 당장 사과문 쓰세요.”
새벽 전화, 협박 카톡, “가만두지 않겠다”는 메시지.
극소수의 이야기지만 어디선가는 매일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번 3월부터 정부가 칼을 뽑았어요.
학부모가 교사 개인 번호로 악성 민원을 넣는 걸 막고, 과태료까지 물린다고 합니다.
처벌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근데 저는 그 뉴스를 보면서 한 가지를 계속 생각했어요.
처벌한다고 이 전화가 정말 줄어들까?
이 전화를 거는 부모의 마음을,
진짜로 물어본 사람은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번 들여다봤습니다.
중년이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죠.
“아.. 이제 더 이상 올라가긴 힘들겠다”
자기 삶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뭐라도 필사적으로 붙잡게 됩니다.
많은 부모에게 그게 바로 ‘자식 교육’입니다.
“내 인생은 여기서 더 나아지긴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 애만큼은…”
여기에 매달 막대한 교육비가 더해지면
교육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라 ‘서비스’가 됩니다.
비싼 식당에 가면 비싼 서비스를 받고 싶듯이,
우리는 교육자에게 그런 고급 서비스를 요구하게 되죠.
그러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우리 애가 그럴 리 없어요”라는 말이 나옵니다.
왜일까요? 자식을 정말 믿어서?
아니겠죠.
그건 자식을 믿는 마음이 아니라,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면
“나도 부모로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옳으려면 교사가 틀려야 하고,
그래서 새벽 2시에 전화를 거는 겁니다.
처벌은 맞습니다.
하지만 처벌은 시작일 뿐입니다.
이 문제의 진짜 시작은 교사도, 제도도 아닙니다.
부모 자신의 공허입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나는 저런 진상 부모는 아니지” 하신 분들 계시죠?
그런데 우리 모두 뭔가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살고 있지 않나요?
온라인 게임, 돈, 부동산, 건강 등...
우리는 내일을 그리지 못할 때
어제의 무언가를 붙잡고 늘어집니다.
‘악성 민원’ 뒤에 숨겨진
무가치함이라는 본질을 찾아내는 것.
그게 제가 eigen knot을 쓰는 이유입니다.
이 이야기를 더 깊고 날카롭게 풀어놓은 글,
eigen knot에 올려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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