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인도: 자이살메르(1)
“텐트는 어디 있어요?” 대답은 짧았다. “노 텐트. 슬리핑 매트리스.”
모래 위에 낡은 매트리스와 얇은 담요 한 장. 조그만 불씨. 그게 우리가 신청한 ‘고급 사파리’의 숙소였다. 그날, 나는 인도의 사막에서 처음으로 ‘낭만’이 얼마나 값싸게 유통되는지 배웠다.
자이살메르는 다섯 번째 인도 여행에서 처음 찾은 도시였다. 사막에 대한 동경이 없어서 일부러 피해온 곳이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이나 나미브 사막처럼 황금빛이나 붉은빛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이라면 모를까, 인도의 사막은 어쩐지 덜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자이살메르의 타르사막은, 우리가 상상하는 ‘끝없는 모래바다’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지하수를 끌어 관개를 하는 곳도 있어 사막은 사막인데, 사막 아닌 표정도 함께 섞여 있다.
하지만 다섯 번째 인도 여행은 달랐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다. 여행 초반 나와 동행한 사진작가 K는 자이살메르의 낙타 사파리를 꼭 경험하고 싶다고 했다. “사막에서 하루를 보내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나도 괜히 마음이 움직였다. 그렇게 우리는 조드푸르에서 자이살메르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자이살메르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호객꾼이 붙었다. 보통 한국인 여행자들이 찾는 숙소와 낙타 사파리 업체가 따로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터미널에서 만난 한 호객꾼을 홀린 듯 따라갔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곳과 달리 자기네는 고급 사파리를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돈을 더 주더라도 기왕이면 지프사파리와 텐트가 포함된 편안한 사파리를 즐기고 싶었다.
도착한 숙소는 1박에 150루피, 낙타 사파리는 1인당 2,150루피였다. 1박 2일 코스에 낙타 사파리뿐 아니라 지프 사파리, 전통 공연, 캠프파이어, 스위스 텐트 숙박까지 포함된다고 했다. 벽에 붙은 문구는 더 그럴듯했다.
We arrange camel safari, jeep safari, swiss tent & huts cottage, dinner, camp fire with Rajastani dance, night stay on desert.
우리는 바로 결제했다. 그날 저녁은 자이살메르의 구시가지를 돌며 석양을 봤다. ‘황금도시’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붉은 노을이 성벽에 걸리면 도시는 정말 금빛으로 식어갔다. 바자르에서 전통옷도 하나 샀다. 낙타 위에서 찍힐 사진을 위해서였다. 여행자는 종종 사진을 핑계로 들뜬다.
다음 날 아침 9시 반쯤 픽업차가 오기로 했다. 그런데 차가 늦었다. 전화를 걸어 다그치고 나서야 10시 조금 못 되어 차량이 도착했다. ‘여행의 지연’ 정도로 넘기려 했지만, 그 지연은 사실 불길한 이번 여정의 첫 신호였다. 차는 몇 군데를 돌며 다른 여행자를 태우는 대신, 작은 가게에 들러 박스를 몇 개 싣더니 그대로 달렸다.
10시 반쯤 사파리 시작점에 도착했고, 낙타 두 마리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둘만 가는 거예요?” 농담처럼 물었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가이드는 없고, 낙타를 끄는 ‘낙타왈라’ 한 명과 우리 둘 뿐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중간에 합류하겠지. 캠프에 가면 사람들 많겠지.”
사기를 당했다고는, 이때까진 상상도 못 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낙타 사파리. 낙타는 느릿한 걸음으로 초원을 가르며 나아갔다.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단 이렇게 조용히, 우리끼리 여행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분명 저녁 캠프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 코스가 다르니 그런 거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낙타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잠시 멈춘 곳엔 큰 물탱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주변에 마을은 없고, 언덕 하나만이 수평선을 막고 있었다. 언덕에 올라 사진을 찍고 있는데, 머리에 항아리를 인 여성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그들은 수 킬로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 오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보통 우물에서 물을 기르는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실상은 커다란 물탱크에서 물을 받아가고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조금 더 나아가니, 진짜 마을이 나타났다. 초원 위에 흩어진 작은 오두막들. 집시들의 거주지였다. 유일한 오토릭샤 한 대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었고,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에 하나둘 포즈를 취해주는 모습이 정겨웠다.
그러던 중, 한 아저씨가 손짓을 하며 우리를 자신의 오두막으로 초대했다. 낡은 하모늄을 꺼내 들고선 노래를 불러주었다. 라자스타니 언어로 된 그 노래는, 남편이 장을 보러 가며 아내에게 머리핀을 사다 주겠다는 사랑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는 노래가 끝난 뒤 대가를 요구했다. 당연히 예상했던 순간. 우리는 한국에서 미리 챙겨 온 볼펜과 작은 기념품들을 건넸다. 다행히 그는 웃으며 받아들였고, 우리는 그렇게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따뜻했던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점심 무렵, 우리는 초원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멈춰 섰다. 그곳이 점심 장소였다. 낙타왈라는 장작을 주워 불을 피웠고, 오래 기다린 끝에 식사가 준비되었다. 그러나 그 음식은 감자와 토마토가 섞인 수분기 없는 커리에 짜파티 몇 장이 전부였다. 설명에서 들었던 ‘고급’은 그 접시 위에 없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우리는 다시 낙타 등에 올라탔다. 입안에는 아직도 퍽퍽한 짜파티의 감촉이 남아 있었다. 어딘가 허전했고 어딘가 낯설었다. 사막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사막으로 가는 길’이라던 초원은 끝없이 펼쳐지기만 했다.
그때부터, 마음 한쪽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오후에 다시 길을 나서자, 멀리서 낙타 여러 마리를 줄지어 끄는 무리를 마주쳤다. 그제야 선명해졌다.
‘우리의 사파리는 설명으로 들었던 럭셔리 사파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예약한 ‘럭셔리 사파리’는 말뿐이었다. 팀도 없고, 가이드도 없고, 설명과는 다른 점심까지. 늦은 오후가 되자 ‘이상하다’는 느낌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사기를 당한 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 확신이 생겼을 때, 우리가 이미 꽤 멀리 와 있었다는 점이었다.
다시 두어 시간쯤 낙타를 탔을까. 드디어 모래언덕이 나타났다. 그럴듯한 사막풍경이었다. 그래, 이제야 좀 사막 사파리 같네. 마음이 아주 잠깐 풀렸다. K는 무릎을 꿇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만큼은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사막은 사람을 쉽게 위로한다. 하지만 그 위로는 오래가지 않는다.
해가 기울 무렵, 우리는 야영지에 도착했다. 지프 사파리를 기다리며 낙타왈라에게 물었다. 그러나 낙타왈라는 영어로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숙소에 전화를 걸어 지프 사파리가 언제 시작하는지 물었다. 그는 곧 지프가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한 참을 기다려도 지프는 오지 않았고, 숙소와도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낙타왈라에게 물었다.
“텐트는 어디 있어요?”
그의 대답은 짧았다.
“노 텐트. 슬리핑 매트리스.”
그 말을 듣고서 캠프파이어와 라자스탄 전통 공연은 더 이상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가 가리킨 것은 모래 위에 깔린 낡은 매트리스와 얇은 담요 한 장, 그리고 작은 불씨였다. 캠프파이어라고 부르기엔 초라했고 ‘야영’이라기보다는 ‘노숙’에 가까운 준비물이었다. 그 순간, 우리가 지불한 “럭셔리 사파리”는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 모래 위에서의 하룻밤.
사막의 밤은 빠르게 식었다. 사막에서 은하수 사진을 담겠다고 다짐했지만 하필 그날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다. 별들은 희미해졌고, 우리가 기대했던 은하수는 사진 속에서 지워졌다. 담요는 얇았고, 모래는 차가웠다. “럭셔리”라는 단어가 목구멍에서 모래처럼 씹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