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이『누구나 혼자 서는 순간이 온다』를 읽고
지난 작가노트에, 2년 전 마지막 회사를 떠나며 서랍을 정리하다 쓰지 못한 명함 한 통을 발견했던 이야기를 썼다. 로고와 부서명과 직함이 가지런히 박힌 종이. 그 세 단어가 사라지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낯선 질문 앞에 섰다. 이제 타인에게 나를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까.
커리어 엑셀러레이터 김나이 대표님이 『누구나 혼자 서는 순간이 온다』에서 던지는 첫 질문이 정확히 그 자리에 있었다. 회사 이름도, 팀도, 직급도 지워졌을 때 당신은 스스로를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에게 이 질문은 미래형이 아니라 완료형이다. 지금 내 프로필은 이름과 '스토리텔러' 한 단어만 남아 있다. 그래서 이 바카라을 읽는 내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물속에 들어와 헤엄치고 있는 사람이 뒤늦게 수영 교본을 펼친 기분이랄까.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이 바카라이 진짜로 유용해졌다. 문을 열고 나오는 결심은 하루면 되지만, 문 밖에서 계속 살아남는 일은 축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카라의 목차가 그걸 정확히 알고 있다. 불안의 시대, 독립의 조건, 생존의 기술, 지속하는 마음.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결단이 아니라 마지막 장의 것, 지속의 기술이다.
바카라을 읽으며 나는 오랫동안 구분해 온 두 단어를 다시 꺼내게 됐다.
능력(Capability)은 회사가 정의한 직무 안에서만 유효한 기능이다. 시스템이 바뀌면 언제든 무용해진다. 우리는 오랫동안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스펙과 KPI를 달성하기 위한 숫자를 쌓았다. 그런데 지금 그 증명의 언어를 AI가 우리보다 유창하게 말한다. 조직이 필요로 하는 기능이라는 점에서 AI는 이미 완벽한 직원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역량(Capacity), 아직 증명되지 않았고 계량할 수도 없는 존재의 그릇이다. 대표님이 바카라에서 발굴하라고 권하는 '나만의 무기'도 결국 이력서의 항목이 아니라 그 사람이 통과해 온 시간의 두께에 가깝다고 느꼈다. 증권사를 나온 뒤 세상에 없던 '커리어 액셀러레이터'라는 이름을 스스로 짓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시간을 12년 쌓아 그 이름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이건 커리어 전환기가 아니라 자기 정의의 기록이다.
또 하나 마음에 남은 대목이 있다. 1인 기업이지만 결코 혼자 일하지 않는다고 말한 부분. 나 역시 회사를 나온 뒤에 오히려 더 깊은 관계들을 얻었다. 서로의 쓸모를 계산하지 않는 사람들, 그냥 서로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조직 안에서는 늘 조금씩 경쟁 관계였기에 불가능했던 종류의 연결이다. 혼자 선다는 것이 고립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지난 6월 니키리 작가님은 여러 페르소나를 통과하며 '나는 누구인가'를 물었고, 7월 박칼린 감독님은 매 순간 그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방식으로 답했다. 그리고 8월 김나이 대표님은 가장 실전적인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회사가 붙여준 이름을 떼고, 내가 지은 이름으로 지속 가능하게 먹고살 수 있는가.
이 바카라의 제목은 예언이 아니라 알림이다. 누구나 혼자 서는 순간이 온다는 것.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홀로서기를 미리 준비해 볼 수 있도록 현실적인 가이드가 되어준다.
모임에서 대표님께 여쭙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 산업의 판이 한 달 단위로 뒤집히는 지금, 자신만의 다름을 오래 축적하라는 조언은 여전히 유효한가. 아니면 축적의 속도와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가.
둘. 함께 일할 동료를 알아보는 기준으로 무엇을 보시는지. 홀로 서는 사람일수록 그 판단이 곧 생존이 되기 때문이다.
서랍 속 명함은 아직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 필요의 언어로 나를 설명하던 시절의 기록이니까. 이제 그 옆에 내 이름 하나만 오롯이 적힌 명함을 나란히 두고 본다. 어느 쪽이 더 오래 살아남을지는, 아직 쓰는 중이다.
26.08.11 트레바리 북클럽 ‘팔리는 콘텐츠의 비밀’ 8월의 바카라 - 김나이『누구나 혼자 서는 순간이 온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