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 보통 『불안』을 읽고
고백하자면, 나는 요즘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불안하지 않다.
2023년 12월, 예술가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자기 확신이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마케터의 옷을 벗고 스토리텔러의 옷을 입은 것은 도피가 아닌 도착이었고, 매일 새벽 바카라상 앞에 앉을 때마다 '빨리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다만 요즘 나는 다른 불안한 마음으로 눈을 뜬다. 내 인생이 아닌,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나를 포함해 인류는 지금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세계로 떠밀려 가고 있다. 뉴스는 온통 AI로 떠들썩하다. 기술의 해자를 낙관하는 목소리와, 디스토피아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섞여 혼란스럽다.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AI LLM 버전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글로벌 주가 차트가 요동친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10년이 흘렀다. 바둑계는 그 미래를 우리보다 먼저 통과했다. 바둑을 예술로 승화시켰던 사람들의 자리는 지워졌고, AI를 곁에 둔 이는 도약했으며 그렇지 않은 이는 조용히 밀려났다.
장강명 작가가 『먼저 온 미래』에서 담담히 보여준 그 현실이, 앞으로 우리 각자의 직업과 관계와 감각에서 도미노처럼 반복될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대부분의 사람은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산다. 이 격차가 나의 불안을 추동한다.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서 해부하는 감정은 대부분 '지위'라는 좌표에서 발생한다.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그는 불안의 원인을 정교하게 해부하고, 철학·예술·정치·기독교·보헤미아라는 다섯 가지 해법을 건넨다.
2004년에 세상에 나온 이 바카라은 그 시대를 살던 인간의 불안을 정확한 언어로 붙잡아 두었다. 그런데 나는 자꾸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21세기의 우리에게 '지위'를 걱정할 여유가 아직 남아 있을까.
나는 여유가 없다. 지금 우리가 마주해야 할 불안은 훨씬 근본적인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전히 '우리'로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불안.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몸으로 감각하는 삶을,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자유를 우리가 계속 손에 쥐고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
답이 없는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바카라에 반가운 부분이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의 처방으로 제시한 다섯 가지 중 '예술'에 대한 대목에서 안도했다.
"예술은 삶의 비평이다."
"삶이 있는 한 예술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드라마 시나리오도 예술가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기에 떠올릴 수 있었다. AI가 몰고 올 어두운 미래를 경계하며, 한국의 판교 테크노밸리를 배경으로 삶의 최저점에 굴러 떨어진 자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는 근미래 SF 세계관을 그린다.
이 긴 이야기를 지탱하는 힘은, 낯선 시대로 밀려나는 사람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에너지로 바꾸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온다.
알랭 드 보통이 200년 전 예술이 인간의 지위 불안을 어루만졌다고 말했다면, 나는 21세기 예술은 인류의 실존적 불안을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고 믿는다.
스토리텔러의 자리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바람이 있다면 실존적 불안을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을 본 사람들에게 삶을 성찰하는 경험,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는 영감과 용기를 주고 싶다.
다양한 도메인을 거치며 '0에서 1'을 만들어오시고, 기존에 없던 프레임을 짜서 판을 벌여오신 양수석 클럽장님은 지금 이 시대의 불안을 어떤 감각으로 정의하고 계실까.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뒤집히고 산업의 지형이 재편되는 지금, 10년 뒤를 상상하는 일은 무의미해진 것 같다. 그렇다면 디렉터의 시선에서 이 요동치는 국면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준비하고 계실지 클럽장님과 멤버분들의 생각이 정말 궁금하다.
26.07.24 트레바리 북클럽 ‘일 벌이는 사람들’ 8월의 바카라 - 알랭 드 보통『불안』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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