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공화국 선언 - 우리는 지금 어떤 미래를 짓고 있나

스토리텔러가 투자자에게, 아침단상

by은이 EUN YI

(전) 온라인 서점 마케터이자 (현) 스토리텔러로서, 사실 이 바카라은 오래 망설이다 집어 들었다. 팔란티어 CEO가 쓴 실리콘밸리 옹호론. 요즘 내가 붙들고 있는 문제의식과 정반대 편에 서 있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AI 시대의 인간 군상에 대한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아닌 판교 테크노밸리를 배경으로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상상하며 어느 비저너리의 일대기를 다룬다.




기술이 인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그 항해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좌표는 무엇인지도 이야기한다. 그 기저에는 실리콘밸리 프론티어 집단에 대한 조심스러운 경계심이 흐른다. 그들이 말하는 인류를 위한 혁신의 진짜 의도(Intention)는 무엇일까. 매끈한 슬로건 뒤에 감춰진 패권의 논리는 없을까. 신이 되고 싶은 소수의 욕망이 기술공화국(The Technological Republic)이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포장된 것은 아닐까.


이런 물음을 품고 살다 보니, 알렉스 카프의 바카라은 자연스레 손이 가지 않는 종류의 바카라이었다. 그런데 이희우 대표님의 북클럽에서 이 바카라을 다룬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반가웠다. 상대의 논리를 정확히 알아야 대화가 시작되고, 무엇보다 투자자의 시선으로 이 바카라을 읽는 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프는 서구의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해 실리콘밸리가 국가와 손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실리콘밸리가 소비자용 앱과 광고 최적화에 매몰되어 있는 사이, 진짜 중요한 문제(국방, 안보, 국가 인프라)는 외면당했다고 진단한다. 일리 있는 주장이고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그러나 스토리텔러의 눈으로 보면 이 문장들은 자꾸 다른 질문을 낳는다. 그가 말한 중요한 문제를 정의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누구를 위한 우위이고, 누구를 배제하는 공화국인가.




나는 이야기를 짓는 사람으로서, 세상의 모든 서사에는 화자의 위치(位置)가 있다고 믿는다. 카프는 팔란티어 CEO의 위치에서 이 바카라을 썼고, 이희우 대표님과 클럽 멤버분은 투자자의 위치에서 이 바카라을 읽으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드라마를 쓰는 스토리텔러의 위치에서 이 바카라을 마주한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같은 텍스트를 보면, 서로 다른 풍경이 보인다. 그 풍경들을 겹쳐 놓을 때 비로소 입체적인 관점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궁금하다. 투자자의 시선으로 본 팔란티어는 어떤 회사인가. 그들이 꿈꾸는 기술공화국은 유망한 테제인가, 아니면 경계해야 할 서사인가. 지금 자본은 어떤 미래에 베팅하고 있고, 그 미래에서 인간의 자리는 어디쯤에 놓여 있다고 보는가. 스토리텔러가 상상해야 할 다음 챕터를 위해, 나는 이 물음들을 안고 클럽의 문을 두드려본다.


김애란 작가는 "인간의 결함은 한계가 아닌 미덕이자 개성"이라고 했다. AI가 매끈한 답을 내놓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서로의 결함과 망설임을 나누는 자리가 더 절실해지는 것 같다. 기술공화국이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서, 오히려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 나누고 싶다.


26.07.08 트레바리 북클럽 '사람과 투자' 7월 모임 바카라 - 알렉스 카프『기술공화국 선언』읽고 쓴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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