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색은 바뀌었지만, 웃음은 그대로였다
1995년 3월, 어느 봄날이었다.
경기도 화성의 대학 정문을 통과하던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조금 낯선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을 더 돌아온 끝에 들어간 대학.
세무회계를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그 모든 것은 아직 내 것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동기들, 처음 마주하는 교수님들.
모든 것이 어색함의 연속이었다.
OT를 다녀온 뒤,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연구실’이라는 공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곳은 단순한 공부 공간이 아니었다.
각자의 속도로 걸어가던 사람들이
서로를 밀어주고 이끌어주던 작은 세계였다.
졸업 후, 각자의 삶에 바쁘게 흩어져 지내던 어느 날
동문회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무려 30년 만의 만남을 갖는 분들도 계셨다.
이름은 기억나지만 얼굴은 희미해진 사람들.
이름과 얼굴이 완벽히 기억나지만 너무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혹시 어색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순간,
그 모든 시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익숙한 말투 하나, 어디선가 들어본 웃음소리 하나에
마치 30년이라는 시간이 잠깐 자리를 비워준 것처럼
스무 살의 나로 시간 여행 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색과 몸매는 바뀌었지만
얼굴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때의 우리가 남아 있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어렸던 선배들과 교수님은
어느덧 아이를 다 키운 어른이 되어 있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살아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한쪽이 조용히 뭉클해졌다.
회사 생활 속에서 이해관계를 따지고,
때로는 경쟁하며 살아온 시간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돌아서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30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 그날을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