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밥상을 보자 눈물이 났어

-왕사남-을 본 외국인의 마음

by조선여인

“엄마, 나 친구들이랑 영화 보러 왔어.”

4월 첫째 일요일 아침, 캐나다에 있는 딸에게서 온 보이스톡이다.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딸아이의 마음을 끌어당긴 영화는 무얼까. 바로 장항준 감독이 만든 <왕과 사는 남자>였다. 영화를 두 번이나 관람한 나는 내심 반가웠다.

딸아이는 공유 주택에서 함께 사는 외국인 친구 셋과 동행했다고 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설렘 가득한 목소리가 희소식처럼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세상에! 영화관에 좌석이 꽉 찼어. 외국인도 엄청 많네.”

재작년 미국 방문길에 마주했던 압도적인 규모의 영화관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그 많은 좌석이 한국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로 꽉 채워졌다니. 이보다 더 신나고 뿌듯한 일이 있을까. 더군다나 외국인 관객 비율이 높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역사에 약한 딸아이가 영화 감상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얼른 짧은 팁을 건네주었다.

“딸, 영화의 배경을 알고 보면 더 좋아. 1457년에 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 갔는데 ‘청령포’라는 곳에서 있었던 이야기야. 비극적인 왕의 죽음과 충신 엄흥도라는 인물의 실화에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거지.”

“아이돌 가수 박지훈을 아는 외국인도 많네.”

솔직히 나는 단종 역을 맡은 배우를 잘 몰랐는데, 이미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가수 겸 배우라고 했다.


나는 역사적 배경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단종은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어. 하지만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억울하게 폐위되고 말았지. 단종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겠니?”

딸에게 전해준 이 작은 지식이 영화를 즐기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했다.


한편으로는 외국인 친구들이 과연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 가는 대목에서는 어떤 생각이 들까. 왕정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에 익숙한 그들한테는 어려운 숙제가 될 터였다. 권력을 찬탈당하는 역사적 비극이 외국인의 눈에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가 궁금했다. 모든 건 함께 간 딸아이의 설명에 달렸다. 어쨌든 유해진 배우의 신들린 연기에 울다가 웃기를 반복할 것이고, 박지훈 배우가 펼치는 단종의 눈빛 연기에 하염없이 눈물 흘리게 될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 기회에 딸아이한테도 역사의식이 싹트기를 은근히 기대해 봤다.


전화를 끊고 나서 영화 필름을 되감아 그날의 감동을 재생해 보았다. 왕을 위해 정성껏 차려낸 밥상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왕의 건강을 염려하며 밥그릇을 비웠다는 소식에 환호하던 마을 사람들 틈에 내 마음도 함께 있었다. 단종과 마을 사람들이 밥상을 사이에 두고 기쁨과 슬픔을 나눌 때, 나는 단종의 엄마라도 된 듯한 심정이었다. 부모를 잃고 궁궐이 아닌 첩첩산중으로 쫓겨 나온 어린 왕의 처지가 가련해서 마음이 아렸다. 두 번째 관람에서 눈물을 더 많이 쏟은 건 순전히 단종의 그 처연한 눈빛 때문이었다. 커다란 눈망울에 맺힌 눈물 너머로 펼쳐지는 연기력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OTT의 영향으로 한국 영화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우려가 컸다. 한국 영화 산업에 검은 장막이 내려졌다는 말까지도 들려왔다. 하 영화의 르네상스를 보는 것만 같아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반갑고 뿌듯하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가 보여준 열풍 앞에서 그런 걱정은 완전히 무색해졌다. 관객 1,6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짧은 기간 내에 역대 흥행 2위에 당당히 올라섰기 때문이다.


두 시간 뒤, 딸아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영화의 느낌이 어땠는지 묻기도 전에 딸의 고백이 귓전을 울렸다.

“엄마, 나 막동어멈 밥상을 보고 엄마가 차려준 밥이 생각나서 울었어.”

역사 배경을 열심히 설명해 줬건만, 딸아이의 눈에는 역사가 아닌 '밥상'이 먼저 보였나 보다. 평소 통화할 때마다 엄마 밥이 그립다며 말끝을 흐릴 때가 많았는데, 결국 영화 속 밥상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사실 나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상 장면에서 딸 생각이 났다. 하얀 쌀밥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을 딸아이 얼굴이 떠올라 내 마음도 짠했다.


집밥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대형 화면 위로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 겹쳐 보였을까. 단종의 눈물 어린 밥상이 현실에서는 딸의 그리운 밥상으로 이어진 셈이다. 어쩌면 영화가 멀고도 낯선 땅에서 홀로서기하고 있는 딸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응원을 건네주지 않았을까. 마을 사람들이 지극정성을 다한 밥상으로 단종을 응원했던 것처럼.


“외국인 친구들 반응은 어땠어?”

“단종이 죽는 장면에서 친구들 모두 펑펑 울었어.”

외국인들이 우리 역사를 몰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내 우려는 기분 좋게 빗나갔다. 화면 위로 펼쳐지는 자막이 세세한 감정을 다 전달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인물의 표정과 음향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는 곳이 다르고 생김새가 달라도 인간의 보편적인 슬픔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영화관을 나오며 딸이 친구들에게 왜 울었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슬픈 거잖아.”

이 한마디가 주는 울림이 커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남의 나라 역사는 낯설지 몰라도, 죽음이라는 슬픔은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 영화 한 편이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게 바로 예술의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언젠가 딸이 집으로 오는 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다. 그날의 밥상 위에는 슬픔 대신 우리 가족의 풍성한 웃음꽃을 한가득 올려놓을 것이다. 아무쪼록 딸아이가 캐나다에서 건강하고 밝게 잘 지내기를 바라며 나는 그날을 기다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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