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는 일 지켜보는 일

by서영수

"지키는 일이다.
지켜보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전봉건의 시 <사랑>에 나오는 구절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나는 오래도록 이 말의 무게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은 설레고, 흥분되고, 기분 좋은 감정 속에서 서로를 향해 깊이 몰입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온갖 세상풍파를 겪고 나이가 든 지금에서야 사랑은 오히려 지키고 지켜보는 일, 즉 서두르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성급히 등을 돌리지 않는 결단에 더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은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끝까지 지키는 일은 더 어렵다. 관계는 늘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한 사람이 지치면 다른 사람이 조금 더 다가가야 하고, 한 사람이 흔들리면 다른 사람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상대의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 그때가 어쩌면 사랑의 진짜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빛을 잃는 순간은 대개 거창하지 않다. 함께 웃던 시간을 잊고, 고마웠던 순간을 당연하게 여기며,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고 무심해질 때가 그렇다.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는 조심하면서도, 정작 곁에 있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한다. 내 곁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인데도, 그 소중함을 마치 공기처럼 여기며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사랑의 가장 큰 적은 이기적인 기대인지도 모른다. '이만큼 했으니 저만큼은 돌아와야 한다'는 계산이 시작될 때, 사랑은 조금씩 조건이 된다. 시간 역시 사랑을 시험한다. 그리고 때로는 잠식한다. 설렘은 퇴색하고, 익숙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나 시간을 이길 수는 없어도, 기대는 낮출 수 있다. 기대를 낮춘다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의 허물을 견디고, 실망하면서도 등을 돌리지 않는 것. 그 인내가 쌓일 때 비로소 사랑은 깊어진다. 첫사랑의 감정은 흐려질지라도, 그 자리에 남는 것은 함께 건너온 시간의 밀도다. 사랑은 감정의 높이가 아니라, 머문 시간의 두께로 완성되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린다. 사랑은 지키는 일이고, 지켜보는 일이라고. 당장 변하지 않는 상대를 바라보며 조급해하지 않는 거라고. 흔들리는 시간을 통과하며 끝까지 곁에 머무는 일이라고. 그것이 어쩌면 사랑의 가장 단단한 형태라고 믿는다.

영화 <Love Letter, 1995>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두 사람 몫만큼 사랑하겠어요." 처음에는 낭만적인 고백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그게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알게 되었다. 두 사람 몫만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의 부족함까지 감당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까지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한 사람의 의지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관계를 시험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곁에 남아 있겠다는 용기,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 기대보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쌓일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랑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버티는 방식에 가깝다. 돌아서지 않고, 무심해지지 않고,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어쩌면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그 곁에 오래 머물고 그를 지켜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부끄러움을 잃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