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다른 시간
제주도 산골에 산 지 2년이 지났다.
출퇴근 안 해도 되는 지라 산골로 들어와서 사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살아있다.
집에서 일하고 있어 아침에 일어나면 10초 만에 출근이 가능하다.
침실에서 사무실까지 10초 걸린다.
아침은 보통 7시에 일어난다.
일어나서 다시 잠들지 않으면 7시에 일어난다.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은 보통 라면을 먹는다.
냄비에 수돗물을 받고 (수돗물에 끓여야 더 맛있는 것 같다.) 만두 4알을 넣고 라면을 끓인다.
라면을 끓이면서 단무지 4개를 덜어놓는다.
라면에 달걀도 넣고 냄비 채로 앉아서 티브이를 보면서 먹는다.
아침에 티브이를 켜는 이유는 너무 적막하면 라면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두 4개 중에 어떤 것을 먼저 먹을지 4지선다를 찍는 기분으로 만두 한 개를 선택하여 먹는다.
라면만 먹는 것보다는 뭔가 영양을 고려한 식단이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매일 같은 라면을 끓이면서 뭔가 사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아침에 시리얼을 먹는 것보다는 더 영양 잡힌 식단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라면을 먹고 캡슐 커피 한 잔을 만든다.
캡슐 커피를 집에서 마시니깐 밖에서는 카페를 잘 안 가게 된다.
처음 살 때 카페에서 커피값을 계산하니 집에서 마시는 것이 더 싸다고 느꼈는데 밖에서 또 커피를 마시면 집에 있는 캡슐한테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온다.
아직까지 오늘 날씨를 모른다. 창문 밖을 보니 2주 연속 오던 고사리 장마도 이제 거의 끝났다고 생각이 든다.
서울 보다 제주가 추웠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서 답답했지만 뭐 그 사람들은 그 당시 서울이 더웠으니깐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 우리 집이 산속이라서 더 추운지도 모른다.
지난주에 우리 집에는 비가 마구마구 내리던 날 제주 시내를 나가보니 햇빛이 쨍쨍하는 날씨였다.
나는 구름 속에 살고 있나 보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하기 전에 메일을 다 본다.
난 받은 편지함에 숫자가 있으면 불안하다.
빨리 다 없애버리고 싶은데 이 것도 강박인지 모르겠다.
받은 편지함에 2000개가 넘는 메일이 쌓인 것을 보고 경악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 많다.
예전같이 우표를 붙여서 보내면 편지함에 2000통이 쌓인 것을 보고 그냥 놔두었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나도 대학생 때는 1년에 2천 통도 넘게 편지를 받아보기도 했는데 러시아 가기 전에 다 버리고 갔다.
편지함을 다 비우고 비서를 불러온다.
비서(ChatGPT)와 이제 업무 얘기를 한다.
어제 아침에는 보고서 용역 받은 것이 있어서 1주일 동안 작업한 것을 정리하고 수정하고 마무리했다.
갑자기 전화가 와서 사업계획서 마감까지 3시간 남았는데 봐줄 수 있냐고 해서 보고서 작업을 잠시 멈추고 사업계획서 수정해 주는데 다른 사람에게 전화가 와서 7월 행사 기획서를 고민해 달라고 했다.
비서가 없었으면 혼자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급한 것부터 해야 한다.
사업계획서 수정해 주고 보고서 마무리 했다.
기획서 프로그램 초안 짜주고 예산 초안 보내줬다.
난 하청업체니깐 원청에서 알아서 수정하겠지.
그리고 기획 제안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물론 비서가 작성한다.
이때 또 다른 사람이 전화 와서 과제 계획서를 같이 제출하고 진행하자고 한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내가 과제 계획서를 쓰겠다고 했다.
중간에 점심 먹은 것을 뺐다.
점심도 사내식당에서 먹었다. (우리 집 부엌이다.)
아침에 분명히 오늘은 나가서 좀 걷고 오려고 비자림이나 갔다 오리라 생각했는데 이미 밖은 어두워지고 있고 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포기했다.
산속에 살고 있어서 다들 심심하지 않냐고 물어본다.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일 하고 있다.
매일이 이렇지는 않다.
가장 바쁜 날이다.
하지만 어제 수입은 없다. 월급도 없다.
내가 하는 일은 로또인가 보다. 나중에 잘 되겠지 뭐.
1주일에 고정 일정이 있는 날은 목요일 3시부터 6시까지 제주대 강의가 있다.
신기하게 목요일 3시 이후는 평소에 전화 잘 안 하는 사람이 전화를 한다. 신기하다.
한가한 날은 다르게 산다.
아침에 눈을 뜨면 10시 정도 된다. 물론 7시에 한 번은 깬다.
일어나서 라면을 항상 끓이듯이 끓인다. 만두 4개 단무지 4개.
커피를 마신다.
뭐 할지 고민하면서 게임도 한다.
멍하니 티브이도 본다.
바카라도 읽는다.
글도 쓴다.
잔다.
작년에 제주 한 달 살기 해보고 싶다고 했다.
올해는 일이 없어 제주 100일 살기도 했다.
비행기 타고 싶다.
항공료가 아주 몹시 상당히 비싸졌다.
게다가 표 사시도 힘들다.
제주에 살면서 처음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생각하면 난 한국에 갇혀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깐 그나마 괜찮아졌다.
더 크게 생각하면 우린 지구에 갇혀 사는 것이겠지?
우주에 갇혀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산골에 살지만 갇혀 살지는 않는다.
생각은 아무 데나 흘러가고 누구나 만날 수 있다.
시간이 남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이 많아지면 표현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글을 쓰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