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계절

나를 분갈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by이영선

이젠 벚꽃을 보러 멀리 유명한 곳을 가지 않아도 전국 곳곳에서 지천에 피는 벚꽃을 볼 수 있다. 이런 날에는 집에 있거나 작업실에 있어도 그 봄기운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낭만적인 감상에 젖는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때 잠깐 피고 사라지는 벚꽃을 놓칠세라 차를 타고 조금 더 가면 있는 호수에 다녀오기로 했다.


운전하며 가는 길 옆으로 오래된 작은 동네들과 함께 끊임없이 이어지는 낮은 산들에는, 꽃들이 복슬강아지의 등에 나 있는 수북한 털처럼 아예 덩어리로 뭉쳐져 뭉게뭉게 산을 뒤덮고 있었다. 나는 사방에 펼쳐진 벚꽃들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눈에 넣고 또 넣어서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볼 수 있는 이 순간을 가급적 많이 기억하고 싶었다. 이 순간 봄의 따뜻한 햇살과 벚꽃의 아름다움을 놓치면서까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호수를 한 바퀴 산바카라한 후에는 근처 구도심에 있는 전통시장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오전에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에서 한 의원이 그곳 먹거리 판매대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오랜만에 그곳이 몹시 궁금해졌다.


역 앞에 있는 구도심 전통시장은 과거엔 매우 활성화된 곳이었다. 별달리 큰 건물도 없던 그때엔 온천관광의 유명세와 더불어 상가 임대료도 꽤 비싼 곳이었고, 그리 크지 않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밤과 주말이면 역동적이고도 다양한 인구들이 밤늦게까지 음주가무와 쇼핑, 데이트를 즐기던 상권이었다. 몇 년 전에는 공용주차장도 생기고 거리가 더 정비되어 나름 꽤 단정해지고 있는 듯했는데, 오늘 가보고서 많이 놀랐다.


벚꽃 여행객들과 주말이라는 대목이 겹쳐 사람들로 붐빌 거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몇 개 골목을 제외하곤 대부분 상가가 비어있거나 문을 닫은 채였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호수의 혼잡함과는 대조적으로, 시장이 놀라울 정도로 한산했다. 유튜브에서 시의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시장에서 호떡도 먹고 튀김도 먹고 싶었는데, 휑한 거리를 보니 서글픈 슬픔이 가슴 아래에서 뭉근하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건 마치 빛이 사라져 가는 해 질 녘의 하늘을 혼자서 천천히 바라보고 있는 그런 느낌인데, 고독과 불쾌한 슬픔이 섞인 묘한 감정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울기 직전의 느낌을 느끼고 싶다면 당장 데려다 놓고 싶은 장면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거기에 빗대어, 겉으로는 정체된 듯이 보이는 나의 현재를 밖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 전통시장이 나의 모습이라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전통시장 안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대다수는 이미 떠나서 다른 길을 찾았을 것이고, 지금 있는 사람들은 현재의 상태로는 삶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길이 없는 것일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이영선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춤추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통합창작예술가. 장르와 경계를 녹여내어 없던 세상을 만들고 확장하는 자. 그 세상의 이름은 이영선입니다.

13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1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나는 오늘 꽃으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