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바카라도 틀리고 나도 틀렸다.

by소만

나는 연애를 바카라으로 배웠다. 25년 전 여성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한 작가의 글을 읽고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으로 몇 번을 정독했다. 바카라에는 사랑을 쫓아 결혼했지만 정작 현실적인 문제로 힘든 삶을 사는 여자, 이성적으로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가며 결혼했지만 행복하지 않은 여자, 공부도 잘하고 슬롯적으로 유능했지만 나쁜 남자를 만나 인생을 망친 여자의 이야기가 나왔다. 잘못된 연애와 결혼으로 인생의 나락을 겪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그리고 나라면 결코 저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얼마 전 결혼식에 다녀왔다. 난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실로 13년 만에 가는 결혼식이었다. 결혼 당사자가 온라인 게임 동료이기도 했고, 결혼식장이 집과 가까워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랜만의 결혼식 참석이라 옷을 하나 살까 며칠을 쇼핑몰을 돌다가 한 달 전에 산 원피스가 생각났다. 여름사이 살이 더 찌기도 했고, 뷔페를 먹으면 숨쉬기 힘들 것 같아 연습하는 셈 치고 원피스를 입고 출근해봤다. 하루 종일 원피스를 입고 근무를 해보니 의식적으로 배에 힘을 좀 주면 그나마 단추 사이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래, 옷 사지 말고 이걸 입고 가자.'라고 마음을 정하며 인터넷 쇼핑을 접었다.


결혼식 당일,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고, 헤어스타일을 고정하는 젤을 발랐다. 화장품은 어차피 선크림과 팩트밖에 없으니 간단히 바르고 특별한 날에만 사용했던 속눈썹 집게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속눈썹 집게는 내가 이사할 때 짐을 정리하면서 버린 게 분명하다. 아직 풀지 않은 이삿짐 박스를 뒤져 오래된 보석함-이라기보다는 귀걸이 사면서 딸려온 종이 상자-을 꺼냈다. 내가 여태 살면서 샀던 모든 빛바랜, 짝을 잃은, 유행 지난 액세서리 중 짝이 있고, 살짝 빛이 바랬지만 그나마 점잖은 인공 진주 귀걸이를 골라 끼웠다. 신발장을 열었다. 임신 준비 시작하고는 신은 적 없는 예쁜 힐은 바로 포기하고 베이지색 단화를 꺼냈다. 옷장을 뒤져 찾은 스타킹 세 뭉치 중 그나마 상태가 좋은 스타킹을 신는다. 색도 촉감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무렴 어때, 누가 내 스타킹을 본다고.


온라인 게임 동료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10분이나 지났지만 결혼식은 아직 30분이나 남아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뒤에 결혼식장 앞에 내렸다. 1층에는 정장을 입고 한껏 풀세팅한 사람들과 한복을 입은 친인척들로 붐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가서 신부의 이름을 찾아 축의금을 낸다. 식장으로 들어가기 전, 신부 대기실에서 앉아있는 신부와 눈이 마주쳤다. 신부는 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지만 누추한 내가 해가 될까 봐 눈인사만 하고 나왔다. 아래층 뷔페에 가서 먼저 온 온라인 게임 동료들과 인사하고 다시 위로 올라왔다.

결혼식 5분 전, 천천히 결혼식장을 둘러봤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나의 결혼식을 떠올렸다.




우리는 오래 연애했지만 친정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결혼을 승낙받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결혼식은 훨씬 쉬웠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제안이 하나 둘 들어오면서 일이 조금씩 커졌다. 그 모든 일을 조정하고 내 의견도 낼 만도 한데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며 일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식 슬롯는 신랑의 군대 후임이, 축가는 남편과 나를 연결해 준 대학 선배와 시조카가 불렀다. 주례는 친정아버지의 은사님이 했다. 내 결혼식을 떠올리니 잊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결혼식 날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헤어스타일이 내내 거슬렸고, 서로 고액의 축의금을 주기로 한 고등학교 동창과 연락이 닿지 않아 신경이 쓰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폐백을 할 때 내 맘에 쏙 들었던 새 한복이 폐백 장의에 가려진 것이 아쉬웠고, 한복을 입고 와주신 분께 인사하고 싶었지만 일이 흘러가는 대로 둔 결과로 한낮에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하객들에게 인사했었다. 내 결혼식은 그래서 정말 특별하다. 일생에 한 번쯤 할법한 결혼식을 그저 '나도 했다'라는 사실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신랑신부는 함께 준비한 결혼 서약을 읽고, 신랑 아버지는 두 사람에게 정성으로 쓴 편지를 읽으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신랑은 신부에게 직접 축가를 불렀다. 결혼식은 축복으로 가득했고, 설렘으로 충만했다. 결혼식을 보는 내내 나도 그 기분을 느꼈다. 숙제 같은 일을 해치운 후련함이 아니라 부부임을 선언하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많은 사람 앞에서 약속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결혼식을 마치고 식당으로 내려와서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던 내 친구-신부의 전 온라인 게임동료-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말했다.

"이 결혼식을 보면서 진짜 오랜만에 내 결혼식을 생각했어. '결혼식을 하는 동안 나는 행복하고 설레었었나?'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 하지만 이 결혼식을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어. 내가 결혼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거든. 오롯이 둘이서 알콩달콩 준비한 게 느껴져서 좋았어."

내 결혼식은 감정이 아니라 사실로 남았다. 어떤 일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사실보다 감정이 우선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결혼 전 수많은 심리바카라과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점잖을 떨었고, 쿨한 척을 했고, 내가 지금 겪는 일은 사소한 것이라 여기며 넘겼다. 연애와 결혼을 바카라으로 읽은 사실을 기준으로 삼아 재단해 왔다. 하지만 나는 틀렸다. 오랜 시간 만났다고 상대방을 잘 아는 게 아니고, 짧은 시간 만났다고 서로를 모르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내 생각과 감정을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고 선택하는 것이 우리를 위해 더 나았으리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25년 전 나는 바카라 속에서 만났던 똑똑하지만 좋지 않은 결말을 맺은 여자들의 사례를 읽으며 그들처럼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피해야 할 것은 나쁜 남자도 조건만 따지는 만남도 아니었다. 완벽한 연애와 그에 어울리는 행복한 결혼이 삶의 전부이자 끝이 아니다. 바카라에 실패한 인생의 본보기가 된 그 여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한심하고 멍청한 게 아니라 결단력 있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에게 자신을 내던져 열렬히 사랑해 본 사람이라고. 당신이 실패한 연애나 슬롯생활은 남들에게 비난받을 만큼 잘못한 것이 아니고, 그것 하나로 인생이 끝난 게 아니라고도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바카라도 틀렸다. 삶의 정답은 바카라에 없고, 바카라의 정답도 내 삶과 꼭 같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그때 나와 같이 식장에 서 있었던 남자와 살고 있다. 결혼식을 준비하던 과정처럼 지금도 남들의 말에 흔들리고 내 생각과 다르게 일이 흘러간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다른 사람 뒤에 숨거나 의도치 않은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오랫동안 부모님을 설득했던 20년 전처럼 내 생각을 말하는 연습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결혼은 성공과 실패로 나눠지는 결과가 아니라 매일의 선택일 뿐이다. 내일 내가 무슨 선택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