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한별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흰색을 그린다는 불가능한 과제
얼마 전 친구가 죽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친구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이미 보름도 넘게 지난 후에 도착한 소식이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고, 그다음엔 멍했다. 식구들이 저녁을 기다리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다 말고 찬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래서 문자 연락에도 답이 없었던 거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울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오랜 시간 연락도 없던 한 지인의 짧은 메시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한 번이라도 그를 친구로 생각했다면 모멘트에 올린 애도 글을 내리라는 말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설명을 들으려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슬픈데, 친구와의 우정까지 의심해야 하는 과제를 떠맡게 된 것이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친구와 지난 몇 달 주고받았던 메시지는 모두 거짓이었나? 10년 넘는 우정이 실은 다 헛것이었나? 그들은 그동안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던 걸까?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지옥에 빠진 기분이었다. 이제 더 이상 친구에게 물을 수도, 해명을 들을 수도 없다.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의심을 형벌처럼 떠안게 되었다.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의 저자는 <모비 딕> 속 흰 고래를 통해 번역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흰색이 두려운 이유는 거기에 악의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많은 의미를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런 의미도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해할 수 없기에 두려운 존재다.
번역가는 이처럼 하나의 언어에 겹겹이 쌓인 의미를 다른 언어로 옮겨야 한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가능성은 사라진다. 이쪽을 붙잡으면 저쪽을 놓치게 된다. 모든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려 할수록 오히려 원문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나는 번역가는 아니지만, 매일 인간관계에서 번역을 하고 있다. 탐정처럼 지난 10년 간 친구와 주고받던 메시지 하나, 표정 하나, 대화 하나를 다시 꺼내어 이리저리 맞춰보았다. 새로운 단서를 발견하는 대신 새로운 의심만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내게는 최종적으로 번역을 확인해 줄 원저자가 없었다.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소셜미디어와 단톡방에 글을 올리는 일을 줄였다. 누군가 말과 행동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심판하는 일에 진력이 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늘었지만, 그만큼 더 행복해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소통하고 싶었고,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었으며, 느슨하게라도 연결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니므롯은 자기가 하는 말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벌을 받았다. 아폴론의 뜻을 거역한 카산드라는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따돌림이 손끝 하나 대지 않고도 무서운 폭력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이해받지 못하고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은 지옥에서 받는 형벌처럼 고통스러운 일이다.
저자는 번역에서 자비란 원문의 글자에만 매달리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의미와 행간까지 헤아리려는 태도일 것이라 했다. 타인의 말을 가장 나쁜 뜻으로 해석하기보다 그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사정과 마음이 있을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 내 해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자비가 아닐까.
친구가 나를 좋아하면서도 때로는 서운해했을 수 있고, 진심으로 위로하면서도 말하지 못한 감정을 품었을 수 있다. 어느 하나가 반드시 거짓일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의 마음이 하나의 의미로만 이루어져 있으리라는 생각이 오히려 오만일 것이다.
나는 지인이 단정적으로 던진 해석 한 줄에 분노했으면서도, 그가 제시한 해석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 지인이 하나의 해석으로 친구와의 우정을 재단한 것처럼, 나 역시 그 한마디로 지난 10여 년의 시간을 재해석하려 했다. 그 한 마디 때문에 친구도, 우정도 잃을 뻔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앤 카슨은 번역되지 않는 것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결핍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설명되지 않은 채 남겨진 공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어차피 완벽하게 번역할 수 없는 것을 두고 무엇을 해야 할까.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나는 그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 그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면 의심은 완전히 사라졌을까. 10년을 알고 지낸 사람이라 해도 내가 모르는 그의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끝내 말하지 않은 생각과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못했거나 하지 않은 말들이 있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남는다고 해서 우리가 나누었던 시간이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내가 친구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와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 멀리 떨어져서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위로했던 순간들은 실제로 존재했다.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전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내가 경험한 우정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번역을 계속한다. 원문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번역을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소통을 포기할 수는 없다.
사랑도 번역도, 끝내 다 그릴 수 없는 흰색을 향해 계속 검은 목탄을 움직이는 일인지 모른다.
바카라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바카라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