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보았으니, 이제는 보지 않은 척할 수 없다

상하이싱콩예술관 (上海星空艺术馆)

by윤소희

모든 게 너무 뻔했다. 모형 튤립이나 해바라기, 유명 작가의 모조 그림 등이 그득한 거울 방들을 지나 마지막 방에 이르니 비둘기였다. 흰 방에 비둘기 모형이 가득했다. 천장에 매달려 있거나, 벽에 붙어 있는 비둘기들. 몇몇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비둘기는 평화, 흰색은 순결.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그 단어들이 떠올랐다. 이대로 찍으면 사진도 뻔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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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싱콩예술관 (上海星空艺术馆)


평소라면 서지 않을 자리에 서거나 쭈그리고 앉아 보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거나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가까이 다가가 비둘기의 일부분만 프레임에 담거나, 떼로 몰려오는 것처럼 잡아보기도 했다. 모형 비둘기였을 뿐인데, 마치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부러 초점을 흔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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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사진들을 열어보니, 평화는 사라졌다. 비둘기 날개가 사람의 얼굴을 덮고, 검은 발톱이 머리 위를 위협했다. 흰 비둘기들은 순결하기보다 불길했고, 평화의 방이 공포의 방이 되었다.


07650f460167165c5c6aeff6b79c89f1.JPG상하이싱콩예술관 (上海星空艺术馆)


“내가 이런 말을 해서 – 속상한 건 아니지, 여보? 슬퍼하는 건 아니지? 우리의 저녁을, 단둘이 함께하는 시간을 망친 건 아니지?”
...
단둘이 있는 시간을 망쳤냐고! 두 번 다시 그들은 단둘이 있지 못할 것이다.


- 캐서린 맨스필드 「낯선 사람」 중


여행에서 돌아오는 아내를 남편은 애타게 기다렸다. 이제나 저제나 아내와 단둘이 있게 될 시간을 고대했다. 마침내 호텔로 돌아와 둘만 남았을 때, 아내는 전날 밤 배에서 죽은 남자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지도 알 수 없는 낯선 남자의 마지막을 지킨 사람이 자기 아내였고, 그가 죽을 때 선실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남편은 자신이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아내의 시간을 뒤늦게 마주한다.


아내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다른 남자를 사랑한 것도 아니다. 다만 남편이 없는 곳에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그의 죽음을 지켜보고, 그 일로 마음이 흔들렸다. 아내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죽은 남자가 ‘낯선 사람’이었지만, 이야기를 마칠 때는 아내가 ‘낯선 사람’이 되었다.


오래 사랑한 사람에게도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시간이 있다.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얼굴이 있고, 나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마음이 있다.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그것들을 덜 궁금해한다. 묻지도 않고 다 안다고 생각한다. 물론 친밀함은 우리를 안도하게 한다. 다음 말을 짐작하고, 싫어하는 것을 피하고, 익숙한 얼굴을 알아보는 건 오랜 사랑의 기쁨이다. 매일 낯선 사람과 사는 것처럼 사랑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정말 당신을 알고 싶은 걸까.

당신에게 내가 모르는 부분이 없기를 바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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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흰 날개 아래, 검은 발톱이 선명하다.

보았으니, 이제는 보지 않은 척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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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75 2.JPG윤소희 작가

바카라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바카라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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