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지옥에 뛰어들라고?
차고에서 차를 빼는데, 급발진이었는지 앞집 벽을 들이받았다. 옆집 아저씨가 나를 깨웠고, 나는 앰뷸런스에 실렸다.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 손은 자동으로 회사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 중국 오더 있잖아… 그거 제품을…"
담당자에게 할 말을 다 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앰뷸런스가 출발했다.
차를 폐차해야 할 만큼 큰 사고였다. 뇌진탕이라고 했다. 정작 나는 아프지도 않았다. 목에 깁스를 하고 입원하라는 걸 마다하고 회사로 직행했다. 아플 여유도, 걱정할 여유도 없었다. 머릿속엔 하나뿐이었다. 중국 오더를 어떻게 시간 안에 쳐 낼 것인가.
한마디로 일중독이었다.
아이들을 낳을 때도 그랬다. 다들 육아휴직이 2주네 3주네, 짧다고 불평한다. 나는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일했고, 나오자마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여자 사장에게 육아휴직 같은 건 없다. 나라도, 누구도 챙겨 주지 않는다. 쉬는 것까지 스스로 챙겨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온라인 게임을 그만두고 10년 가까이 사업을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즐거운 시절도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 남편과 나는 주말마다 카페에 가서 계획을 세웠다.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힘들게 깔아 놓은 인프라 위에서 이걸 더해 볼까, 저걸 빼 볼까. 같은 재료로 이렇게도 조리해 보고 저렇게도 조리해 보는 시간. 아, 내가 만든 인프라가 먹히는구나. 행복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정확히는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시험관으로 아이를 가졌고, 그 준비부터 돈이 많이 들었다. 남편도 그 무렵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이제 번 돈을 회사에 다시 넣는 게 아니라 집으로 가져와야 했다. 생계를 위해, 조금 더 나은 우리 가족의 생활을 위해. 그때부터 돈에 예민해졌다.
그 전의 나는 멋진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패션 회사에 다녔던 사람이라 멋진 브랜드에 마음이 갔다. 남는 장사가 아니어도 보기 좋으면 됐다. 하지만 아이라는 바카라임이 생기고 나서는 겉멋은 쏙 빠지고 생계형 사장이 됐다.
그때부터 사업이 즐거웠던 기억은 없다. 아이 키우는 것도, 사업도, 직원 관리도 힘들었다. 진상 고객이나 진상 직원 하나만 만나도 멘탈이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그래도 그만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문제를 하나씩 풀면서 회사를 키워 가야 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주문이 쏟아졌다. 순전히 행복해야 할 고민이었다. 직원들과 그 오더를 쳐 내야 했다.
그러다 사고가 난 것이다.
남편은 그 전부터 나를 심각하게 걱정했는데, 사고 이후로는 더 심각해졌다. 우리 집 행복지수는 0이 아니라 마이너스였다.
쌍둥이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부엌 바닥을 뒹굴며 아이패드만 봤다. 시터는 내가 오기 전에 청소를 끝내 놓느라 놀아 줄 틈이 없었다. 시터가 청소하며 돌아다니는 동안 아이들이 돌아다니지 않게 하는 최고의 안전장치가 아이패드였다. 아이들이 안전하게만 있으면 그걸로 됐다. 그게 최상바카라이었다.
남편과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도대체 왜 일을 하지? 왜 돈을 벌지? 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직원들도 행복하지 않았다. 가족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데, 나는 미친 듯이 일만 했다.
나는 뭐 때문에 일을 하는 걸까.
그 교통사고가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었다. 사고를 계기로 남편과 우리 삶을 다시 들여다봤고, 나는 사업에서 엑시트하기로 했다. 마침 내 브랜드와 제품을 좋아하던, 중국에서 사업하는 한국 사업가를 만났다. 그들에게 회사를 넘겼다.
나에게 시간이 생겼다. 가족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정말로 가족의 행복지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둘 다 일할 때는 아이 하나만 아파도 멘붕이었다. 아이들이 아파서도, 어린이집이 쉬어서도 안 됐다. 그 긴박감이 사라졌다. 내가 쌍둥이 육아를 맡으면서 남편은 더 이상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매달리지 않아도 됐다.
어느 날 차에 기름을 넣으러 갔다. 나는 조금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 나한테 시간이라는 여유가 생겼구나.
예전엔 그럴 시간이 없었다. 돈을 더 주더라도 빨리 일을 끝내고 쌍둥이 옆으로 가야 했다. 늘 동동거렸다.
남편도 나도 취미 생활을 시작할 여유까지 생겼다. 평온한 날들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쉰 번째 생일이 왔다. 존재감 없던 그 생일. 언제부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그렇다고 다시 사업을 할 엄두가 나는 건 아니었다.
감히.
다시 그 지옥에 뛰어들라고?
20대, 30대에 열정만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솔직히 무대포 정신도 있었다. 잃을 게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업이 얼마나 힘든지 한번 겪어 보면 달라진다.
지금은 바카라임질 것도, 잃을 것도 너무 많다. 다시 미친 듯이 일만 한다면 내 체력도, 가족과의 시간도 20, 30대와 같을 리 없다.
무엇보다 두려웠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 평온한 세상을 살고 있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면 다시 사업을 해야 할까. 아니면 존재감 없는 인간으로 평온하게 살아야 할까. 나는 저울질을 해야 했다.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직시해야 하는 시간이 오고 말았다.
다음 화 「존재감을 원하면 그 무게를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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