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안녕하세요. 구겨졌다가 다시 펴진 변과장입니다.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어서 제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여러분은 아실까요?
‘서른일곱 살 변과장은 왜 공기업을 그만두고 양재천을 달렸을까’를 처음 쓰기 시작하던 날이 떠오릅니다. 잊고 싶었던 일들을 무심히도 더듬어 어둠 속 기억을 꺼내며 글을 썼습니다. 어떤 날은 글을 쓰며 엉엉 울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쓰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상처가 수면 위로 올라와 한동안 우울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쓰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온전하지 못한 저도 저이기에 그런 저를 마주하고 나면 결국은 제 스스로 회복되어감을 조금씩 느꼈기 때문입니다.
초고를 완성하고 여러 번의 퇴고를 거치면서 ‘아, 이건 이렇게 고칠까?’, ‘이 부분은 바카라에 쓰기 조금 창피하다’라며 삭제를 고민한 부분들이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맨 처음 이 글은 딱 두 명을 위해 썼습니다. 첫 번째는 종이처럼 한껏 구겨져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어둡고 깊은 터널 속에 갇힌 단 한 분이라도 이 글을 보고 다시 살아갈 힘을 내실 수 있을까 하여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단 두 사람만 적당히 다시 펴줄 수 있다면 이 글의 소임은 다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당시 제가 느낀 감정이나 생각들을 되도록 수정하지 않는 선에서 퇴고를 마쳤습니다.
저에게는 꽤나 잔인하고 가혹했던 지난 몇 해가 가고 이렇게 다시 봄이 돌아왔습니다. 눈이 쌓이고 잎이 떨어져 나뭇가지들로 썰렁했던 양재천에도 다시 초록이 새록새록 돌아오고 따뜻하고 얄궂은 그 봄 햇살이 다시 눈부시게 비추는 요즘입니다. 지난해 저는 양재천 옆 작은 집에서 침대 없이 매일 아침 이불을 개고 저녁에는 그 이불을 다시 깔아 그 위에서 매일 잠에 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비가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도 있었지만 그냥 우비를 뒤집어쓰고 달렸고, 어떤 날은 진통제를 먹어도 가라앉지 않는 두통에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가 무작정 달렸습니다.
사실 매일이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 불안은 나를 지켜줬습니다. 불안이 저를 어떻게 지켜줬냐고요? 저는 불안할 때마다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려 매일 양재천을 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불안이 약속이 되었고 그 약속이 되레 저를 안정되게 만들어줬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 불안도 제 편이었습니다.
다만 이제는 압니다. 터널의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는 것을. 구겨진 종이도 다시 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키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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