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내 절친의 결혼식

by달dal

내 절친의 결혼식


나에게는 열여덟 살에 만나 서른일곱 살이 될 때까지 비슷한 시기에 늘 닮은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며 살아온 친구가 있다. 같은 나이에 닮은 결을 가진 우리는 폭풍의 사춘기를 지나 가슴이 뛰다 못해 터질 것 같은 푸릇한 20대를 함께 보냈다. 그리고 서른이 넘어서는 언제나 내 안의 어두움과 밝음을 모두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요란하게 내내 비를 뿌리며 다가오던 가을은 어느새 더 높아진 하늘과 상쾌한 공기로 나를 맞아주었고, 그날은 때로는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친구의 결혼식 날이었다. 내 친구는 본인이 태어난 가을에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신부가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세탁소에서 찾아왔다. 그리고 저녁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리 양재천을 뛰러 나갔다.



[달리기 45일째]

오후 2시, 내 친구에게 응원 문자를 보내고 양재천에 나왔다. 밤에만 나오던 그 길은 하루 중 가장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밝은 그 시간에는 더 활기가 넘쳤다. 민소매를 입고 달리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양재천 주변의 레스토랑 테라스에는 점심 식사를 하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도 보였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밝은 태양빛에 반짝거리는 양재천 위의 윤슬이었다. 반짝반짝 흐르는 물결은 언제 봐도 내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주었다.


하루의 정중앙, 햇빛은 뜨거웠지만 달릴수록 바람은 시원했다. 결혼식에 입고 가려고 찾아둔 내 민트색 원피스에 어떤 구두를 신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그 세계를 다시 함께 쌓아갈 수 있을까? 내 친구가 결혼하면 지금껏 나누던 수많은 생각은 누구와 나눠야 하지?'



방금 전까지 내 친구에게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잠시 후에 만나자는 애정이 듬뿍 담긴 메시지를 보낸 나였다. 달리다 보니 점점 숨이 차올랐고, 차오르는 숨과 함께 이상한 두려움과 허전함이 밀려왔다. 이상했다.


'이건 서운한 감정도 아니고 질투 같은 건 더 아닌데, 이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은 뭘까? 이상한 기분이 들어.'


나는 입고 뛰던 땀에 젖은 후드 집업 외투를 벗으면서 멈춰 섰다. 내가 혹시 나는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데, 내 친구는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걸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죄바카라감 비슷한 감정과 함께 헐떡이던 숨을 내쉬며 벤치에 앉았다.


'뭐야... 너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거였어?

진짜? 오늘 진심으로 내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자.'


내 손목 위 애플워치의 시간을 보니 3시가 넘어 있었다. 일단, 이 감정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벌떡 일어나 결혼식 갈 준비를 하기 위해 집으로 걸어갔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민트색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거울을 보니 오랜만에 차려입은 내 모습이 낯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운동복 말고 다른 옷을 입어본 게.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를 손질하고, 구두를 신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문득 생각했다.


'내 친구가 결혼하면 이제 예전이랑은 달라지는 걸까?'


택시를 타고 집에서 가까운 식장으로 가는 내내 창밖을 바라봤다. 토요일 늦은 오후 거리는 평범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딘가로 가고 있었고, 세상은 늘 그랬듯 돌아가고 있었다. 나만 시간이 멈춘 것 같은데, 세상은 계속 앞으로 가고 있었다.


식장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화려한 가을 꽃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가지 색깔의 장미가 어우러진 아치 아래로 하객들이 하나둘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민트색 원피스 차림으로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내 친구의 회사 동료들, 대학 친구들, 회사 동기들.저마다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너 요즘 뭐 해? 아직 그 회사 다녀?"


누군가 물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 요즘은 좀 쉬고 있어."


"그래? 뭐, 요즘 다들 이직도 많이 하고 그러잖아."


다행히 상대방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척했지만, 사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신부 대기실 앞에서 내 친구를 볼 수 있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가녀린 어깨를 드러낸 친구는 정말 아름다웠다. 화사하게 웃는 얼굴, 반짝이는 눈빛을 큰 카메라에 서둘러 담았다.


"와, 진짜 예쁘다. 축하해."


내가 말하자 친구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식이 시작됐다. 신랑 신부가 입장하고, 주례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내 친구는 이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는 거구나.

그동안 우리가 함께 나눴던 모든 고민, 눈물, 웃음이 이제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식이 끝나고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보는 음식들이었다. 샐러드, 스테이크, 파스타, 여러종류의 디저트 들까지 다양했다. 나는 접시를 들고 천천히 음식을 담았다. 평소보다 훨씬많이 담았다.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내가 많이 먹으면 내 친구가 더 행복할것 같았다. 그런 주술 같은 생각을 하며 나는 계속 음식을 입에 넣었다.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낮에 양재천을 달릴 때와는 다른 감정이었다. 조금 더 정리된, 그러면서도 여전히 복잡한 감정.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구두를 벗고 원피스를 벗었다. 그리고 선반 어딘가에 둔 소화제를 꺼냈다.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배불리 먹은 음식들이 잘 내려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날 평소에 먹던 양보다 훨씬 더 많이 먹었다. 왜였을까? 유치하게도 내가 결혼식에서 잘 먹고 많이 먹은 만큼 내 친구가 잘 살 것 같았다. 그리고 낮에 뛰면서 든 서운함, 뭐 그런 비슷한 감정에 약간의 죄바카라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이래서 여자가 늦게까지 결혼 안 하면, 히스테리 부린다는 건가?'


하얀 소화제 두 알을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탄산수와 함께 삼켰다. 전화가 울렸다.

내 친구였다. 축의금 정리를 끝내자마자 나에게 전화를 한 친구는 평소 같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야, 내가 너 결혼할 때는 내가 꼭두새벽부터 축의금 정리할 때까지 도와줄게. 이거 해보니까 보통일이 아니야. 진짜로."


내 친구는 이미 내 결혼식장에 가 있는 것 같았다. 너무 당연하게 내 축의금을 정리할 거라는 내 친구의 믿음이 나에게 느껴졌다. 그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웃다가 전화를 끊었다. 방금 전까지 느끼던 감정이 갑자기 어색했다.


늘 그랬듯이 내 친구는 나보다 내 인생을 더 믿어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나도 나를 잘 모르는 시간을 꽤나 오래 보내고 있었는데, 내 친구는 그런 내 뒤에서 정말 근거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겠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뻔뻔할 수가 없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문자가 왔다.


친구야, 오늘 내 결혼식에 온 내 친구들 다 너를 알고 있더라고.

지금까지 내가 항상 자랑스러워하던 너를 내 주변에 자랑하고 다닌 보람이 있다.

복잡한 결혼식준비하면서 모든 걸 엑셀로 정리했으니, 곧 넘긴다.

사랑해.






"그날 죄바카라감 느껴 밥을 몇 그릇이나 더 먹은 내 자신이 너무 웃기고 짠해요. 좀 귀엽기도 하고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요. 나는 늘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지점을 지나오던 나의친구와 내가 삶의 다른 궤적으로 들어서던 그날이 처음이라 조금 겁이 났던 것 같아요.다른 궤도로 들어선 내 친구가 다른 행성으로 가버릴까 봐요.

하지만 그건 기우였어요. 그날 밤 친구의 문자를 보며 알았거든요. 우리는 각자의 궤도를돌지만, 여전히 같은 우주 안에 있다는 걸요. 그리고 그 친구는 지금도 내 결혼식 엑셀 파일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근거 없는 확신으로요. 그리고 내 친구는 지금도 예전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내 옆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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