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 자신을 지키며,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안녕하세요. 작가 윤달입니다.

by달dal

안녕하세요. 작가 윤달입니다.



이번글을 멤버십으로 발행할까 하다가

혹여 멤버십으로 인하여 이 글이 필요하신데 끝까지 읽지 못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아

아니, 계실 수도 있으니

일반 발행으로 진행합니다.



한 분에게라도 위로가 된다면,

이 글의 소명은 다하는 것 이겠지요.


'회복은 직선이 아니니까요-'


모두 무탈하시고, 또 무탈하세요.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또 깊은 위로를 보내주셔서 그 마음들을 매일매일 잘 기억하며 살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달리기 12일째]


열흘을 조금 넘게 아침엔 요가 수업에 가고, 저녁엔 양재천을 달리는 시간을 보냈다. 2주가 채 안 되는 그 시간에 나에게도 작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우선 첫 번째로 달리기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는 것. 첫날 걷는 속도로 뛰던 나는 첫날보다는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가는 요가원에서는 중아 씨가 내 옆에서 함께 수련을 시작했다. 나는 그녀와 별다른 대화를 해보진 않았지만 그 노란색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요가원에서 그저 정해진 시간 아침에 매번 서로 만났다. 달리기는 혼자 했는데, 요가는 꼭 메이트가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이 끝나면 출근 시간에 쫓겨서인지 항상 급하게 매트를 정리하며 인사를 하고 후다닥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내 달리기 속도가 조금 빨라진 것과 다소 바쁜 요가 메이트가 생겼다는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변화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나는 아팠다. 오른쪽 발목과 무릎이 날이 갈수록 아팠다. 한 계절 내내 집에만 누워 있던 나는 체중이 꽤나 늘었고, 운동 능력도 많이 저하되어 있었다. 늘어난 체중에 굳어 있는 몸으로 열흘을 넘게 매일 뛰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100일 동안 하기로 한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난 그때 달리는 것 이외에 하고 싶은 것 혹은 할 것도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오후 1시에 정형외과를 예약했다. 무릎보다도 걸을 때마다 오른쪽 발목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계속됐다. 사실 몇 년 전 계단을 내려오다가 넘어져서 오른쪽 발목의 인대가 늘어나 한 달간 보조기를 했었다. 병원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데, 문득 그때 다쳤을 때 생각이 났다.



'역시 몸이든 마음이든 한번 망가지거나 상처가 나면 계속 자국이 남는구나. 내 발목도 지금 내 마음도 계속 이 자국들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 구리다.'




대기 시간도 잠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정신과 진료실과는 사뭇 다르게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뼈 모양의 해골 모형부터 해서 가득가득 차 있는 그 진료실은 파란색이 유독 많았다. 그러고 보니 이 병원 간판도 파란색이었다. 그때, 다소 젊어 보이는 40대 초중반 얇은 무테안경을 쓴 의사가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늘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제가 한 2주 전부터 매일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요. 뛰고 일주일 정도 지나고 지금까지 오른쪽 발목과 무릎이 욱신거리는 통증이 2주째 계속돼서 왔어요. 그런데 저 계속 달려야 해요."



"네? 아, 운동선수세요? 훈련을 계속하셔야 하는 상황이십니까?"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요. 제가 사정이 있어서 앞으로 100일 정도는 달려야 해요.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문제예요."



"그러시군요. 예전에 오른쪽 다리 쪽으로 다치신 적 있으십니까?"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던 의사가 말을 이었다.



"지금은 일단 간단한 엑스레이 촬영만 해서 정확히 진단하는 데 한계는 있지만 오른쪽 발목 인대가 많이 늘어나 있고, 양쪽 발목 조직도 부어 있어요. 무릎도 마찬가지고요. 아직까지는 심한 염증 소견까지는 보이지 않아 다행이긴 합니다."


"그럼 저 못 뛰어요?"



"사실 지금은 휴식을 취하시는 게 가장 좋기는 합니다.

그런데 혹시 계속 꼭 달리셔야 하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 질문에 내가 계속 왜 달려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내가 왜 달려야 하는지. 그리고 대답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제가 2주 전에 새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 집에 이사 들어간 첫날 일기를 썼는데요. 거기에다가 저 자신과 약속을 했어요. 앞으로 100일간 양재천을 달리겠다고요. 그게 이유라면 이유예요. 이 이유는 혹시 명분이 약할까요?"




의사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명분이 아주 충분하십니다.

환자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세상에 중요한 약속은 없는 것 같은데요?"




"정말인가요? 이상하게 들릴까 봐 고민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는 게 치료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저는 계속 달려야 해요."



"대신, 몇 가지 말씀드릴게요. 일단 약을 일주일 정도 드릴 테니 잘 복용하시면서 달리기 전후로 스트레칭 충분히 해주셔야 합니다. 달리고 난 후에는 얼음찜질 꼭 해주시고요.

발목이나 무릎을 지지할 수 있는 보호대 착용도 도움이 되니까 꼭 하시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너무 아프다 하는 날은 뛰기보다는 꼭 걸어주셔야 합니다.

어떠세요? 가능하실까요?"




"네, 명심할게요."




그리고 일주일 후에 병원에 다시 오라는 설명과 함께 진료실을 나오려던 찰나에 선생님은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환자분, 자신과의 약속 저도 엄청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약속도 결국 환자분 본인을 위한 약속 아닌가요? 환자분을 가장 좋은 상태로 지켜내면서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키실지 고민하시면 어때요? 사실 저도 러닝 너무 좋아하는데, 발목이 너무 아픕니다. 그래서 최근에 러닝화도 좋은 거로 다시 샀어요."




그리고 선생님은 멋쩍은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나도 짧은 대답을 하며 다음 주에 다시 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진료실을 나왔다. 무슨 예상도 못한 겸언쩍은 위로였을까- 드라마인가-




'나를 지켜내며 나와의 약속을 지키라고?

아, 나는 또다시 나와의 약속에 집중하느라 무릎이 아픈데도 뛸 걱정만 하면서

나 자신을 후순위에 두려고 했나 보다.'




나를 지키기 위한 약을 약국에서 받았다. 그리고 근처 가게에 가서 무릎과 발목 보호대를 구입했다. 한 손에는 약봉지, 다른 한 손에는 보호대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내내 생각했다.




'나를 지키는 약과 나를 지키는 보호대.

너무 아픈 날은 걷기.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키면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명심.'







[달리기 12일째]

11월 초 날씨는 이제 제법 쌀쌀했지만, 달리면 금세 체온이 올라가는 게 느껴지면서 적당한 온도가 되었다. 날씨와 체온이 적당히 만나는 그 지점.



낮에 병원에 다녀오고 약을 먹어서인지, 달리기 전 스트레칭을 평소보다 더 많이 해서인지, 기분 탓인지, 발목이 아파서 본인도 러닝 어렵다는 정형외과 의사의 멋쩍은 위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보다 훨씬 달리기가 좋았다.



집에서 나와 양재천으로 향하는 길. 오른쪽 발목에 보호대를 감고 무릎에도 보호대를 착용했다. 처음엔 뭔가 이상하고 불편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안정감이 느껴졌다. 나를 지켜주는 이 작은 친구들이 고마웠다.


스트레칭을 평소보다 두 배는 더 했다. 발목을 천천히 돌리고,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며 몸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도 잘 부탁해. 천천히 가자. 무리하지 말자.'




달리기를 시작했다. 어제처럼 빨리 달리지 않았다. 선생님 말대로 나를 지켜내면서 달렸다. 속도를 조금 늦추니 발목의 통증이 한결 덜했다. 무릎도 마찬가지였다.




양재천 위로 저녁 하늘이 깔리고 있었다. 11월 초의 하늘은 10월보다 더 빨리 어두워졌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고, 강물 위로 그 불빛이 일렁였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달리는 내 몸은 따뜻했다.



지난 열흘 동안 달리면서 나는 일기장에 적은 약속을 어떻게든 지켜내 보려고 아픈 내 발목을 모른 척하려 했나? 100일을 달려야 한다는 그 약속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은 보지 못했다. 역시 나라는 사람의 관성도 어마어마했다는 생각과 함께 그저 한 발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나를 지키면서 약속을 지킨다. 이런 거였구나.'



2.5km를 달렸다. 어제보다 거리는 조금 줄었지만 괜찮았다. 오늘은 나를 지켰으니까.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냉동실에서 얼음주머니를 꺼냈다. 발목과 무릎에 번갈아 가며 얼음찜질을 했다. 차갑고 시렸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날 밤 잠들기 전, 다이어리에 짧게 적었다.




'발목아 무릎아 잘 부탁해. 약속도 중요하지만 너네들이 더 중요해. 고마워.'









"그 정형외과에 나중에 가서 본 건데, 진료실 바카라상 옆에 아주 멋진 파란 러닝화가 있었어요.

그 선생님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들을 옆에 두고 일하고 계셨더라고요.

우리는 하루에도 아주 여러 번 약속을 하잖아요. 회사에서 사람들과, 사랑하는 연인과, 얼굴 본 지 오래된 친구들과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약속을 지키려고 각자의 노력을 해요.

나는 돌이켜보면 다른 사람들과 약속도 많이 했지만 나 자신과 약속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상하죠? 나는 혼자이고, 내 주변 사람 수는 훨씬 많은데요.

나와의 약속이 더 많다니요.

그 뒤로 나와의 약속을 줄였어요. 나를 위한 약속이 나를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생길까 봐요.


당신은 요즘 어떤 약속을 했어요? 누구와 그 약속을 했어요?


부디, 당신 자신을 잘 지키며 그 약속을 지키길 진심으로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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