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은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자랑스러운 한글날이었다.
한글(훈민정음)은 세계 문자 중에서도 독창성과 과학성이 가장 뛰어난 문자 중 하나로 꼽힌다. 세계의 많은 문자들이 창제시기와 창제자조차 모르는 반면 우리 문자 한글은 창제시기(1443년) 창제자(세종대왕)까지 알고 있다.
또 영어의 알파벳 등이 타 문자들의 영향을 받아가며 발전해 발음의 모순점 등을 가지게 된 것에 비해 한글은 발음 기관을 본뜬 과학적 자음 설계 과정을 거쳤기에 이 같은 문제를 겪지 않는다.
한글은 컴퓨터 자판으로도 완벽하다. 중국이나 일본이 컴퓨터에 각자의 문자를 입력하기 위해 영어까지 사용해 가며 고군분투하는 동안 우리는 매우 빠르고 간편하게 한글 키보드를 이용해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다. 우리가 인터넷 강국, 컴퓨터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이 간단한 한글 키보드의 기여도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많은 문명과 국가들이 문자를 부유층과 기득권의 전유물로 여겨왔던 것과는 달리 한글은 누구든 쉽게 익혀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백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저 낭만이 철철 흘러넘친다.
요즘에는 한국인과 일본인간의 교류도 훨씬 많이 증가했다. 정치를 떠나 한일 양국 국민들은 급속도로 친해지고 있다. 양국 언어 문법의 유사성 덕분에 번역 기술도 빠르게 발전해 이제는 아예 SNS에서 한국인은 한국말로, 일본인은 일본말로 댓글을 달면서 대화도 한단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관광지는 일본이 됐고 국민 6명 중 1명밖에 여권을 소지하고 있지 않은 일본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관광지는 한국이 됐다. 서로 간의 해묵은 감정보다 오직 지금 서로의 문화를 사랑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우연히, SNS를 통해 한글날을 축하하는 일본인들의 글을 보았다.
비록 MZ세대 일 지언정 밀레니얼의 최끝단, 늙크크인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축하글을 보며 제일 먼저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일제 강점기 행해진 한국어 말살 정바카라이었다.
일제는 1910년 강제 병합 직후부터 우리말의 목을 조여왔다.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을 통해 학교에서 한국어의 모국어 지위를 박탈했다. 이어진 것은 일본어의 강제 보급이었다.
1938년 발표된 제3차 조선교육령은 더 심했다. 그나마 이뤄지던 한국어 교육은 아예 중지되었고 학교는 물론 일상에서까지 한국인들은 일본어 사용을 강요받았다. 이의 여파로 1940년 우리말 신문이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되기도 했다.
급기야 1942년에는 한글을 연구하고 사전을 편찬하려던 학자들을 체포한 '조선어학회 사건'까지 일어났다.
문득 지금의 일본인들은 일제가 식민시절 벌인 한국어 말살 정바카라에 대해 알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한때 자신들의 조상이 없애려던 문자의 탄생을 후손들은 축하한다니.
일본인들의 한글날 축하 메시지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꼭 알았으면 좋겠다. 지금 자신들이 축하하는 한글이, 자신들의 조상들에 의해 사라질 뻔했었다는 것을. 그렇다고 죄바카라감을 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니까.
다만 그런 광기 어린 시기가 있었다는 것은 알아줬으면 한다. 그렇기에 그런 광기가 반복되지 않게 사이좋게 잘 지내보자고 손을 내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