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그 반대의 것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으로 증명된다.
우리는 매일 아침 '최고의 효율'을 다짐하며 눈을 뜨고, 가성비와 기능성이 떨어지는 선택은 '실패'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든다. 우리의 삶이 오직 정답과 효율, 그리고 증명된 본질로만 가득 차 있다면, 그 삶을 혹은 그 세상을 과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습만 있는 단색의 세상을 위해 서로 싸우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 삶에 효율과 기능, 진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낭비와 로맨스, 그리고 허무가 기꺼이 함께있는 것이 좋다.
우리는 쓸모 있는 것들에 집착하느라 '무용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잊곤 한다. 목적지 없이 걷는 산바카라, 서점 구석에서 발견한 제목 모를 시집,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쓴 손편지. 경제적 논리로 보자면 이 모든 것은 시간과 감정의 '낭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생산성 없는 시간들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숨구멍이 된다. 낭비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효율에 매몰되지 않고 기꺼이 나의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기계가 아닌 인간이 된다.
이러한 인간다움은 로맨스와 허무라는 필연적인 이중주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로맨스는 단순히 감상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조금 더 다정하고 비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보겠다는 의지다. 반면 허무는 그 모든 다정함 끝에 결국 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냉정한 진실이다. 낭만주의자는 별을 보며 꿈을 꾸고, 허무주의자는 그 별이 이미 수만 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이 둘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지점이 좋다.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에 기꺼이 마음을 다하는 모순이야말로 삶을 가장 입체적으로 만든다.
만약 세상에 불변하는 '본질'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실험실의 통제된 환경이나 교과서의 깔끔한 문장 속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진짜 본질이라면, 온갖 쓸데없는 낭비와 뼈아픈 허무, 그리고 대바카라 없는 낭만들이 뒤섞인 이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기어코 살아남아 스스로를 증명해내야 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은 허무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이 유효하다면, 가장 비효율적인 순간에도 인간의 존엄이 빛나고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본질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