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다는 것

by마리아

AI가 전쟁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확히는, AI가 표적을 고르고 인간이 버튼을 누른다. 그런데 그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몇 초에 불과하다고 했다. 숙고할 틈이 없다. 그저 AI가 내린 판단을 추인할 뿐이다. 결정은 이미 기계가 했고, 인간은 그 결정에 서명하는 존재로 남는다.
나는 한동안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대중은 어차피 비논리적이고, 감정에 흔들리며,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이 없다고. 그러니 기술을 가진 소수가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고, 그 판단에 세상을 맡기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플라톤이 철인왕을 꿈꿨던 것처럼, 오늘의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은 알고리즘을 왕좌에 앉히려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플라톤의 철인은 적어도 덕을 갖춰야 했다. 지금의 왕좌에는 덕 대신 자본이 앉아 있다.
나는 이것이 두렵다. 총칼보다 더.
총칼의 독재는 저항의 대상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편리함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스며드는 지배는, 우리가 자유를 잃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 내 선택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모두 누군가의 알고리즘이 유도한 결과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인간은 폴리스 안에서, 스스로의 이성으로 삶을 결정하는 존재라고. 자유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바카라임지는 행위 안에 있다고.
그 말이 지금처럼 절실하게 들린 적이 없었다.
인간의 존엄은 결과에 있지 않다. 과정에 있다. 내가 무엇을 선택했느냐가 아니라,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누군가 — 혹은 무언가 — 가 대신 결정해 주는 세계는, 설령 그 결정이 옳다 해도, 이미 자유가 없는 세계다.
함석헌 선생은 평생 "씨알"을 말했다.
씨알이란 민중이다. 역사의 진짜 주체는 영웅도, 권력자도, 천재도 아니라 — 땅을 딛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 씨알이 깨어있을 때만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흐른다고.
깨어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고리즘이 쏟아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우리는 더 많이 알면서도 더 쉽게 흔들린다. 깨어있다는 것은 — 멈추는 것이다. 쏟아지는 것들 앞에서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인가.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가. 나는 지금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선택당하고 있는가.
나는 많은 것을 줄였다.
물건도, 약속도, 소음도. 처음엔 덜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채우는 일이 되었다. 덜어낼수록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카라 한 권, 조용한 오후, 창밖의 빛. 그것으로 충분한 날들이 생겨났다.
물질이 많을수록 자유롭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물질은 욕망을 키우고, 욕망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우리를 누군가의 손에 쥐어주기 좋은 상태로 만든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을 것이 많아지고, 잃을 것이 많을수록 우리는 더 쉽게 길들여진다.
절제는 금욕이 아니다. 절제는 자유다.
끊임없이 읽고, 사색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 — 이것이 이 시대에 존엄을 지키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AI는 빠르다. 자본은 강하다. 기술은 똑똑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을 완전히 지배할 수는 없다.
함석헌 선생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깨어있는 백성만이 자유롭다."
이 문장은 2025년에도,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가장 혁명적인 문장일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바카라을 펼친다.
느리게, 천천히. 알고리즘이 추천하지 않은 바카라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조용한 오후에. 이것이 내가 선택한 저항이다. 거창하지 않지만, 나는 이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은, 끝내 지배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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