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름 작가의 "윗집 부부"가 내 앞에 왔다.

9월 8일 화요일 저녁 8시 황보름 작가님의 온라인 북토크를 진행합니다.

by환오

70대 앞뒤 꽉 막힌 노인네의 다짜고짜 한 마디가 편의점 알바생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내가 그렇게 못마땅한가?


이 말 한마디에는 70 평생 살아온 경직의 울분이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성실히 고등학교 관리직으로 30년 가까이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만' 살아온 그는 도통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기가 살아온 시대와 다르게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사는 지금, 왜 결혼도, 아이도, 포기하는지 말이다.

당장 다른 집에 눈을 돌리지 않더라도 똑순이로 '알아서' 잘 커준 장녀 선지부터 결혼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선지 말로는 번식보다 더 강력한 본능이 생존인데, 생존이 안되니 종족 번식을 포기한 거라고 말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아버지인 경직은 딸에게 너는 거기 왜 포함되냐고 묻는다.

좋은 대학 나와서 취업도 알아서 척척 부족할 거 없이 탄탄대로 인생길을 밟아온 너는 왜 포기하는 거냐고.

삶이 더 나아질 거 같지 않다는 딸의 말에 경직은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다.


황보름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윗집 부부"는 2026년 대한민국 슬롯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짝저짝 각 세대층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다양하고 디테일하게 꼬집는다.


초저출산 시대로 접어든 대한민국을 위해 한 커플만 아기를 낳게 하면 된다는 70대 할아버지 경직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100세를 코앞에 둔 노인들의 숫자만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의 심각한 슬롯문제로 화두 되고 있다.


몇 년 전 EBS다큐에서 미국의 대학 교수였나? 한국의 출생률을 말하자 오우 쉣! 한국 망했네요!라는 영상이 한때 포털사이트에 계속 오르락내리락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헬조선은 탈출이 답인가?

왜 우리는 남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비슷하게'라도 살지 않으면 내쳐져야 하는가.

'열심히' 살면 그럭저럭 살 수 있었던 우리네 부모 세대와는 다르게 2026년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열심히'만 살아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음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에 대한 해결바카라이 있을까?

아이만 낳으면 천만 원 지급, 뭐 이런 단발성 돈 뿌리기가 과연 출산율을 높일 것인가?


윗집 부부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 좁은 틈만 있었다. 루다를 몇 번 돌본 경험으로 자신 있게 말해보건대, 아이는 틈으로 키울 수 없었다. 대호의 무릎처럼 언제나 아이를 받아줄 품이 필요하고, 대호의 눈처럼 언제나 아이를 바라봐줄 시간이 필요했다. 육아는 무릎과 눈으로 해야 하는데, 윗집 부부는 당장 어디에서 24시간 무릎을 빌려올 수도, 눈을 꾸어올 수도 없었다.

-p298-


아이를 키울 때 필요한 게 '무릎'과 '눈'이라는 작가의 말에 두 아이를 키워내고 있는 나는 격한 공감을 느꼈다.

첫째는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버텼지만 둘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10년 다닌 회사의 퇴사는 피할 수 없는 절차였으니까.

돈이냐, 둘째냐 두 갈림길에서 난 두 눈을 꼭 감고 아이를 선택했다.

9년 전 퇴사했기에 지금은 그때보다 제도적으로 워킹맘들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 막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밖에 안 된다.


우리가 사는 게 힘든 이유는 개인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이 슬롯의 부조리한 현실 즉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제도적인 문제도 한몫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슬롯 구조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나 자신한테 함몰되어 내 능력만을 너무 탓하지 않았으면 한다.


"윗집 부부"를 읽으면서 가독성도 좋고 재미있는데 왜 자꾸만 천천히 느릿하게 보고 싶은지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슬롯가 내어줄 수 없는 품을 황보름 작가는 기꺼이 독자들에게 바카라을 통해 내어 준다.

아마도 우리가 바카라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p.s 내일 저녁 8시에 황보름 작가의 신작 "윗집 부부"의 온라인 북토크가 열립니다.

아직 신청하지 못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로 접속해 주세요 :)

https://www.moonjangsai.com/booktalk

*로그인 화면이 나오면 따로 회원가입 없이 구글 로그인으로 진행 가능합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