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이 쫙 빠지고 몸도 마음도 병든 날, 가장 하기 싫은 것이 요리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서 씻고 다듬는 것조차도 참 귀찮고 성가시다. 게다가 중간중간 간도 한 번씩 봐야 하고, 요리를 하면서 쌓여가는 식기들도 금방 지저분해져서 거슬린다. 사실 '역시나 이런 날은 아무래도 요리하고 싶지 않아. 난 오늘 너무 힘든 날을 보냈고, 피곤해.'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다. 한 끼정도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즉석밥으로 대충 때우거나, 뭐 그래도 되는 거니까.
그런데 이런 날일수록 우리는 힘을 내서 요리를 해야 한다.
힘을 내서 된장찌개를 끓여야지
마법사가 마술을 부릴 때, 주문 같은 걸 외우지 않는가. 수리수리 마수리라던가(?). 내게도 마법의 주문이 하나 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친 날에도, "그래도 힘을 내서 된장찌개를 끓여야지"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는 것이다. 쇼파에 누워있다가 그렇게 중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벌떡 일어나 도마를 꺼내고, 냄비 하나를 꺼내서 요리를 시작하고 있다. 마법이 시작된 것이다.
미역국도, 김치찌개도, 곰탕도, 모두가 괜찮지만, 이왕이면 된장찌개가 가장 좋다. 내가 특별히 된장찌개를 좋아해서도 아니다. 난 오히려 푹 끓인 곰탕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그것보다는 된장찌개가 기운 차리는 데에는 효과가 좋다. 세상에 보양식은 얼마든지 많다. 인삼이나, 대추 등 각종 한약재료가 들어있는 갈비탕이라던가, 삼계탕, 곰탕 등등 이런 요리들도 건강에 참 좋고,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다. 하지만 된장찌개가 힘 나는 데는 훨씬 도사다. 진한 된장 국물이 어떤 마법을 부렸는지, 그늘졌던 마음마저 맑게 정화된다.
마른 멸치와 다시마로 우린 육수에 된장 한 숟갈을 대충 푹 넣어서, 대파와 양파와 송송 썰은 감자와, 애호박을 숭덩숭덩 썰어서 넣는다. 두부를 넣을 때도 있지만, 안 넣어도 맛있다. 소금 한 스푼과 쌈장을 반 숟갈 넣으면 감칠맛이 더 생긴다. 마지막에는 청양고추 한 개를 꼭 썰어서 넣어야 한다. 대파는 없어도 청양고추는 필수다. 이 작은 고추 한 개가 뭐라고, 맛의 풍미가 달라진다. 중간중간 거품을 걷어내다 보면, 벌써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손하나 까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야 말로, 힘을 내서 된장찌개를 끓여야 한다. 가슴속에 우울함이 곰팡이처럼 퍼져서, 허접하고 게으른 끼니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야말로, 힘을 내서 된장찌개를 끓여야 한다. 음식으로 위로받는 법은 정말 간단하다. 내 스스로에게 정성스러운 요리를 대접하는 것. 따뜻한 국 한그릇 끓여서 내 입으로 직접 떠 먹여주는 것.
요리를 한다는 것은, '힘을 내서 나를 더 사랑하고싶다'라는 주문을 외우는 행위일 지도 모른다. 앞날이 막막하고 주저앉고 싶을 때 조차도, 한 끼 한 끼 진심을 다해서, 그리고 정성을 다해서, 마지막 힘을 끌어올려서, 요리를 한다. 이 마법은 언제나 통했고, 앞으로도 통할 것이다.
글 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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