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뒤엉킴 속에서 선명한 것은 작은 흐느낌뿐이다. 어두운 얼굴빛 사이를 비집고 작은 사무실에 들어선 후에도 수많은 소리들은 혼잡스러운 고요함처럼 느껴진다. 고요하던 납골당, 그 옆 건물인 화장장은 많은 사람들로 들어차 있다. 작은 목소리들이 위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얹힌다. 외할머니를 보내드린 지 15년째 되는 해, 납골당의 기한 연장을 위해 들른 사무실이었다.
서류 하나에 서명을 하고 난 뒤, 돌아서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헛헛한 웃음이 배어 있다. 벌써 15년이네- 작은 방으로 시선을 보내던 어머니는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몇 년 전, 할머니를 보내며 숨이 넘어갈 듯 울음을 터트렸던 공간이다. 외할머니를 삼키는 불길 앞에서 쓰러지던 어머니의 모습이 여전히 저 작은 공간에 남아 있는 듯하다.
어버이날이다. 이른 아침, 작은 카네이션 화분과 포장조차 되어있지 않은 꽃 한 송이를 잠시 응시했다. 카네이션만 손에 든 채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어제, 불분명한 이유와 함께 받은 하얀 꽃.
"요즘 유행이잖아요."
카네이션을 구입하러 간, 꽃집에서 사장님은 작은 선물을 건네었다. 거베라? 검색으로 찾은 꽃의 이름이었다. 거베라가 유행인 것인지, 꽃 한 송이가 유행인 것인지, 혹은 거베라 꽃 한 송이가 유행인 것인지. 선물의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거실 한가운데에 짧은 생명력을 지닌 존재가 자리하게 되었다.
화분을 부모님 댁에 내려놓으며, 조금 긴 외출이 시작되었다. 외할머니와 외할어버지를 뵈러 납골당에 들르고, 증조할머니와 할머니를 뵈러 선산에 가야 하는 일정. 흰 꽃들로 치장된 꽃다발 세 개가 남동생의 차 한 구석에 바지런히 놓여 있다. 고운 꽃들의 자태를 몇 번이나 쓰다듬으며 어머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얀 꽃다발도 참 곱지? 매년마다 반복되는, 고정된 일정은 어머니의 여러 표정들로 채워진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모신 납골당에서 기한 연기 신청까지 마무리를 지은 뒤, 선산으로 향한다. 녹빛으로 물든 나뭇잎과 파란 하늘만이 가득한 길, 드문드문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이 차 안을 채운다. 그러다 그리움이 묻어난 목소리로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점차 깊어지는 어머니의 눈동자에 짐짓 쾌활한 척, 어색하게나마 웃음으로 그 위를 덮어버린다.
손바닥 아래에서 바스러지는 풀잎의 감촉 위로 이마를 갖다 댄다. 짧게 멈추었다 몸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두 손으로 땅을 감싸 쥔다. 절을 하는 짧은 시간 동안 할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짧아진 머리칼을 바라보며, 잔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를 보며,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을까. 무릎 언저리에 손을 털며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할머니, 나 또 올게- 찬 바람이 옷틈으로 스며든다. 하지만 내리쬐는 햇볕만은 따스하다.
돌아가는 차 안은 고요하다. 꽃다발이 놓여있던 자리가 텅 비어있다. 차창으로 스쳐가는 풍경들에 시선을 고정하다, 굳게 다물어진 어머니의 입술을 흘깃댄다. 긴 시간이다. 이별 후 긴 시간이 흘렀건만, 어머니는 고요히 그리움을 삼키곤 했다. 나 역시도 여전히 입술을 깨물며, 스며 나오는 그리움을 짓누르곤 하지만 아픈 아버지 곁을 지키는 어머니는 채 삼키지 못한 감정들에 휘청거리곤 했다.
입술을 움직이려다 애꿎은 손끝만 작은 화면 위를 움직인다. 하얀 거베라- 검색창에 뜨는 꽃말들이 다채롭다. 순결, 진실, 신비. 존경과 감사. 그리고 순수한 사랑과 새로운 시작. 온갖 좋은 뜻은 모두 다 더해 놓은 듯한 그 페이지를 작은 웃음과 함께 넘겨 버린다.
여러 단어들을 더해가며 글자들을 기웃거린다. 거베라. 유행. 꽃 한 송이. 여러 단어들의 조합 끝에 6개월 전 게시글에서 간신히 작은 선물의 의미를 찾았다. 꽃다발 대신, 꽃 한 송이를 선물하는 MZ세대의 유행, 그리고 거베라 꽃을 선물하던 유행. 나는 몰랐던, 시기상으로는 이미 한 풀 꺾인 유행이다.
점차 유행에 둔감해진다. 어린 조카를 키우는 여동생 덕분에 몇몇 유행하는 먹거리들을 접하기는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스쳐가는 것들을 포착하는 일들이 줄어든다. 빠른 현재의 속도에 발을 맞출 재간이 없는 탓이기도 하다. 혹은 어쩌면, 소중했던 과거에 머무르느라 현재를 놓치고 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멈추고 입을 연다. 톤을 높인 목소리로 고요함을 깨트린다. 나날이 커 가는 조카들의 이야기로 공간을 채운다. 과거로 침잠하던 공기에 생기가 덧씌워진다. 작은 반짝거림이 어머니의 눈가에 머무른다.
선물 받은 꽃 한 송이를 둘 장소를 고민한다. 꽃말을 되새긴다. 별다른 의미가 담기지 않은 선물, 하지만 오랜만에 나만을 위한 꽃 한 송이의 의미가 기껍다. 지금의 그리움은 순수한 사랑일테다. 그리움은 현재의 웃음으로 승화시키자. 지금은 단지 작은 선물 하나가 주는 행복을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