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믿음

by내민해
그 역시 아이가 정말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구석진 자리를 자꾸만 찾아가는 아이를 보면 이불장 안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의 표정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생각이 너무 많은 아이의 눈빛. 언제 어디서든 자기가 있는 곳을 자기 자리로 느끼지 못하는 이의. 누구와 함께 있든,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침입한 사람같이 고독해지던 그 마음은 그에게 너무 익숙한 것이었고, 그는 사랑하는 아이만큼은 그런 마음을 영원히 모르길 바랐다. 그 후로 그는 아이가 사람들 속에서 떠들고 있다가 갑자기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걸 발견할 때면 불안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이가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과 교류하기를 바랐다. 지구의 반대편으로 와서 살기까지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어릴 때 이사를 자주 다녔다. 아빠의 근무지 이동 때문이기도 했지만 점점 더 나아져가는 경제 상황에 맞춰 엄마의 기대치가 덩달아 올라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더 넓고 좋은 동네로 우리는 천천히 이동했다. 그 경로 안에서 나는 자주 이탈하고 싶었는데, 아니. 더 정확히는 이탈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나를 두고 떠나길 바랐던 것 같다. 한 곳에 오랫동안 정착하고 싶은 나의 기질이 발동할 때면 두드러기처럼 그 증상이 올라오곤 했다. 반복해서 씻기. 전학을 가거나 새로운 환경에 놓여질 때마다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씻기'였다. 단순하게 씻는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계속 씻었다. 박박박박 벅벅벅벅. 살갗이 빨갛게 부어오를 때까지, 아픈 것도 모른 채 씻고 또 씻었다. 결벽증인가 강박증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나는 더 깨끗해져갔다.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깨끗해져갔는지 모르겠지만. 청결함을 중요시하는 지금의 내 습관이 그때 만들어진 것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왜 하필 씻는 걸 택했을까. 이건 어떤 종류의 결핍이었을까. 삶은 더 나아져가는데 마음은 병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갈 길을 잃은 것처럼 이리저리 부유했다.


언어를 찾지 못했던 날들이 이어졌다. 더 정확히는 나의 언어. 나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강압적이고 무뚝뚝한 엄마와는 제대로 된 대화라는 걸 나눠본 적이 없었다.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거나 윽박지르는 말과 행동으로 나를 억압할 때가 많았다. 엄마는 모호한 말과 정성적인 태도를 싫어했다. 정량적인 결과물과 생산적인 이야기를 원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봉숭아 꽃 같은 이야기는 엄마에게 그저 꽃 꽂은 이야기만큼이나 터무니없는 말장난처럼 여겨졌다. 쟤는 누굴 닮아 저리도 쓸데없는 것들에 목을 매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듯 투덜댔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 일일이 힘을 쏟지 말라고, 꿈꾸는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욕심 좀 부리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 그때마다 나는 입을 다물었고,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 그저 낯설고 차갑게만 느껴졌다. 집에 가도 집에 가고 싶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내 이상이 과했을까. 나는 계속 결핍을 안고 자랐다. 엄마가 그토록 치를 떨던 모호하고, 관념적이고, 무용한 것들을 추구하면서 말이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 유독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엄마는 '나도 한때는 소설을 좋아했다'는 말을 우연히 건넨 적이 있다. 여느 때와 같은 출근길, 아주 오랜만에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를 통해서였다. 서로 팽팽하게 날을 세우며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대화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무심코 뱉은 그 말에 나는 잠시 주춤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거짓말. 거짓말!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근데 인생은 소설 같지가 않더라. 그게 너무 부질없더라."

그날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뭐라고 답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니라고 반박했던가 부질없는 일이 맞다고,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고 수긍했던가. 지금껏 내가 살아온 경로를 톺아봤을 때, 전자였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삶에 예술이, 문학이 나풀나풀 살아 숨 쉬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그 믿음이 위태롭게 흔들릴 때도 있었고, 지금은 그 시기를 무사히 건넜다(고 믿고 있다). 도덕과 윤리, 이타와 돌봄, 신뢰와 안심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정의하는 중이다. 여전히 믿음이라는 단어는 내 안에 안착하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고 있지만 말이다.


지난 주말에는 김애란 작가의 북토크를 다녀왔다. 그녀의 바카라을 여러 권 읽었지만 북토크를 가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바카라과 관련된 여러 행사들을 다녀봤지만 이토록 요란스러운 북토크는 처음이었다. 무슨 연예인이 오는 건가 싶을 만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팬이 많은 작가는 북토크조차 거창하다는 생각을 하며 얌전히 앉아 바카라을 읽었다. 북토크를 시작하기에 앞서 서울국악동아리연합에서 국악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뜬금없게도 그 시간이 가장 유쾌했다. 학창시절부터 국악을 좋아했던(동아리도 했었다) 나에게는 추억을 복기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서울국악동아리연합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2025년부터 서울 소재 내 대학교 국악 동아리가 함께 모여 만든 연합 단체라고 했다.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국악의 문턱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들과 우리 음악의 즐거움, 아름다움을 나누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반짝반짝 빛났다(오랜만에 다시 듣는 국악의 흥겨움에 어깨를 들썩거린 건 안 비밀이다). 그리고 이어졌던 북토크는 뭐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호불호로만 나눈다면 호였다. 그래, 좋았다. 좋았는데, 좋았다. 그냥 좋았다. 좋기만 했다. 그리고 남는 게 없었다.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귀티 나는 무언가를 천천히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빈틈없고 단단한 결점 없는 무언가를 말이다. 기이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