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서사와 좋은 일상이 공존하는 삶

by내민해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은 이제 바카라 외에도 많이 있고, 바카라을 요약해주는 미디어나 기술도 많습니다. 제 아내가 즐겨 듣는 교양 팟캐스트의 진행자는 자기네 방송에서 요약 정리해주는 바카라 이야기를 들으면 그 바카라을 실제로 읽을 필요가 없다고 자랑하더군요. 저도 좋아하는 진행자입니다만 그 말씀은 틀렸습니다. 그런 방송들은 바카라의 결론만 알려줍니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한 독서가 있습니다. 저자의 논의를 결론으로 이끄는 방식을 배우고, 때로는 그 논의를 쫓아가지 못해 고심하고, 저자와 논쟁을 벌이거나 등장인물과 친해지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저는 문해력 역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방식과 태도의 문제라고 봅니다.

<살면서 한번은 벽돌바카라> 장강명



숨 가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다시 슬롯 초년생으로 돌아간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모든 게 낯설기만 하다. 미지의 세계를 한 겹 한 겹 걷어내는 기분인데(아니, 근데 걷어내고 있긴 한 거지?), 나를 향한 주변의 지나친 기대에 감사는커녕 부담이 되어 나를 더 옥죄고 짓누른다. 예상치 못한 말말말! 자꾸만 마음이 급해지고 숨이 차서 일을 하다가도 후하후하 호흡을 가다듬게 된다. 전면에 나를 드러내는 건 역시나 내 방식이 아니다. 속으로 비명을 지르기를 여러 번, 도망치고 싶다 생각하는 날들이 켜켜이 쌓여갈 때쯤 한 줄기 빛을 만났다. 아니, 길이라고 해야 하나. 그 길 덕분에 요즘의 나는 자주 웃는다. 어이가 없어서(ㅋㅋㅋ) 쓰고 싶은 말은 계속 쌓여갔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웠다. 그 말이 자칫 나를 옭아맬까 봐. 더군다나 글로 매듭을 지어버리면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생각이 그쪽으로 고여버릴 테니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건 솔직한 감정과 마음이다.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그 길이 무엇인지는 아직 자세히 쓸 수 없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이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절대'라는 단어가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는 것. 지금 경험하고 있는 모든 상황들도 결코 '절대'가 될 수는 없다는 것. 그럼에도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얼마 전에는 가장 애정하는 작가님의 북토크도 다녀왔다.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평소 잘 받지 않는 사인도 받고, 전부터 드리고 싶었던 선물도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네며 조심스레 드렸다(과연 이 선물을 열어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실지는...). 북토크가 열린 곳은 태어나 처음 가본 동네였다. 찾아가는 내내 '아니, 이런 곳에서?'라는 생각이 연신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찍 출발한 덕분에 다행히 늦지 않고 앞좌석에 앉을 수 있었고, 작가님과도 웃으며 눈을 마주치곤 했다. 1시간 반 동안 밀도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트에 필기하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생각에 고개 한번 내리지 않고 북토크에 집중했다.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주옥같았는데, 그중에서 나를 가장 사로잡은 건 '좋은 서사와 좋은 일상이 공존하는 삶'이었다. 나 또한 그 두 가지가 골고루 섞여있는 삶이 균형적인 삶이라 여겼으니까.


우리는 흔히 행복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떠들어대기를 좋아하는데, 가장 많이 들어왔던 말은 불행하지 않다면 행복하다는 것.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행복과 불행보다 중요한 건 활력이라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건 우울증과도 연결되어 있는 맥락이니까. 우울하다는 건 슬프거나 고통스럽다기보다는 기분이 없는 기분에 가깝고(말장난 같지만), 그건 삶을 살아갈 의지 자체가 소멸된 공허함을 뜻한다(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래서 어떤 고난은 고난 그 자체만으로만 바라본다면 지독하게 괴로울 테지만, 그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활력이 돋기도 한다. 삶에 또 다른 목표(이자 의미)가 생긴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살면서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열정이, 가열찬 모습이 불쑥 모습을 내비치기도 하니까.


앞서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을 읽고 우울증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행복이나 안정이 아니라 목적의식과 활기라고 적었다. 나는 절대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방식으로 그 사실을 몸에 새겼다. 아내가 뇌종양으로 입원했을 때 우울증이 싹 가셨다. 나는 불행하고 비통했으나 목적의식과 활기로 가득 찼다. 태어나서 그렇게 활력에 가득 찬 적이 없었고, 그렇게 머리가 핑핑 잘 돌아간 때도 없었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하루 서너 시간만 자면서 해야 할 일들을 미친 속도로 해냈다. 누구에게나 머리를 조아리고 애원할 수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절박한 인간은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말도 반쯤은 맞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절박한 인간은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표현하면 좀 더 정확해지리라. 진정한 과업, 진정한 사명은 방사선처럼 정신을 살균 소독한다. 나는 소설 때문에 그 정도로 절박해진 적은 없었고, 소설에 그렇게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인간도 아니었다. 간병이야말로 진정한 과업이었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2> 장강명


북토크는 순식간에 끝났다. 체감하기론 그랬다. 돌아갈 길은 멀었지만 마음에 남은 문장이 많아 든든했다. 결과보다는 과정, 그 과정에 담긴 경험이 중요하다는, 높은 해상도의 바카라을 읽어야 한다는 작가님의 목소리에 깊은 울림을 느꼈다. 작가님은 벽돌바카라 완독이 다른 행위로 대체하기 어려운, 독자의 사고 체계에 가해지는 일종의 충격이라고 말씀하셨다. 700쪽 이상인 바카라을 한 번이라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이후 모든 텍스트를 대하는 기준이 달라진다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경험이 있는 아마추어 러너가 달리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바카라에 담겨있는 문장이다).


우리는 소통이 중요하다 외치면서도, 정작 소통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해가 갈수록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진중하게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고수한 채 논리로 따지려 든다. 깊은 사유와 관조, 사색, 경청과 같은 단어들은 자주 힘을 잃는다.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열광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고독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들과 내가 하고 있는 이 행위가 진정 대화가 맞을까, 자주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래서 내게는 천천히 걸어가는 시간이 늘 필요했다. 상황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한 가지 주제에 오랫동안 골몰하고, 나의 것으로 온전히 이해하는 그 모든 과정이 켜켜이 쌓여가는 삶. 내게는 그게 삶이었다. 『레이디 맥도날드』의 저자인 한은형 작가는 인간은 의미를 찾지 않으면 존재하기 어렵고, 특히나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내 경우가 그랬다. 의미라는 것에 자주 천착했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나의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애써, 힘껏, 열렬히 추구하고 찾아야만 하는 사람.


내가 작가님에게 사인을 받고 싶은 바카라은 이번 북토크 바카라이 아니었다. 출간되기 전부터 존재를 알고 있었던, 작가님을 은근히 다그쳤던(?) 바카라이 세상에 나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번에 그 바카라을 품에 안고 작가님과 만날 수 있어 기뻤다. 북토크가 지루하지 않았냐는 말씀에 눈물을 훔치며 들었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작가님은 과거, 이 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근처에 숙소를 예약해 아내분과 함께 왔다고 하셨다. 얼굴을 뵙고 갈까 싶었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테니 아쉽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얼마 전에 다녀온 대전의 <버찌바카라방>이 잠깐 떠올랐다. 계속 가보고 싶었던 곳을 이제야 다녀올 수 있었다. 대전이 고향인 친구 덕분이었다. 바카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바카라을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본다고 했던가(그냥 내 생각). 어쨌거나 요즘 내 삶은 그야말로 변화의 연속이다. 그 와중에도 공모전 아닌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반항'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고, 재작년부터 매달 한 권 이상의 벽돌바카라을 완독하는 루틴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한 바카라은 세라 블래퍼 허디의 『아버지의 시간』이라는 자연과학 바카라인데, 이 작가의 『어머니의 탄생』이라는 바카라을 작년에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더 흥미롭게 읽고 있다. 내 삶은 평범함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는데(그래서 좋아), 그 평범한 삶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곤 하는 건 역시나 바카라이다. 바카라을 통해 얻는 관계 또한 마찬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