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요, 눈이 잘 안 보여요

온라인 게임인의 삶에 관하여

by가리느까

내 나이 서른에 본격적인 슬롯생활을 시작했다.

정년을 60세로 본다면 이제 4년이 남았다. 나도 몰랐는데 올해 연말정산을 해 보니 작년에 드디어 비로소 급기야 바야흐로 연봉 1억 원을 넘겼음을 알았다.

내 필명처럼 '가리느까' 투자의 묘미를 알게 되어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자 소위 파이어족에 도전하였으나, 그렇게 되기 전에 정년이 더 빨리 찾아올 것만 같다.

홑벌이이면서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감히 파이어족에 도전하다니, 은퇴 후까지도 요원하기만 한 바람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거기에 더하여 연봉 1억 원이 가지는 상징성은 파이어족이 되었다는 첫 번째 시그널-매월 받는 금융소득이 월급을 넘어섰다는 신호-을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을 정도의 파격임에 틀림없다.


파이어족은 단어 자체에서 이미 은퇴 전 퇴사를 전제로 한다. 달리 말하면 은퇴 후에는 파이어족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나는 왜 여태 퇴사하지 못했을까? 구구절절 그 이유를 나열하기보다 연봉 1억 원이 넘는다 하더라도 곧바로 파이어족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더 설득력이 강하다고 본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연봉 1억은 시드머니 1억과는 엄연하게 다르다. 늙어 죽을 때까지 미혼으로 살아간다면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한마디로 이제 겨우 1억을 넘겼다고 하여 당장 퇴사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결국 은퇴 전까지 '존버' 하며 받을 수 있는 최대한 월급을 받아먹는 것이 최고이자 최선의 투자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말년에 승진 시험공부를 할 것인지 말지 고민이다. 승진한다면 집 떠나 객지 생활이 눈에 빤히 보이나 후배들에게 자리 하나를 비워주는 외부효과의 이점이 있는 반면, 승진을 포기하면 연봉은 더 오르지 않겠으나 집에서 출퇴근하며 비교적 편안하게 온라인 게임생활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

그래, 후배들한테 멋진 선배로 남자. 누군가 '선배님 덕에 늘어난 한 자리를 제가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칭송받으며 떠날지 모르지 않는가.


아니 그런데, 미래의 그 누군가가 될지 모를 후배여. 할 말이 있다. 파이어족의 꿈을 접고 승진해서 떠나는 것도 좋고, 다 좋은데 말이야.


"글자가 잘 안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