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만 보는 가족들과 거리감 줄이려는 노력
얼마 전 우연히 결혼한 부부에 대해 관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주말부부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일 때문에 남편이 지방에 가 있고, 주말에만 서울에 오기 때문에 모든 육아와 살림은 아내 몫이었다. 어린 자녀를 돌보고 더구나 집안일까지 해야 하니 아내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주중에 힘들게 일하고 주말에 와서 좀 쉬고 싶은데, 아내 눈치 보느라 곧바로 가사에 투입되었다. 부부 모두 힘든 상황이고, 서로에게 불만이 쌓여 있으니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큰 싸움으로 번졌다. 각자가 각자의 입장만 쏟아내니 격차가 줄어들 줄 몰랐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도 갖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전문가는 한 가지 해답을 내놓았다. 주말부부를 끝내고 함께 살라는 조언이었다. 마지막에 남편이 어떻게든 조정해 보겠다고 다짐하며 그렇게 날을 세웠던 아내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프로그램에서 시간이 흐른 뒤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남편이 서울로 온라인 게임을 옮긴 후 함께 살게 되며 적극적으로 육아에도 참여하고, 아내 역시도 무척 만족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종료되었다.
평소 관심도 없었던 프로그램에 그토록 몰입해서 끝까지 보았던 건 아마도 지금 내 상황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말부부를 시작하게 되면서 가사뿐만 아니라 아이들 챙기는 일 모두 아내 몫이 되었다. 특히 올해 대학 입시를 앞둔 첫째의 모든 일정도 하나부터 열까지 아내가 신경 쓰고 있다.
주말부부를 하면서 위기를 느끼다
주변에 '아빠의 무관심이 자녀의 성공'이라고 호기 어린 말을 하곤 하지만 실상 마음 한구석에는 죄인처럼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주말이 되어 집에 가면 짐을 놓기 바쁘게 분리수거 하러 얼른 나간다. 돌아와선 안방에서 청소기를 꺼내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굳이 이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데 주중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죄바카라감이 몸을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왜 그리 눈치가 보이는지.
가사 일뿐 아니라 내 역할에 관한 생각도 짙어진다. 함께 살 때만 해도 집안의 중요한 문제가 생기면 아내와 상의해서 결정하곤 했다. 특히 아내가 주말에 근무를 해서 아이들 어릴 땐 육아에도 큰 비중을 가졌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가장'이란 단어는 지키고 살았거늘 이제는 그마저도 위태롭다.
요즘은 아내가 굵직한 집안의 대소사를 이미 결정해서 나에게 통보한다. 특히 첫째 입시 관련해서 얼마 전 물어보았더니 지원 예정 리스트를 카지노톡으로 보내왔다. 미리 나랑 상의했으면 좋았겠단 아쉬움이 남지만, 괜히 말했다가 본전도 찾기 어려우니 잘 알겠다고 답했다.
솔직히 요즘엔 월급을 보내는 일 외에 내가 없어도 집이 돌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사실 나도 예전처럼 가족과 함께하고픈 마음이 크지만 회사를 관두지 않는 이상 바꿀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 사춘기에 돌입한 둘째는 내가 집에 올 때마다 도끼눈을 뜨며 바라본다. 얼마나 무서운지 오금이 다 저린다. 둘째는 나에게 불편 사항을 직접 말로 하지 않고 문자로 보낸다.
자꾸 중간에 잠이 깨니 새벽에 일어나 식탁에서 부스럭대지 말라, 쓴 수건은 절대 문고리에 걸어 놓지 말라, 가급적 금요일 저녁 말고, 토요일 오전에 오면 좋겠다 등등. 주말에만 보기에 살갑게 다가가려고 해도 주중에 떨어져 있으니, 둘째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어려운가 보다. 그나마 첫째는 그래도 말도 걸어주고, 장난도 쳐 주니 집에 갔을 때 큰 위안이 된다.
아내는 아직 특별한 말은 없지만 표정 속에 힘듦이 느껴진다. 보건복지부의 '기혼여성 삶의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주말부부 워킹맘의 82%가 만성 피로와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남편과 정서적 교류가 줄어들면서 부부관계는 느슨해지고, 아이와의 물리적 밀착이 오히려 피로감을 가중한다고 한다. 아내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내 상황을 이해해서 최대한 내색을 안 하려 하지만 가끔 사소한 문제로 부딪칠 땐 폭풍처럼 밀려오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처럼 주말부부를 끝내는 일이 가장 큰 해결바카라이지만 당장은 주말부부를 해야 하기에 뾰족한 방법은 없는지 궁금하다. 이대로 가다간 나중에 함께 살 때 얼마나 서먹하고 불편할지 불 보듯 뻔한 일이니 말이다.
주말부부의 심리적 거리 줄이는 묘약
인터넷으로 주말부부의 심리적 거리 줄이기에 관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보았다. 좋은 방법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내 눈에 들어온 내용이 있었다. 주말에 '서로에게 자유 시간을 주기'였다. 나로서는 주말에만 가족을 보기에 무언가 함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아내로서는 주중에 일하랴, 아이 돌보랴, 살림 하랴 힘드니 주말에라도 좋아하는 취미 활동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쉬는 시간을 주라는 것이다.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지난 주말 집에 오자마자 아내에게 말했다. 주말엔 내가 아이들을 볼테니 하고 싶은 하고 오라고. 순간 아내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친구가 연극을 같이 보러 가자고 했는데 첫째 학원 시간이 애매해서 고민 중이었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꽤 늦은 시간 아내가 돌아왔다. 뺨이 발그레한 걸 보니 술도 한 잔 한 것 같았다. 아이들 학원이며 밥도 이상 없이 챙겼음을 보고하고 마지막으로 설거지도 완료했다고 하니 엄지척을 해주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아내의 환한 표정에 나도 기분이 한결 좋았다.
앞으로 주말에 집에 오면 아내가 적극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접촉도 늘리고. 내겐 일거양득이었다. 언제가 될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 확실한 내 자리가 있도록 지금부터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살면서 늘 느끼지만, 공짜로 얻어지는 건 하나도 없다. 어쩌면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은 삶이 가족과의 관계가 변할 것 같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