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2021년 10월)

서울, 대한민국

by한서


성현 씨와 만나기 시작한 지 2주가 지나 있었다.


그와 세 번째로 만난 날, 새벽 산에서 내려와 해장국집에 마주 앉았을 때 그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우리 제대로 만나 보면 어떨까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그 끄덕임을 한참 바라보다가 귀까지 빨개진 채 웃었다. 그게 전부였다. 영화 같은 장면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 오래 샤워를 하면서 몇 번이나 혼자 웃었다.

그리고 그 2주 동안, 준과의 토요일 통화는 두 번 있었다. 두 번 모두 나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몬티쿨로의 야경 아래서 입을 맞췄던 밤도, 매일 연락하자던 약속도 이제는 3년 전 라파스에 두고 온 것이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붙일 이름이 없었고, 그도 지금의 나에게 무언가를 약속한 적은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화면 속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말이 목 언저리에서 멈췄다. 이 말을 하고 나면, 그 계절이 정말로 끝나 버릴 것 같아서. 숨기려는 건 아니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말했다. 그냥 타이밍이 없었던 거라고.


이번 주에는 말하기로 했다. 퇴근길에 그렇게 정했고, 저녁을 차리면서 한 번 더 정했다.

식탁 위에 바카라을 쌓고 그 위에 아이패드를 올렸다. 오늘 저녁은 편의점에서 사 온 김밥 한 줄과 컵라면이었다. 맥주 한 캔을 따 놓고 화면을 보고 있으니 정각에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몇 달째 반복된 순서였다. 화면이 켜지고, 조명을 확인하느라 찡그린 그의 눈썹이 먼저 보였다.

“안녕!”

“안녕. 오늘 저녁은 뭐야?”

“오늘은 카레 아니야.”

“진짜? 무슨 일이야?”

“돈카츠 샀어. 카레는 내일 할 거야. 이 위에 올리려고.”

“결국 내일도 카레잖아.”

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는 한동안 이번 주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라멘집,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다 미끄러질 뻔한 이야기, 요즘 읽고 있는 추리소설의 범인을 절반쯤 읽고 맞혔다는 이야기. 나는 맞장구를 치면서 맥주캔 옆에 맺힌 물기를 손끝으로 쓸었다. 지금일까. 아니, 조금 이따가. 그의 이야기가 끊길 때마다 입을 떼려다 다시 다물었다.

“한서, 너는? 이번 주 어땠어?”

그가 물었다. 나는 캔을 내려놓았다.

“나는… 음, 준, 나 할 말 있어.”

“응? 뭔데? 무서운 거야?”

“아니, 무서운 건 아니고.”

나는 숨을 한 번 골랐다.

“나, 남자친구 생겼어.”

화면 속에서 그가 멈췄다. 정말 아주 잠깐이었다. 돈카츠를 집으려던 젓가락이 허공에서 멎었고, 눈이 한 번 깜빡였다. 인터넷이 잠깐 끊긴 건가 싶을 만큼 짧은 정지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활짝 웃었다.

“진짜? 와, 축하해! 언제부터?”

“2주 조금 넘었어.”

“2주? 근데 왜 지금 말해? 지난주에도 통화했잖아!”

“그냥… 타이밍이 없었어.”

“타이밍은 무슨. 어떤 사람이야? 한국 사람?”

나는 그의 질문에 하나씩 대답했다. 고향이 같은 사람이라고. 친구가 소개해 줬다고. 키가 크고 어깨가 넓고, 말이 많진 않지만 다정한 사람이라고. 종종 주말엔 새벽에 산에 가서 정상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람이라고.

“산 정상에서 핸드드립? 멋있는 사람이네.”

“응. 그거 하나는 진심이래.”

내가 준에게 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 어느 순간부터 화면에서 내 입고리가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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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던 '나', 그리고 새로운 '나'를 씁니다.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글을 씁니다. 동물과 여행, 바카라과 음악을 사랑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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