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관계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사람에게 '잘 지내니?'라고 메시지가 오면 긴장을 해요.
오전 9시 라디오 음악 방송 시작 멘트가 흘러나왔다. 찻잔을 들었다 놓았다.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문질렀다.
나는 '긴장'이라는 단어에서 멈칫했다. 오랫동안 연락을 못했던 선배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났다. 퇴사 소식을 전하고 한번 만났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선배는 아들이 결혼할 나이니, 내가 결혼식 소식 알리려고 전화한 줄 알았다고 했다.
선배 아들의 결혼식에 갔었다. 선배는 그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선배에게 나는 어느 날 불쑥 날아온 메시지였는지도 모른다.
젊은 날, 밤늦게 선배집 앞에 차를 마시러 가기도 했었다. 여자들이 겪는 흔한 고민을, 선배는 그저 들어주었다. 말할 수 있어야 숨이 쉬어지는 시절이었다. 돌아올 때면 가슴 한편이 채워져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자식들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나누는 편한 사이였다. 시간이 지나며 생긴 거리를 가늠하지 못했다.
이미 기억에서 멀어진 사람의 연락은 의도를 생각하게 하지요.
아나운서가 이어서 하는 말을 들으며 차 한 모금을 마셨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런 거였다. '어쩐 일이죠?', '무슨 일 있어요?'라는 답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의도'.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궁금한 마음에 연락을 했지만, 번번이 닿지 않는 선배가 있었다. 퇴사 후 바쁜 일정을 보낸다고 건너로 전해 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청첩장이 도착했다. '잘 지내는지요?'라는 안부로 시작하는 문자 메시지였다. 나는 축의금만 보내고, 선배의 감사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았다.
라디오 방송이 끝나갈 무렵 나는 오래 연락을 하지 않던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다른 지역으로 인사 이동을 해서 간 후 20년 넘게 만나지 못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를 한 지도 5년은 훌쩍 넘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의 퇴사 소식과 그 사람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로 통화가 길었다. 마치 지난달 만났던 것만 같았다. 시간 내서 자신이 사는 곳에 오라고 했다. 맛있는 빵으로 유명한 곳에 가자고 했다.
나도 그 사람도 알고 있다. 빵을 먹으러 가는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나는 언제든 그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얼마 전 혼자 떠난 여행에서 친구 셋을 잇따라 만났다. '잘 지내니?'라는 메시지를 가끔 보내는 친구들이다.
그리고 '너도 잘 지내니?'라 답을 하는 친구들이다.
낯선 지하철 노선을 따라 친구에게 가는 순간, 지루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걸었다. 식당에서 나온 음식을 번갈아 맛보며 웃었다.
미술관에서 각자 작품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나란히 앉아 마당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닫혀 있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열려 있는 문이다.
내가 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