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알려준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보내는 추석 연휴

"스마트폰만 보다 끝내는 명절이 아쉬운 분들 참고하세요"

by이드id


챗GPT에게 새로운 크리스마스 전통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 결과는 가관


얼마 전 인터넷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제목의 영문 기사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매년 비슷하게 반복되는 크리스마스가 지겨워진 기자가 작년 크리스마스에 챗GPT에게 새로운 크리스마스 전통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사례였다. 인공지능(AI)의 아이디어는 꽤 엉뚱했고, 별로 당기는 것도 없었다. 기자 역시 AI가 내놓은 아이디어를 하나씩 평가하면서 제목처럼 '가관'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AI에게 추석을 맡겨보면 어떨까?'


기사를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의 명절은 이미 많이 달라졌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20년 가까이 지내던 제사와 차례를 몇 년 전 어머니마저 떠나신 뒤 없앴다. 형식적인 차례나 제사를 걷어내고 명절 당일 아침 부모님이 계신 납골당을 찾아 공동 차례를 지낸다.


며칠 전부터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상을 차리고 치우는 데 쓰던 시간을 가족과 골고루 나누고 있다. 초기에는 여행을 갔고, 최근 몇 년 동안은 가까운 글램핑장을 찾았다. 명절이라 유난히 한산한 곳에서 고기를 굽고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올해 추석은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딸이 고3이다. 곧 수능을 앞두고 있다. 연휴 내내 공부만 하지는 않겠지만, 여행을 떠나기도 애매하다. 그렇다고 긴 연휴 내내 네 식구가 각자 방에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 끝나는 것도 아쉽다.


딸은 내년, 고1 아들도 몇 년 뒤면 성인이 된다. 대학 진학과 군 복무, 취업 등으로 아이들의 생활 반경이 넓어지면 네 식구가 명절마다 한집에 모여 며칠씩 함께 보내는 일도 점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행지나 글램핑장을 검색하는 대신 AI를 켰다.


요즘 AI를 전적으로 믿을 수 없기도 하고, 각자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기에 AI 3총사인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AI 3총사에게 '특별한 추석'을 물었다


"(요약) 올해 딸아이가 고3이라는 점 고려해서 집에서 연휴 동안 가족과 함께 의미 있게 보내려고 함. '전통적인 추석'이 아닌, 뻔하지 않고, 유치하지 않고, 네 식구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추석놀이 5가지를 제안해 줘."


AI는 총 15개의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독창적인 것도 있고,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것도 있다. 읽기만 해도 피곤해지는 아이디어도 있다. 그 가운데 실제 이번 추석에 우리 가족이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세 가지를 골랐다.


첫 번째, 네 식구가 만드는 '추석 올림픽'


챗GPT: "집 전체를 경기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종목은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말을 뭉쳐 바구니에 넣는 양말 농구, 눈을 가리고 과자 이름 맞히기, 가족사진만 보고 몇 년도인지 맞히기, 노래 전주 3초 듣고 제목 맞히기, 거실에서 종이비행기 멀리 날리기 정도면 됩니다."


이 아이디어를 보면서 내 폰에 저장된 3천 장 가까운 가족사진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을 TV와 연결해 사진을 보면서 몇 년도인지 알아 맞히는 게임은 가족 모두가 즐겁게 즐기기에 괜찮은 게임이다. 500원짜리 동전을 잔뜩 쌓아 놓고 맞히는 사람이 하나씩 가져가게 할 계획이다. 게임을 하다 자연스럽게 가족의 지난 시간도 추억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닐까.


클로드도 비슷하게 '거실 한가위 올림픽'을 제안했다. 하지만 종목이 윷놀이, 제기차기, 젓가락으로 콩 옮기기 등이었다. 특별하게 명절을 보내겠다고 AI에게 물었는데 식상해서 탈락.


두 번째, '보름달 미션' 들고 동네 한 바퀴


챗GPT: "저녁을 먹고 네 식구가 동네 산바카라을 나갑니다. 그냥 걸으면 심심하니 각자 스마트폰에 다섯 가지 미션을 넣습니다. '가장 둥근 것 찍기', '가을이 왔다는 증거 찾기', '오늘 가장 웃긴 장면 찍기', '10년 뒤에도 남아 있었으면 하는 동네 풍경 찍기', '가족 중 한 명의 인생 사진 찍어주기'. 한 시간 동안 걷고 돌아와 네 사람이 찍은 사진 가운데 최고의 사진을 그해의 '우리 집 추석 사진'으로 정하는 겁니다."


소박해서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바빠지다 보니 네 식구가 모두 모여 사진 찍을 기회도 점점 줄어든다. 여행지의 멋진 풍경은 없겠지만, 개인 미션뿐만 아니라 삼각대를 가지고 나가서 동네 공원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사진을 찍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더욱이 반려견도 함께할 수 있으니 굿 아이디어다.


세 번째, 추석 맞이 '가족 퀴즈 온 더 블럭'


제미나이: "TV 예능 프로그램을 패러디해 서로에 대해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는지 검증하는 퀴즈쇼를 열어볼 것을 제안합니다. '엄마가 야식으로 가장 즐겨 찾는 메뉴는?', '아빠가 요즘 출퇴근길에 반복해서 듣는 노래는?', '동생이 요즘 가장 자주 쓰는 줄임말은?'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유쾌한 문제들을 출제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맞힌 사람에게 '집안일 1회 면제권' 같은 확실한 포상을 지급하면, 퀴즈 하나로 온 가족의 승부욕과 폭소가 폭발하는 명절 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유치한 퀴즈쇼가 될 수도 있겠지만, 가족 모두가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너무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제미나이'의 아이디어를 보고 아이들과 중학교 때까지 함께 썼던 가족 교환 일기가 떠올랐다. 요즘에는 가족이 각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혼자 식탁에 앉았을 때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길 수 있도록 예전에 쓰던 가족 교환 일기장을 놓아둘 생각이다.


읽기만 해도 피곤해지는 AI의 추석


이 밖에도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평범하거나, 번거롭거나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미션들은 실천 가능성도 낮고 하고 싶지도 않아 제외했다.

'제미나이'는 "달맞이 대신 스포트라이트를! '가족 송편 어워즈'", "미래의 우리에게 보내는 응원 '방구석 타임캡슐'", "차례상 대신 셰프의 테이블 '명절 음식 퓨전 요리 대전'", "음악과 영화로 이어지는 세대 '집콕 달빛 영화제 & 플레이리스트 교환식'" 등 주로 평범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클로드'는 진지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구술 아카이브"를 만들어 납골당에서 돌아와 가족이 모여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기억을 매년 3가지씩 말하고 녹음해서 10년짜리 가족사를 만들라고 제안했다. "보름달 라디오"도 있었다. 올해 있었던 일과 관련된 신청곡과 사연을 보내 서로 읽어주고 노래를 틀어주는 방식. 사연 신청 생각만 해도 민망하다.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 받는 아이디어도 있다.


'클로드'는 명절마다 4쪽짜리 "한가위 창간호" 가족 신문을 만들라고 했다. 가족이 각자 1면 톱기사, 인물 인터뷰, 논설, 만평을 맡아서 매년 가족 신문을 발행하라는 고문 같은 미션도 제안했다. 심지어 챗GPT는 "우리 가족만의 '추석 방송국' 개국하기"를 제안하며 영상 뉴스를 만들라고도 했다.


모든 게 처음부터 전통은 아니었다


사실 AI에게 물어본다고 해서 우리 가족이 이번 추석을 특별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 가운데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만 보다 연휴가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도 처음이 있었다. 나에게 명절은 오랫동안 지켜야 하는 형식에 가까웠다. 아버지의 차례를 이어받은 장남이었고,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형식적인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면서 오히려 가족과 무엇을 할 것인지를 더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사와 차례를 없애고 납골당을 찾아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차례상 대신 글램핑장에서 고기를 먹고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이 마저도 잠시 쉬어가려 한다. 고3 딸에게 이번 추석은 청소년으로 보내는 마지막 명절이다. 고1 아들도 몇 년 뒤면 대학생이 되고, 군대에 가면서 자기만의 일정이 생길 것이다.


가족에게도 어떤 의미에서는 유효기간이 있다. 가족이라는 끈은 결코 끊어지지 않지만, 온 가족이 아무 계획 없이 며칠 동안 한집에 모여 부대낄 수 있는 시간에는 끝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올해는 '어디를 갈까'보다 '같이 무엇을 할까'를 고민해 본다.


몇 년 뒤 아이들이 이번 추석을 떠올리며 "엄마가 500원 거의 다 가져갔잖아"라며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일단 가족 단톡방에 AI의 아이디어를 공유할 생각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아빠의 이런 계획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재밌겠다'라는 반응이 나올지, '아빠 혼자 하세요'라는 답이 돌아올지 궁금하다.


전통이라고 해서 반드시 오래되고 거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올해 우연히 시작한 별것 아닌 놀이를 내년에도 하고, 그다음 해에도 또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우리 가족만의 새로운 추석 전통이 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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