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면도사에게나 철학은 있…나?

사라진 영어 원문을 찾아서

by배대웅

얼마 전 네 번째 글쓰기 세미나를 마쳤다. 참여한 작가님 한 분이 수고했다며 카지노톡으로 선물을 보내왔다. 파커 만년필이었다.


“앞으로 사인 많이 하셔야 하잖아요”


나도 양심이 있다. 솔까 사인할 일이 많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야구선수만 장비빨이 있는 건 아니다. 작가도 좋은 펜을 쥐여주면 뭐라도 있어 보인다. 덕담까지 포함해서 감사하게 받았다.


만년필에는 원하는 문구를 각인하는 서비스도 있었다. 마치 가문의 문장을 새겨 넣는 유럽 귀족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뭘 새길지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어느 면도사에게나 철학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됐다. 하루키는 서머싯 몸의 말이라고 여러 번 소개했다. 내가 읽은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에도 나오고, 초기작 『1973년의 핀볼』에도 등장한다. 2007년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도 다시 꺼냈다.


나도 이 문장을 자주 우려먹었다. 온라인카지노에서 여러 번 인용했고, 지금까지 낸 두 권의 저자 소개에도 빠짐없이 넣었다. 내 작가론을 단 한 줄로 줄이면 이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면도만 오래 해도 철학이 생긴다. 하물며 자기 인생을 수십 년 살아온 사람에게 쓸 것이 없을 리 없다. 대단한 경험보다 평범한 일을 무수히 반복한 사람이 자기만의 글을 쓸 수 있다. 작가의 만년필에 새기기에 이보다 좋은 문장이 없었다.


다만 한글은 좀 없어 보일 것 같았다. 모나미 볼펜도 아니고 파커 만년필 아닌가. 영문 필기체로 원문을 새겨야 간지가 날 것 같았다. 두 권의 저자 소개에 써먹었는데 원문을 모른다는 것도 민망한 일이었다. 이참에 원문이나 알아두자 싶었다.


그런데 그런 문장이 없었다.


한국어로 검색하면 많이 나오긴 했다. 출처도 한결같이 서머싯 몸이다. 영어로 바꾸는 순간 행방이 묘연해졌다. 아무리 검색어를 바꿔도 출전이라고 할 만한 게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번역을 거치면서 표현이 달라진 줄 알았다. 영어에서 일본어로, 다시 한국어로 왔으니 원문과 멀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표현을 이것저것 넣어서 찾아봐도 마찬가지였다. 면도사도, 철학도, 둘을 엮은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이러고 있자니 검색어가 아니라 전제를 의심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서머싯 몸의 말이라고 믿고 원문만 찾고 있었다. 혹시 애초부터 몸의 말이 아니었다면?


영화 <기생충>으로 치면 여기서 문광이 박 사장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만년필에 영어 몇 자 새기려던 일이 갑자기 문헌 고증 미스터리로 바뀌었다.


서머싯 몸은 정말 “어느 면도사에게나 철학이 있다”라고 했는가?


다행히 이런 의문을 품은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다. 일본에는 나보다 훨씬 먼저, 한참 멀리 간 사람이 있었다. 2018년 한 독자가 일본 몸 협회(日本モーム協会)에 문의했다. 서머싯 몸 ‘협회’가 따로 있다니 역시 일본은 덕후의 나라다. 『달과 6펜스』 달랑 한 권 읽고 그 양반의 발언 진위를 캐고 있는 내 처지가 갑자기 짜치게 느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몸의 말이라고 여러 번 인용한 이 문장의 원문이 무엇인가요?”


협회 측에서는 몸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다는 연구자가 답했다. 먼저 몸의 명언집 두 권을 확인했다. 없었다. 명언이 많이 인용되는 회상록 『서밍 업』도 찾아봤다. 역시 없었다. 인터넷에는 소설 『면도날』에 나오는 문장이라는 주장도 있어서 원문에서 ‘razor’와 ‘philosophy’까지 검색해 봤다.


결론은 같았다. 서머싯 몸의 문장이라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출처도 확인되지 않은 문장을 두 권의 바카라에 내 작가론이라고 박아놓고 있었던 셈이다.

image.png증거물 1. 2018년 일본 몸 협회에 실제로 접수된 문제의 질문과 답변


그렇다면 이제 수사 대상은 하루키의 머릿속이다. 그 양반이 잘못 기억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한다.


하루키의 기억은 꽤 구체적이었다. 그는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에서 고등학생 시절 영어 독해 참고서를 즐겨 읽었다고 했다. 거기서 외운 예문 중 하나가 몸의 이 문장이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문장은 잊었지만, 사소한 일도 매일 계속하다 보면 거기에서 철학이 생긴다는 내용이었다고 기억했다. 적어도 하루키 본인은 몸의 말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이로써 남은 단서는 하나다. 하루키가 고등학생이던 1960년대의 영어 독해 참고서.


웃긴 게 2025년 또 다른 일본 독자가 진짜로 거기까지 갔다. 이 사람이 찾아낸 유력 후보는 1965년 출간된 『ニュー・メソッド英文対訳シリーズ C-16 現代随筆論文選』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뉴 메소드 영문대역 시리즈 C-16 현대 수필·논문선』. 영미권 작가들의 수필과 논설을 영어 원문과 일본어 번역으로 읽도록 만든 고등학생용 독해 교재다. 출간 시기와 용도 모두 하루키의 기억에 들어맞는다.


하루키가 실제로 이 바카라을 읽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니까 정황증거에 불과하다. 추리소설이라면 정황증거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범인을 잡으려는 게 아니다. 만년필에 글자 몇 자 새기려는 중이다. 이 정도면 이 참고서를 용의 선상에 올려볼 만하다.

image.png증거물 2. 1965년 영어 참고서.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목차부터 보자. 13번부터 17번까지는 서머싯 몸의 글이 다섯 편 연속으로 실려 있다. 하루키가 기억한 ‘고등학생 때 읽은 영어 참고서 속 몸의 글’이라는 조건과 절묘하게 겹친다. 다만 그 다섯 편에도 문제의 문장은 없다.


대신 바로 앞부분을 봐야 한다. 7번부터 12번까지는 로버트 린드라는 아일랜드 작가의 글이 실려 있다. 그중 10번의 제목이 <A Sermon on Shaving(면도에 관한 설교)>이다. 놀랍게도 첫 문장이 이렇다.


“No man can shave every morning for twenty or thirty years without learning something(누구든 20년이나 30년 동안 매일 아침 면도를 하다 보면 뭔가를 배우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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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물 3. 유력 용의자에게서 발견된 <면도에 관한 설교>


이제야 퍼즐이 맞는다. 하루키가 기억한 고등학생용 영어 참고서에는 실제로 서머싯 몸의 글이 다섯 편이나 있다. 그런데 문제의 면도사 철학에 대한 문장은 그 바로 앞 로버트 린드의 <면도에 관한 설교>에 비슷한 것이 나온다.


요컨대 순서는: 로버트 린드 → 면도 → 반복하면 뭔가를 배운다 → 서머싯 몸 글 다섯 편

반면 수십 년 뒤 하루키의 기억은: 서머싯 몸 → 어느 면도사에게나 철학은 있다


결국 범인은 ‘기억’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하루키가 실제로 이 참고서를 읽었다는 증거는 끝내 없다. 하지만 정황은 너무 잘 맞는다. 이 정도면 법정에서는 몰라도 내 온라인카지노에서는 유죄다. 내가 아는 그 문장은 하루키가 오래전 읽은 내용을 자기 기억으로 재구성한 결과일 것이다.


사건은 대충 해결됐다. 내 만년필만 망했다.


애초에 이 짓을 시작한 이유는 영어 원문을 찾아 만년필에 새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원문이 없었다. 그나마 로버트 린드의 문장을 새기는 대안이 있었다.


“No man can shave every morning for twenty or thirty years without learning something”


이건 길이부터 탈락이다. 다 새기려면 파커에서 펜을 하나 더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한 문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루키의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해서 새기자니, 존재하지 않는 서머싯 몸의 영어 문장을 내 멋대로 만들어내는 셈이 되었다. 여기까지 출처를 파놓고 마지막에 위조범이 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주문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글로 적었다. “어느 면도사에게나 철학은 있다”

20260905_150926.jpg사건 종결. 결국 한글로 새겼다.


처음에는 좀 없어 보일까 걱정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나쁘지 않다.


결국 처음부터 한글로 새겼으면 될 일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 일본 몸 협회에서 1965년 영어 참고서를 지나, 20세기 초의 로버트 린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영어 원문은 못 찾았지만 <아무말 대잔치>에 어울리는 글 하나는 건졌다. 작가에게는 이쪽이 더 남는 장사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쓸데없는 것을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철학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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