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오래된 답, 새로운 질문

바버라 베이그(2026), 『프리라이팅』

by배대웅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구나. 이 바카라을 읽자마자 든 생각이다.


『프리라이팅』은 글쓰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오해부터 깨뜨린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재능을 타고났다”라는 믿음이다. 저자 바버라 베이그는 글쓰기를 몇몇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허락된 신비한 능력으로 보지 않는다. 운동이나 악기 연주처럼 여러 기술이 결합한 작업으로 규정한다. 야구선수가 타격과 수비를 반복해서 연습하고, 피아니스트가 음계와 운지법을 몸에 익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작가도 관찰하고, 기억하고, 상상하며 문장을 만드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흔히 ‘재능’이라든가 ‘영감’이라고 불리는 어떤 마법이 아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기술’이다.
- 10쪽


사실 내가 얼마 전까지 쓰던 『자기만의 글쓰기 수업』도 같은 전제에서 출발했다.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보다 반복 훈련의 영향을 더 많이 받으며, 원칙을 익히고 적용하면 누구나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프리라이팅』의 1부를 읽는 동안 내가 쓰던 원고의 첫 장을 다른 사람이 먼저 써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 바카라이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면, 누군가는 내가 베이그의 바카라을 옆에 펴놓고 쓴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에 이 바카라을 처음 읽었는데 억울할 뻔했다.


글쓰기 바카라의 80%는 비슷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그랬다. 많이 읽고, 꾸준히 쓰고, 독자를 생각하고, 고쳐 쓰라는 기본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하긴 글쓰기의 본질이란 동서고금을 초월하는 것이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운동에 관한 바카라이 결국 먹고 자고 반복해서 훈련하라는 이야기로 돌아가듯, 글쓰기 바카라도 재능을 탓하지 말고 직접 써보라는 결론으로 모인다.


따라서 차이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디서 시작해 어떤 순서로 가르치느냐에서 생긴다. 『프리라이팅』의 강점도 여기에 있다.


일단 써도 괜찮다는 허락


글쓰기를 배우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문장론이 아닐 수 있다. 한 편의 글에는 하나의 메시지만 담아야 한다거나, 결론부터 쓰고 군더더기를 줄여야 한다는 원칙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원칙은 글을 실제로 쓰기 시작한 뒤에야 쓸모가 있다. 빈 화면만 바라보다 한 문장도 쓰지 못한다면 구성도 문장도 의미가 없다.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자격부터 묻는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써도 될까. 남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미 누군가 더 잘 쓴 주제가 아닐까. 첫 문장을 쓰면서 글의 완성도까지 걱정한다. 머릿속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과 검사하는 사람이 동시에 일한다. 쓴 문장을 검열하고 지우는 속도가 새 문장을 만드는 속도보다 빠르다.


베이그가 제안하는 프리라이팅은 이 둘을 일단 갈라놓는 방법이다. 시간을 정하고 멈추지 않은 채 쓴다. 문법과 맞춤법, 구성과 일관성을 따지지 않는다. 쓸 말이 없으면 “쓸 말이 없다”라고 써도 된다. 멋진 작품을 만들려는 욕심도 내려놓는다. 남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면 그만이다. 핵심은 ‘잘 쓰기’가 아니라 ‘계속 쓰기’다. 무엇을 써도 괜찮다는 허락을 자신에게 내주는 것이다.


프리라이팅을 연습하며 얻게 될 가장 중요한 이점은 스스로 검열하지 않고 자기 생각과 단어를 거침없이 종이에 옮기게 된다는 점이다. 이 과정을 통해 쓰는 행위 자체가 편안해지는 것이다.
- 48쪽


프리라이팅은 시작에 불과하다. 저자는 마음의 검열을 낮춘 뒤 관찰과 기억, 상상과 호기심을 훈련해 쓸 내용을 발견하게 한다. 이어 그 재료를 이야기와 목소리로 발전시키고, 독자와 소통하는 글로 완성하는 단계까지 안내한다. 부담 없이 출발하되, 끝내는 읽히는 글에 도달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글쓰기 입문서는 대개 저자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익힌 원칙을 완성된 형태로 제시한다. 메시지를 정하라, 개요를 짜라, 두괄식으로 써라, 문장을 간결하게 하라.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초보자에게는 공을 처음 잡은 사람에게 투구 폼부터 정확히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프리라이팅』은 자세를 교정하기 전에 공부터 던져보게 한다. 제대로 된 폼이 아니어도 좋고, 스트라이크가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다. 우선 던지는 감각을 익힌 뒤에 동작을 하나씩 다듬는다. 글쓰기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친절한 출발이다.


자유롭게 쓰는 것이 모두에게 자유로울까


다만 프리라이팅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효과를 낼지는 의문도 들었다. 무엇이든 좋으니 떠오르는 대로 쓰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해방감을 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큰 막막함을 줄 수도 있다. “자유롭게 써보세요”라는 말만큼 어려운 지시도 없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말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초보자는 글쓰기가 두려운 사람이면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말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 문단에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글의 중심을 어떻게 세우는지, 근거와 사례를 어디에 배치하는지 모른다.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쓰게 하면, 생각의 물꼬가 트이기보다 평소 하던 말을 반복할 가능성도 있다.


나는 초보자에게는 최소한의 원칙과 형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쓰던 바카라에서는 글쓰기 과정을 ‘메시지–구조–표현’으로 나눴다. 무엇을 말할지 정하고, 어떤 순서로 배열할지 설계한 뒤, 읽히는 문장으로 옮기는 방식이다. 몇 가지 기본 규칙과 익숙한 글의 형식을 제시하면 초보자에게는 무한한 자유 대신 붙잡을 난간이 생긴다. 처음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 자유 작곡보다 기존 곡을 연주해 보면서 시작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나와 베이그의 진단이 갈린다. 베이그는 초보자가 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내면의 검열에서 찾는다. 잘 써야 한다는 압박과 틀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먼저 걷어내야 비로소 자기 안의 재료가 나온다고 본다. 그래서 문법과 구성에 대한 판단을 미루고, 무엇이든 계속 쓰게 한다.


반면 나는 두려움만큼이나 방향의 부재도 초보자를 막는다고 여긴다. 무엇을 중심에 놓고 어떤 순서로 써야 하는지 모르면, 자유롭게 쓰라는 주문도 또 다른 막막함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최소한의 원칙과 구조를 먼저 알려준 뒤, 그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를 써보게 하는 쪽을 택했다. 베이그가 검열을 풀어 쓰기의 문을 연다면, 나는 몇 개의 기준을 세워 그 문 안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려는 셈이다.


물론 베이그도 글쓰기의 후반부까지 무조건의 자유만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 바카라은 재료를 발전시키는 단계에 이르면 선택의 기준과 장르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글쓰기는 과정의 모든 단계마다 선택을 내려야 한다. (…) 당신이 선택한 장르의 형식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더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다.
- 237~238쪽


차이는 원칙의 필요성을 인정하느냐에 있지 않다. 그것을 언제 가르칠 것인가에 있다. 베이그는 먼저 검열을 내려놓고 충분히 써보게 한 뒤 기준을 제시한다. 나는 최소한의 기준을 출발선에 좀 더 가깝게 놓는다.


글쓰기의 장벽은 사람마다 다르다. 할 말은 많지만 자기 검열 때문에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프리라이팅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조직해야 할지 몰라 막히는 사람에게는 기본 규칙과 템플릿이 더 실용적일 수 있다. 원인이 다르면 처방도 달라져야 한다.


그럼에도 이 바카라의 문제의식은 설득력이 있다. 너무 많은 글쓰기 바카라이 완성된 글의 품질만 말한다. 『프리라이팅』은 완성 이전의 마음을 헤아려준다. 쓰기도 전에 스스로를 탈락시키는 사람에게 일단 계속 써도 된다고 말한다.


AI가 빈 화면을 먼저 채우는 시대


『프리라이팅』이 처음 출간된 뒤 글쓰기의 환경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과거의 초보자는 빈 화면 앞에서 막혔다. 지금은 그 옆에 AI 대화창을 열어둔다. 몇 줄만 입력하면 제목과 개요가 나오고, 첫 문장에서 결론까지 한 방에 완성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 감성적으로, 더 논리적으로, 더 전문적으로 고쳐달라고 하면 된다.


그래서 이제 글쓰기의 첫 번째 질문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가 아니다. “AI가 대신 써주는데, 왜 내가 직접 써야 하는가”다.


이 질문이 『프리라이팅』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 바카라은 2010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이듬해 『하버드 글쓰기 강의』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생성형 AI가 일상적인 글쓰기 도구가 되기 훨씬 전의 일이다.


같은 바카라이 이번에는 『프리라이팅』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온 것도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2011년에는 ‘하버드’의 권위가 셀링 포인트였다면, 지금은 독자가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론이 전면에 나셨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바뀐 것은 바카라을 포장하는 언어만이 아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의 조건이 달라졌다.


나도 그 변화 앞에서 거의 완성한 글쓰기 바카라을 엎었다. 『자기만의 글쓰기 수업』은 평범한 사람도 훈련을 통해 잘 쓸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주제를 찾고 바카라을 읽으며 생각을 발전시키는 법, 글을 구성하고 문장을 다듬고 퇴고하는 원칙을 차례로 설명했다. 지금 AI는 그 과정의 상당 부분을 몇 초 만에 처리한다. 내가 여러 장에 걸쳐 가르치려던 일을 한 화면에서 해낸다. 따라서 “글쓰기는 배울 수 있는 기술”이라는 오래된 대답만으로는 부족해졌다. 그 기술을 사람이 직접 익혀야 하는 이유까지 설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프리라이팅은 낡은 방법이 된 것일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AI의 등장은 프리라이팅의 효용을 없앤 것이 아니라 목적을 바꾸었다.


예전의 프리라이팅은 빈 화면을 채우는 기술이었다. 내면의 검열을 멈추고 계속 써서 자기 안의 재료를 꺼내는 방법이었다. 이제 빈 화면은 AI가 누구보다 빨리 채운다. 문제는 초고가 없다는 데 있지 않다. 너무 쉽게 얻은 초고가 내 생각의 자리를 먼저 차지한다는 데 있다.


AI 대화창을 먼저 열면 기계가 제시한 논리와 표현이 생각의 출발점이 된다.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내 생각은 매끄럽게 정돈된 문장에 끌려간다. 내가 AI를 이용하는지, AI가 내 사고를 규정하는지 경계가 흐려진다.


이때 프리라이팅은 자기 생각을 먼저 확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AI에게 묻기 전에 10분 동안 직접 써보는 것이다. 문장의 완성도를 따지지 않고, 내가 무엇에 걸렸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적는다. 그 글은 AI가 만든 초고보다 거칠고 두서없을 것이다. 그래도 무엇이 내 생각인지는 분명해진다.


그런 다음 AI를 사용하면 관계가 달라진다. AI가 내놓은 제안을 받아들일지 버릴지 판단할 기준이 생긴다. 내 논지를 확장하는 데 쓸 수도 있고, 빠진 반론을 찾거나 구조를 점검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프리라이팅은 초고를 생산하는 기술에서, 사유의 주도권을 먼저 확보하는 기술로 바뀐다.


베이그가 강조한 '쓸 내용을 발견하는 능력'도 같은 맥락에서 새롭게 읽힌다. AI는 수많은 글을 학습해 가장 그럴듯한 답을 조합한다. 그러나 내가 오늘 본 장면과 오랫동안 해온 일, 특정한 관계에서 겪은 감정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다. 같은 사건을 보고 왜 나만 다른 질문을 품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인간의 글은 바로 그 경험과 질문에서 시작된다.


AI 시대에 문장을 만들어내는 능력의 희소성은 줄었다. 대신 무엇을 쓸지 결정하고, 결과를 판별하고, 최종 문장에 바카라임지는 능력의 가치는 커졌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글쓰기 훈련도 달라져야 한다. 문장을 쓰는 손만 길러서는 부족하다. 무엇을 남기고 버릴지 판단하는 눈도 함께 성숙해야 한다.


『프리라이팅』은 이 변화에 직접 답하지는 않는다. 답할 수 없었던 시대에 쓰인 바카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심 철학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다. 글쓰기는 훈련할 수 있으며, 그 훈련은 자기 안에서 쓸 내용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믿음이다.


AI 시대의 글쓰기는 그 믿음을 새로운 질문 아래 재배치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제 프리라이팅은 빈 화면을 채우려고 필요한 것이 아니다. 빈 화면이 너무 쉽게 채워지는 시대에, 그 안에서 내 생각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다시 쓰기 위한 독서


부키 출판사에서 이 바카라의 리뷰를 제안했을 때, 마침 나는 거의 완성한 글쓰기 바카라을 갈아엎어야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글쓰기 바카라이 지금의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 살펴보고 싶어서 제안을 받아들였다.


읽고 보니 내 원고와 『프리라이팅』은 글쓰기를 재능보다 훈련의 영역으로 본다는 점에서 놀랄 만큼 닮아있었다. 처음에는 내 바카라이 너무 비슷한 것 같아서 당황했다.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적어도 글쓰기에 대한 기본 전제만큼은 오랫동안 검증된 원칙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프리라이팅』의 고유한 성취는 쓰기도 전에 자신을 탈락시키는 사람을 바카라상 앞으로 데려오는 것에 있다. 연습은 작품이 아니며, 처음부터 잘 쓰지 않아도 된다고 격려한다. 첫 문장 앞에서 자꾸 멈추는 사람에게는 좋은 출발점이 될 바카라이다.


완전한 글을 쓰는 데 집착하지 마라. 당신이 쓴 글이 만족스럽지 못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 374쪽


다만 그 바카라상 위에는 이제 노트와 펜만 놓여 있지 않다. 옆에는 무엇이든 대신 써주는 AI가 켜져 있다. 앞으로의 글쓰기 바카라은 쓰는 방법과 함께 무엇을 직접 쓰고 무엇을 맡길지, AI의 결과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까지 다뤄야 한다.


AI가 대신 써주는데 인간은 왜 써야 하는가. 지금 내가 다시 쓰려는 바카라도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기존 원고의 논지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글쓰기는 훈련할 수 있다는 전제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달라진 것은 독자의 질문이다. 이제는 "어떻게 쓸 것인가"에 앞서 "왜 직접 써야 하는가"부터 답해야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질문이 생겨날 뿐이다. 글쓰기 바카라도 그 질문에 맞춰 다시 쓰여야 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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