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태양을 만들 수 있을까?

by배대웅

지금 이 순간에도 에너지는 쉬지 않고 소비되고 있습니다. 교실의 전등이 켜지고, 스마트폰이 작동하고, 데이터센터의 컴퓨터들은 수많은 정보를 계산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와 지하철도 에너지로 움직이고, 저녁 식사를 만드는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우리는 에너지를 거의 의식하지 않습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듯,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으면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내일부터 전기와 연료가 모두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학교도, 병원도, 인터넷도 멈춰 버릴 것입니다. 현대 문명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에너지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류의 역사가 에너지를 얻으려는 기나긴 투쟁이기도 했습니다. 인류는 불을 발견하면서 추위를 이겨냈고, 석탄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켰으며, 석유와 전기로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새로운 에너지를 손에 넣을 때마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했고,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문명을 움직이는 진짜 연료는 돈도 권력도 아닌 에너지였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사용해 온 에너지는 늘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석탄과 석유는 공장과 자동차를 움직였지만, 대기오염과 기후변화라는 문제를 남겼습니다. 석유가 많이 묻힌 지역을 둘러싸고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원자력은 적은 연료로 엄청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방사성 폐기물과 안전성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인류는 에너지를 얻을 때마다 새로운 문제도 함께 떠안아 온 셈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답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위험하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으면서,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없을까?"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류가 불을 발견한 이후 한 번도 해결하지 못한, '궁극의 숙제'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유력한 답이 의외로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매일 우리 머리 위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그 힌트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태양은 약 46억 년 동안 쉬지 않고 빛과 열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사용한 모든 발전소를 합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쏟아냅니다. 그렇다면 태양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리를 지구에서 재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마치 SF 영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은 지금 '인공 태양'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태양은 왜 꺼지지 않을까


흔히 태양을 거대한 불덩어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우주 공간에는 산소가 없지요. 태양은 우리가 모닥불을 피우듯 무언가를 태워서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이 스스로 빛과 열을 내는 비밀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핵융합’에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원자력 발전소의 원리는 ‘핵분열’입니다. 우라늄처럼 아주 무겁고 불안정한 원자핵에 중성자를 쏘아 원자핵을 쪼개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튀어나옵니다. 그걸 평화적으로 쓰면 원자력 발전이 되고, 무기로 쓰면 원자폭탄이 됩니다.


핵융합은 그 반대 방향의 반응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가볍고 흔한 원소인 수소들이 서로 강력하게 부딪쳐 더 무거운 헬륨 원자핵으로 합쳐지는 현상입니다. 태양에서는 수소 원자핵 네 개가 여러 단계를 거쳐 헬륨 원자핵 하나로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아주 작은 양의 질량이 에너지로 변합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²가 실제로 작동하는 순간입니다.


태양 중심부는 온도가 약 1,500만 ℃에 달하고 압력도 엄청나게 높아서, 이 수소들이 쉴 새 없이 부딪치며 핵융합 반응을 일으킵니다. 태양이 매초 내놓는 에너지는 현재 인류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태양은 우주에 떠 있는 거대한 핵융합 발전소인 셈입니다.

twister768.gif태양 중심부에서는 매초 약 6억 톤의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며 막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핵융합 에너지는 인류가 꿈꾸던 거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뿐 아니라 영화 제작자들도 핵융합을 미래 에너지의 상징처럼 그려 왔습니다. <스파이더맨 2>에서는 닥터 옥토퍼스가 인공 태양을 만들려 하고, <아이언맨>에서는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가슴에 달린 아크 리액터가 핵융합 장치로 묘사됩니다.


핵융합 발전에서 가장 유력한 연료는 중수소와 삼중수소입니다.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고, 삼중수소는 자연에 거의 없어 리튬을 이용해 따로 생산해야 합니다. 이 연료들은 소량만으로도 석유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에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온실가스를 내뿜지도 않고, 원자력 발전처럼 연쇄반응이 폭주할 가능성도 극히 낮습니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핵융합 반응은 그 즉시 스스로 멈춰버리기 때문입니다. 방사성 폐기물 걱정도 원자력 발전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해 보입니다. 지구에 태양을 직접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 원리를 현실에 구현하는 공학의 세계로 들어서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공 태양은 발전소 하나를 짓는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 생산 장치를 지구 위에 복제하려는 시도입니다.


1억 ℃의 별을 가두는 법


가장 큰 문제는 압력입니다. 태양은 무게가 워낙 엄청나서 중심부의 압력이 지구보다 수천억 배나 높습니다. 덕분에 1,500만 ℃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도 수소들이 쉽게 부딪쳐 합쳐집니다. 하지만 중력이 약한 지구에서는 그 정도로 수소를 짓누를 수가 없습니다. 압력이 낮다면 온도를 더 높여야 합니다. 그래서 지구에서 핵융합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온도는 자그마치 1억 ℃ 이상입니다. 태양 중심보다 무려 7배 이상 뜨거운 상태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1억 ℃까지 올라가면 고체, 액체, 기체도 아닌 제4의 상태인 ‘플라스마’가 됩니다. 원자핵과 전자가 서로 떨어져 나가 제멋대로 날뛰는 초고온의 가스 상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모순이 생깁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금속이나 물질도 1억 ℃의 플라스마가 닿는 순간 흔적도 없이 녹아내립니다. 이 엄청난 온도의 인공 태양을 담아둘 그릇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신박한 해결바카라을 찾아냈습니다. 보이지 않는 가상의 벽, 바로 '자기장’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플라스마는 전기를 띤 입자들이기 때문에 자석의 힘에 반응합니다. 도넛 모양으로 생긴 거대한 방 안에 초강력 자석을 촘촘하게 배치하고, 그 중심에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 플라스마가 고리 모양 궤도를 따라 움직이게 만듭니다. 뜨거운 플라스마가 벽면에 닿지 않도록 자석으로 만든 보이지 않는 그릇에 가두는 장치입니다. 이것을 러시아어로 ‘토카막(Tokamak)’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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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R-Fusion-Reactor.gif토카막은 초강력 자기장을 이용해 1억 ℃의 플라스마가 벽에 닿지 않도록 공중에 가두는 장치입니다.


이 분야에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대전에 있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는 ‘한국의 인공 태양’이라 불리는 초전도 핵융합 연구 장치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가 있습니다. KSTAR는 전도체 자석이 아닌 초전도 자석을 사용한 대표적인 토카막입니다. 특히 초고온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분야에서 독보적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2024년 초에는 마의 온도로 불리는 1억 ℃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무려 48초 동안 끊김 없이 유지하는 데 성공하며 세계 최장 기록을 세웠습니다. 비록 몇십 초 단위의 짧은 시간이지만, 1억 ℃라는 극한의 물리적 상태를 통제할 수 있음을 증명한 쾌거였습니다.

image.png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KSTAR는 초고온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태양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나라라도 혼자 힘으로 인공 태양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과 인력, 그리고 해결해야 할 기술적 난제는 한 국가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과학은 종종 홀로 진리를 찾아내던 천재들의 무대였습니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위대한 개인의 머릿속에서 패러다임이 바뀌곤 했지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과학의 양상이 또 한 번 바뀌었습니다.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미국 정부가 수많은 과학자를 고용하고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었던 맨해튼 계획이 대표적입니다. 이 시기의 과학은 철저히 국가의 이익과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경쟁의 도구였습니다.


반면 핵융합이라는 꿈의 에너지를 향한 도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국가 간 경쟁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번영을 위한 '협력의 서사'로 쓰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출발점은 냉전의 첨예한 기운이 남아있던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과 소련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두 정상은 총칼을 겨누던 적대 관계를 넘어, 인류에게 평화롭고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는 핵융합 연구의 추진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바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입니다. 라틴어로 ‘길’이라는 뜻을 가진 이 프로젝트는 이름 그대로 인류가 나아갈 미래의 길을 가리킵니다.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건설 중인 ITER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복잡한 과학 실험 장치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EU,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 등 전 세계 과학기술을 주도하는 30여 개국이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image.png1985년 제네바 정상회담. 핵융합 국제협력은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역사적 합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ITER의 참가국들은 각자 자신들이 가장 잘 만드는 부품을 제작해 프랑스 건설 현장으로 보냅니다. 한국은 플라스마를 가두는 핵심 용기와 초전도 자석 부품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저마다의 장기를 살려 거대한 조각 맞추기를 하듯 하나의 장치를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수만 명의 연구자, 수십조 원의 예산이 한데 모여 작동하는 현대 거대과학의 정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연은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다


국가의 경계를 허문 이 장엄한 집단지성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인공 태양이 완성되어 온 세상에 깨끗한 전기를 나누어 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자신의 비밀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사실 핵융합 연구가 어려운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지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극한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가 더 큽니다. 태양 중심부보다 몇 배나 뜨거운 1억 ℃ 플라스마를 만들고, 그것을 수 분, 수십 분, 나아가 수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가둬야 합니다. 그런데 그 플라스마는 닿기만 하면 어떤 금속도 녹여 버립니다. 반대로 플라스마를 가두는 초전도 자석은 영하 269℃ 정도의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만 작동합니다. 즉 하나의 장치 안에 태양보다 뜨거운 공간과 우주보다 차가운 공간이 동시에 존재해야 하는 셈입니다.


여기에 더해 핵융합로 내부 벽은 초고온 플라스마와 고에너지 중성자의 폭격을 수십 년 동안 견뎌야 합니다. 현재의 재료공학으로는 이런 환경을 완벽하게 버틸 물질이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핵융합을 연구하는 동시에, 그 핵융합로를 견딜 새로운 금속과 소재까지 함께 개발해야 합니다.


실제로 ITER 프로젝트는 수많은 난관에 봉착해 왔습니다. 2020년대에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 공장들의 부품 공급망이 마비되었습니다. 또 정밀 제작되어야 할 대형 부품들에서 미세한 균열이나 품질 문제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1억 ℃의 열과 방사선을 견뎌야 하는 안전성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프랑스 원자력안전규제기관이 조립 작업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일도 있었지요.


결국 2024년 여름, ITER 사무총장 피에트로 바라바스키는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계획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새로운 기준선(New Baseline 2024)’을 발표했습니다. 원래 2025년으로 계획되어 있던 첫 번째 플라스마 발생 일정이 9년 뒤인 2034년으로 늦춰지게 된 것입니다.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진짜 핵융합 연료(중수소와 삼중수소 믹스)를 넣고 가동하는 본격적인 실험은 2039년에야 시작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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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건설 중인 ITER.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과학 실험 장치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직 없는 미래를 향하여


"인류는 결국 지구에 인공 태양을 만들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당장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상보다 빨리 완성될 수도 있고, 반대로 새로운 난관이 나타나 수십 년을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핵융합 연구의 역사는 기대와 좌절의 무한 반복에 가까웠습니다. 과학자들은 1950년대부터 핵융합 발전을 꿈꿔 왔지만, 매번 새로운 난제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핵융합은 '언젠가는 성공할 기술'이면서 '언제 성공할지는 알 수 없는 기술'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도 인류는 이 어려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핵융합 연구는 그저 새로운 발전소 하나를 짓는 사업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어떤 에너지원도 동시에 만족시키지 못했던 문제들, 즉 에너지 안보와 환경, 지속가능성을 한 번에 해결하려는 시도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연구가 이루어지는 방식입니다. ITER에는 수만 명의 연구자와 수십 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정도 규모의 과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핵융합은 보통의 차세대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가 과학과 협력을 통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거대한 시험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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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image.png인공 태양은 수만 명의 과학자가 함께 만드는 인류의 미래입니다.


물론 성공은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원래 과학은 그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증기기관도, 비행기도, 달 탐사도 처음에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늘 한계를 마주할 때마다 포기하는 대신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이 대사에는 인류가 과학을 발전시켜온 오랜 이상이 담겨 있습니다. 지구상에 인공 태양을 만들어내려는 핵융합 연구야말로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도전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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