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출간할 바카라의 초고에 대한 출판사 피드백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게 바카라에만 해당하는 지적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내 글쓰기의 근본적인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대략 이런 것들이다.
“푸코를 읽은 사람은 이 바카라을 읽지 않습니다. 토머스 쿤도 마찬가지고요. 차라리 『총, 균, 쇠』, 『사피엔스』 같은 바카라을 예시로 들어주세요.”
→ 독서 노트의 작성 예시로 『감시와 처벌』, 『과학혁명의 구조』를 든 부분에 대해
“예시가 어려워요. 독자들이 읽어보진 않았을지라도 알고 있을 법한, 친숙한 바카라을 예시로 드는 게 좋겠습니다. 다독가 저자의 장기자랑처럼 느껴져서는 안 되니까요.”
→ 발췌독으로 글 써보기 연습에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 『피로슬롯』를 예시로 쓴 부분에 대해
“여기서부터 너무 어려워집니다. ‘근대정치사상’, ‘자유’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바카라을 덮게 될 거예요.”
→ 인문학 주제로 ‘근대정치사상에서 자유 개념의 변천’을 쓴다고 할 때, 어떤 바카라들을 읽어야 하는지 추천하는 부분에 대해
“그람시는 빼시죠”
→ 진부함을 깨는 작가들의 비법에 안토니오 그람시를 인용한 부분에 대해
그러니까 나는 대중교양서 작가라기보다는, 여전히 운동권과 대학원생의 정체성을 못 벗어난 사람 같다. 예시를 들려고 하면 검색어 자동 완성처럼 그 시절 텍스트가 튀어나온다. 설명을 하려고 해도 그때 배운 문장이 손에 먼저 잡힌다. 몸에 밴 버릇은 생각보다 집요하다.
문제는 그게 독자에게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자막 없는 외국 영화에 가깝다. 나는 분명 한국어로 쓰고 있는데,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말이지?” 하는 구간이 계속 생기는 식이다.
그람시만 해도 그렇다. 나에게는 아직도 “아, 그 문장 개쩔지” 하는 문장가인데, 이 바카라을 집어 들 독자에게는 “그게 누규…?”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냥 내가 안 바뀐 쪽에 가깝다.
나는 자주 착각한다. 내가 아는 건 남들도 어느 정도는 알겠지. 내가 좋아하는 문장은 다른 사람도 무리 없이 따라오겠지. 그런데 바카라을 쓸 때마다 그 착각이 문장 단위로 박살난다. 아주 친절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이렇게 몇 대 쳐맞고 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역시 편집자는 신이다. 정확히 아픈 데만 때린다.)
나는 그동안 꽤 변했다고 믿었다. 몇 년째 대중교양서를 쓰면서, 예전의 텍스트들에서는 자연스럽게 벗어났다고. 그런데 원고를 펼쳐보면 그 시절의 문장들이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쏙 내민다. 마치 “데헷 우리 아직 여기 있는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걸 구태라고 해야 할지, 습관이라고 해야 할지, 그냥 오래된 취향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내가 읽어온 글과 앞으로 써야 할 글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간격이 있다는 것.
앞으로는 대중교양서도 쓰고, 글쓰기 바카라도 써야 한다. 그러려면 문장을 다듬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내가 서 있는 자리 자체를 옮겨야 한다. 그것은 익숙한 텍스트를 내려놓고, 독자가 서 있는 자리 쪽으로 한 발 더 움직이는 일이다.
오랜만에 온라인카지노 글들을 쭉 읽어보았다. AI로 쓴 댓글들이 부쩍 많아진 느낌이다. 그 특유의 깡통 굴러가는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울린다.
사실 글을 AI로 쓰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프롬프트 몇 줄이면 그럴듯한 글이 나오니 효율성에서는 압도적이다. 하지만 댓글까지 AI에게 시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댓글이란 글쓴이와 소통을 하거나 의견을 나누고 싶어서 쓰는 것 아닌가. 그걸 뭘 기계한테까지 시키는지 모르겠다. 온라인카지노 댓글 따위 귀찮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물론 이유야 뻔하다. 구독자 관리를 위해서일 것이다. 남의 글에 댓글을 많이 남겨야 내 글에도 댓글이 달리고, 또 구독자 수도 올라갈 테니까. 온라인카지노는 원래 그런 기묘한 품앗이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숫자에 대한 집착이 임계점을 넘은 듯하다.
생각해보면 우습다. 여기서 구독자 몇천 명, 몇만 명을 찍어봤자, 온라인카지노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우리는 듣보일 뿐이다. 화면 속에서는 대작가인 척해도 현실에서는 아무도 못 알아보는 방구석 여포들이다. 이런 현실에서 AI까지 돌려가며 댓글을 뿌려야 할까 싶다. 그런 AI 댓글러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 <부당거래>의 이 명대사가 떠오른다.
하긴 이런 말을 하는 나도 한때는 댓글을 열심히 썼었다. 내 글쓰기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남의 글에 열성적으로 댓글을 달았다. 아마 지금까지 온라인카지노에 쓴 텍스트의 총량을 데이터로 환산해보면, 본문보다 댓글이 잡아먹은 용량이 더 클 것이다.
그때는 그것도 엄연한 글쓰기의 연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아이고 의미 없다” 싶다. 시간을 들인 만큼 오래 남는 일은 아니었다.
이제는 정말 댓글을 쓰고 싶은 글에만 집중해서 쓰려고 한다. 온라인카지노는 결국 내 글을 잘 쓰기 위한 공간일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온라인카지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나도 이제 득도의 경지에 오르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