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는 우리에게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내려갔다. 굶주린 개에게 주는 뼈다귀처럼 꽁꽁 얼어붙은 추운 겨울이 우리에게 던져졌다. 우리는 그 골수까지 빼먹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겨울은 아무 목적 없이 우리에게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온화함으로 추위를 녹여야만 한다.
계절과 열매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겨울은 사람의 두뇌를 알곡처럼 단단하게 채워준다. 사람이 성숙해지는 계절이다. 사유의 격조와 견고함, 일관성을 얻는 시기다. 그래서 겨울에는 한 해의 큰 수확인 사유를 거둔다.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중>
가을 날씨가 참 좋습니다. 미세먼지 없이 하늘은 높고, 뭉게구름은 유유히 흘러갑니다. 주변의 나무들은 울긋불긋 물들어가고, 새들의 목소리는 청량하게 울립니다. 잔잔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낙엽은 조금씩 땅으로 떨어집니다.
산바카라 나온 강아지들은 쾌적한 날씨에 신이 나서 주변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사람들은 연신 하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연인들은 두 손을 꼭 잡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더웠던 여름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가을의 여유로움이 우리 곁에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의 분주했던 마음도 조금씩 차분해집니다.
계절의 변화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해 줍니다.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감정도 달라집니다. 환절기의 변화는 사람들의 호르몬을 흔들고, 감정의 흐름까지도 변화시킵니다.
계절의 변화에는 다층적인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계절이 변화하는 일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연은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적응해 갑니다.
변화는 늘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새로워지려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고, 앞으로 해 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됩니다. 익숙했던 환경과 이별하고, 익숙했던 행동을 새로운 행동으로 바꾸어 갑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을 구분합니다. 새로운 시작의 시점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옷의 색깔이 달라지고, 감정의 흐름도 함께 흔들립니다. 누군가는 그 변화를 반기지 않지만, 누군가는 그 변화를 기꺼이 끌어안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도, 우리 자신도 한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지 않다는 뜻일 것입니다. 자신의 변화가 거대한 흐름 속에서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변화에 순응하며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이도 있습니다.
아무리 버텨도 변화의 물줄기를 거스를 수는 없기에, 결국 우리는 그 흐름에 올라타려 합니다.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기침이 나고, 차가운 바람에 콧물이 흐르기도 합니다. 신체 역시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며 그 흐름에 동참하려 합니다.
하지만 신체도 변화의 시간 속에서 호르몬의 재정리가 필요합니다. 이미 적응했던 모드에서 새로운 모드로 전환하며, 약해져 있던 부분들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한동안 재채기와 콧물이 이어지지만, 이 또한 금방 적응하게 됩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이, 그리고 자연의 일부인 우리 인간도 함께 달라집니다. 자연이라는 본질, 인간이라는 본질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마음과 변화에 저항하려는 마음이 부딪히며, 한동안 혼돈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자연의 변화, 세상의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기에 우리는 그 흐름 속에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하고 정체성을 재정립해 나갑니다. 변화가 있을 때 자아는 비로소 성장합니다.
봄의 활기는 새싹을 돋게 하고 꽃봉오리를 피워 여정을 준비하게 합니다. 여름의 무더위는 푸르름을 더욱 강렬하게 키우고, 풍성한 열정을 뿜어내게 합니다. 가을의 차분함은 우리에게 여유를 선사하며 차가워지는 겨울을 준비하게 합니다. 겨울은 흰빛과 검은빛이 공존하는 계절, 추위 속에 움츠러들지만 그 안에서 도약을 위한 여백을 만들어냅니다.
변화가 시작되는 환절기, 그 지점에 우리는 늘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자신을 더 강하게 키우는 과정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 역시 늘 변화의 연속입니다. 사이클이 오르내리는 그 변화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 합니다. 변화가 주어지는 순간은, 익숙하지 않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새벽빛이 떠오르는 순간과 닮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창밖으로 스미는 햇살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 시간과도 같습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몸이 일어나기를 버거워하지만, 기지개를 켜고 혈관에 피가 돌기 시작하는 그 순간처럼, 무언가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 진행됩니다.
익숙한 환경을 또 다른 익숙한 환경으로 바꾸어 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모든 모드가 달라지고, 세포까지도 깨어나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그저 일어나는 것처럼 보여도, 몸의 곳곳이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갑니다.
변화란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자신의 마음이 먼저 바뀌는 과정이며, 그 마음은 결국 행동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익숙한 환경의 껍질을 벗겨내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 일입니까. 뇌는 늘 편안함을 원하고 변화를 꺼려하지만, 그 편안함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를 설득해 내는 과정은 참으로 고된 시간입니다.
근육이 성장하는 과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운동을 통해 근육에 변화의 자극을 주고, 성장통을 겪게 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변화 없이는 성장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성장이라는 과정에는 언제나 변화와 고통이 함께합니다.
한 사람의 변화도 이토록 어려운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회사에서의 변화는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나아가 한 국가가 변화를 추구할 때는 또 얼마나 많은 반대와 갈등이 따르겠습니까. 그럼에도 변화가 있어야 우리는 성장합니다.
아이가 어린아이에서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 인간의 성장은 늘 변화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성인으로, 그리고 죽음이 다가오는 노년의 환절기를 지나며 인간은 세포의 성장에서 정신의 성장으로 옮겨가고, 결국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겪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처럼, 인간은 늘 삶의 환절기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성장과 죽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앞으로 누구로 살아갈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철학은 그렇게 늘 우리 곁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변화라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 물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시시때때로 변한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든,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든 막상 먹어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맛있을 수도 있고, 겪어보면 좋은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모든 과정들이 지나가야, 이렇게 달달하고 짭짤한 나만의 맛이 완성되는 거니까 <단짠 오피스 드라마 속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