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다니지 않는 늦은 밤. 귀인로를 걸었다. 저녁에 내린 겨울비로 인해 밤공기에서 안개냄새가 났다. 길 옆으로 보이는 인적 없는 공장 너머로 하얀 별이 보였다. 불 꺼진 아파트 단지는 적막이 감돌았다.
사람 하나 없는 밤길은 고요했다.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차소리가 늙은 개의 울음처럼 길게 늘어졌다. 아침까지만 해도 여기저기에 눈이 쌓여있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다.
봄비가 내리는 초봄 같은 날씨다. 짧은 한파가 몰고 온 계절감을 완전히 지웠다. 추우면 심야버스를 탈 생각이었는데 그만두기를 잘했다. 밤의 장막이 드리운 도시는 조금 낯설지만 야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멀리 보이는 명학은 예쁜 스노볼 속에 들어있는 작은 미니어처 같았다. 겨울밤을 수놓은 도시의 불빛들이 아름답다. 신축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대단지나 다세대주택들이 늘어서있는 마을이나 똑같이 반짝인다.
반짝이는 모래알갱이를 흩뿌려놓은 그림엽서 같은 모습을 눈에 담았다. 동안구와 만안구의 경계선 위를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안양천이 지나는 다리 하나를 두고 서로 다른 풍경이 마주 보고 있다.
그 사이에서 점이지대 역할을 하는 공장들은 달빛을 맞으며 곤히 자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의 경계선 위에 서서 세월을 가늠해 봤다. 강산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동네 뒷산은 아파트로 변했다.
그 사이 다들 어떤 삶을 살았을까? 기억과 추억이 서로 물고 물리면서 꼬리 잡기를 했다. 교통정리를 하듯이 마무리 짓고 싶었지만 그만두고 밤하늘의 별을 셌다. 차를 빌려서 같이 별을 보러 다녔던 친구들 얼굴이 떠올랐다.
20대였던 우리는 틈만 나면 산과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별구경을 했다.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그 시절이 지금은 별처럼 멀게 느껴진다. 가진 거라고는 시간뿐이었던 우리들은 텅 빈 손을 부끄러워했다.
그때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다시없는 호시절이었다. 푸른 봄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줄 몰랐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좌절감을 달고 살았다.
그 초라했던 날들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황혼기에 접어든 노년기에 이맘때를 떠올리면 그때 역시 똑같은 그리움을 느끼게 될까? 환하게 빛나는 보름달 주변에 소금 같은 별들이 박혀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건드리는 시늉을 하다 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별을 보러 다녔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려다 그만두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손끝으로 길게 직선을 그었다.
투명한 별의 꼬리를 하나씩 이어 붙였다. 별자리 몇 개는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있었다. 제일 먼저 북극성을 찾았다. 다음으로 계절성군을 살펴봤다. 겨울의 대삼각형이 보였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도 별은 자기 자리를 지켰다. 처음 본 그때처럼 제자리에 그대로 붙어있었다.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별을 닮은 반짝이는 기억들은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프로키온과 시리우스를 지나 베텔게우스로 이어지는 선을 검지로 그렸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면 대육각형도 보였다. 별을 찾는 모험을 하던 시절의 기억들이 하늘 위에 하나 둘 떠올랐다.
밤바다와 밤하늘이 맞닿은 서해의 별은 달처럼 밝았다.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있던 공주에서 우리는 별무리를 봤다. 어린 시절 강원도 깊은 산중에서 아빠와 함께 본 은하수가 생각날 만큼 장관이었다.
서쪽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추억은 남았다. 추운 겨울 텐트와 침낭까지 챙겨서 밤이 새도록 별을 보러 다녔던 시절이 그립다.
오래된 그리움으로 낡은 외로움을 달랬다. 한 걸음 뒤에 따라오는 달을 일행 삼아 걸음을 옮겼다. 가로등 불빛이 사라진 도로를 채우고 있는 어둠을 달빛이 몰아냈다.
앉아있는 까마귀 무리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허공으로 사라졌다. 철야운행을 하는 화물차 몇 대가 텅 빈 시민대로를 지나갔다. 막막한 밤의 터널을 통과하면 새벽을 지나 결국 아침에 닿는다. 삶도 비슷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