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까?

by임풍

해골이라는 어두운 지하 감옥, 그리고 우리가 쥐고 있는 환영에 대해 숙고해 본다. 두개골을 어두운 상황실로 비유할 수 있다.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뇌를 어두운 지하 감옥, 즉 던전(Dungeon)에 비유하곤 한다. 뇌는 칠흑 같은 해골 속 단단한 뼈 벽에 갇힌 채, 외부 세상을 직접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뇌가 바깥세상을 접하는 유일한 통로는 눈, 귀, 피부 등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지극히 제한적인 전기 신호뿐이다. 마치 NASA의 통제실에서 우주선이 보내온 아득한 영상과 소리 신호 몇 가닥만으로 먼 별의 형태와 움직임을 추정하는 것과 같다. 뇌는 이 어두운 상황실 안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추측하고, 가정을 세우며 외부 세계를 재구성한다.

뇌과학의 내부 예측 모델(Predictive Processing)에 따르면, 뇌는 신호를 받아들여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미래를 예측한 뒤, 잠시 후에 들어오는 오감의 정보와 비교하여 그 오류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한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본다고 느끼는 현실은, 뇌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기억과 데이터로 써 내려간 가장 확률 높은 추측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예측과 상상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이 예측과 상상을 혼동한다. 예측은 기존에 축적된 과거의 정보와 규칙을 바탕으로 미래를 추정하는 작업이다. 과거 번호를 비교해서 복권 당첨 번호를 추측해 보는 것처럼, 지극히 희박한 확률을 뚫고 자신의 예측이 들어맞을 때 인간은 강렬한 도파민과 쾌감을 느낀다. 반면 상상은 어떠한 현실적 정보도 없이 그저 자신의 바람과 희망에 따라 미래를 그려보는 완전히 주관적인 작업이다. 문제는 인간이 사용하는 기존 정보 자체가 언제나 불완전하고 주관적이라는 데 있다. 오직 객관적인 데이터로만 미래를 가늠해도 오류가 발생하는데 법인데, 사람은 저마다 다른 주관적 가치관과 신념의 필터를 씌워 세상을 재단한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할 때 수없이 오해하고 다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른 경험으로 구축된 내부 예측 모델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한쪽이 완전히 자신을 꺾고 져주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상호작용이 아닌 일방적인 왜곡에 불과하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주관이라는 격리된 감옥 안에서 세상을 재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진실이라고 믿는 현상들을 조금만 물리적으로 파헤쳐 보면 실체는 더욱 모호해진다. 인간의 눈에는 시신경이 빠져나가는 맹점(Blind spot)이 있어 시각 정보의 일부가 늘 구멍 뚫려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뇌가 주변 정보를 바탕으로 그 구멍을 스스로 메워 그려 넣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마다 뇌가 빚어낸 가짜 그림을 진짜라 믿으며 본다. 게다가 시간의 시차도 있다. 지금 머리 위에서 부서지는 햇살은 사실 8분 18초 전에 태양을 떠난 과거의 빛이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지금의 태양을 본 적이 없다. 항상 과거의 흔적을 지금의 현실로 받아들일 뿐이다. 모든 별들도 먼 과거의 모습이다. 내가 보는 친구의 모습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시간만큼 과거의 모습이다. 더욱 혼란스러운 점은 양자물리학이 밝혀냈듯이 나를 포함한 모든 물질의 미시 세계는 99.99999%가 텅 비어 있는 공간이다. 단지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힘이 만든 착시 덕분에 우리는 단단한 입체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 우주에 고정된 정지 화면이나 영원한 내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하는 에너지의 파동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흐르는 강물을 붙잡으려는 손짓을 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10년 전의 내 사진을 보며 "이게 나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내 몸을 이루는 세포와 원자는 끊임없이 교체되어, 수년 전의 내 몸을 이루던 내용물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수초 전의 나하고도 몸의 구성은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나의 이름, 나의 키, 나의 신분이라는 패턴에 집착하고 그 패턴을 나라고 여긴다. 조금 전에 흘러가 버린 강물을 바라보며, "지금 이 용기 속에 담긴 물이 바로 나의 강"이라고 고집하는 것과 같다. 내용물은 끊임없이 빠져나가고 교체되는데, 우리는 뇌가 만들어낸 그 틀을 나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영화 필름의 연속된 프레임처럼 지나가는 활동사진에 불과한 순간들에 목을 매며, 흥분하고, 좌절하고, 분노한다.

뇌의 한계와 자아의 실체를 깨닫는 것은 허무주의에 빠지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믿는 현실이 실은 뇌의 추측이자 동시에 과거가 만들어낸 흐름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고통과 집착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다. 내가 지금 느끼는 분노, 타인과의 오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외부 세상이 나에게 준 절대적 진실이 아니다. 나의 어두운 뇌 속 상황실이 과거의 데이터를 가지고 급하게 빚어낸 불완전한 예측의 그림자일 뿐이다. 흐르는 강물을 손으로 움켜쥘 수는 없다. 손가락 사이로 물을 그냥 흘려보낼 때 비로소 강 전체를 바라볼 수 있듯이, 내 뇌가 만든 주관적 예측과 패턴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힌 뇌가 그려내는 환영에 속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깨달음이자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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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의식 탐구, 21세기 대응법, 몸과 맘 균형, 유튜브 채널: 아래 웹싸이트(URL) 클릭 연결, 저서: 21세기 인생 해석, 생각하면서 걸어가기,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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