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로즈의 양자 의식 가설
인간의 마음에 관한 질문, 즉 ‘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그동안 주류 뇌과학은 인간의 뇌를 매우 복잡한 슈퍼컴퓨터로 바라보고 있다. 약 860억 개의 뇌세포가 복잡하게 신호를 주고받는 신경망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창발적으로 의식이 생겨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컴퓨터 부품들을 아무리 복잡하게 연결한다고 해서 마음이나 감정이 피어나는지 명쾌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바로 이 한계점에서, 현대 물리학의 거장인 로저 펜로즈와 마취과 의사 스튜어트 해머로프는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부수는 담대한 가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는 블랙홀 형성 원리로 202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의 세계적인 수리물리학자이자, 뇌 속 양자 현상으로 인간 의식을 설명하려 한 거장이다.
1996년 두 사람이 함께 합작 논문(뇌 속 미세소관에서 일어나는 조화된 양자 상태 붕괴, Orchestrated Objective Reduction of Quantum Coherence in Brain Microtubules)을 학술지에 발표하면서 두 사람의 이름이 결합된 'Orch-OR' 가설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들의 가설은 주류 학계의 거센 반론 속에서도, 의식의 비밀을 풀기 위해 현대 물리학과 생명과학을 가장 과감하게 결합한 독보적인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이 제안한 생각의 핵심은 의식이 단순한 뇌세포의 전기 신호 계산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뇌세포 내부에는 세포의 뼈대 역할을 하는 ‘미세소관’이라는 아주 작은 미세 관 구조가 존재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곳에서 미시 세계의 특이한 물리학 현상인 양자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마취제를 맞으면 의식을 잃는 이유 역시 마취제가 이 미세 구조 안의 양자 진동을 멈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나아가 이 미세소관은 단순히 뇌 내부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바탕으로 깔린 아주 미세한 정보와 교신하는 안테나 및 경험 송신기 역할을 한다고 바라본다.
인간의 뇌라는 물질적 구조가 우주의 근본적인 정보망과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는 인간의 의식이라는 눈을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경험하고 인식하게 된다는 유기적인 우주관이다. 이러한 시각은 우리가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과도 깊게 맞물린다.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과 블록 우주론에 따르면 과거와 현재, 미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순차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완성된 4차원 공간의 블록 덩어리처럼 이미 동시에 모두 존재한다. 단지 우리의 의식이 조명등처럼 이미 존재하는 시공간 속의 한 지점을 현재라는 이름으로 비추며 이동하고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과거는 기억, 미래는 상상을 통해 우리의 의식이 언제나 방문할 수 있다.
펜로즈는 이 거대한 시공간 구조 속에서, 한 사람의 삶이 끝나는 죽음 역시 완전히 사라지는 소멸이 아니라고 보았다. 양자 세계에서 정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본 법칙처럼, 우리의 의식을 이루던 양자 정보는 육신이 다할 때 우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거대한 시공간 구조 속에서, 한 사람의 삶이 끝나는 죽음 역시 완전히 사라지는 소멸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을 이루던 양자 정보는 우주 전체의 시공간 직물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돌아가는 회귀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과학이라는 최첨단의 언어로 기술되었을 뿐, 육체의 사멸 이후 영혼이 우주의 근원으로 돌아간다고 믿어온 인류의 오래된 종교적, 영성적 사유와도 연결되는 면이 있다. 기존의 환원주의적 과학(기계론적 세계관)이 죽음은 차갑게 전원이 꺼지는 컴퓨터와 같다고 말할 때, 펜로즈와 해머로프의 가설은 물리학의 개념(양자 얽힘, 정보 보존, 블록 우주)을 이용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재구성된 현대판 영혼론을 제시한 셈이다.
물론 대다수의 현대 물리학자와 뇌과학자들은 이 가설에 강한 의문을 제기해 왔다. 양자 현상은 아주 미세하고 극도로 안정된 극저온 상태나 진공의 환경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데, 따뜻하고 습하며 끊임없이 분자들이 충돌하는 뇌 속 환경에서는 양자 상태가 유지되기도 전에 순식간에 깨져버린다는 것이 기존의 통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새롭게 주목받는 양자생물학 연구들은 이러한 전통적 한계에 흥미로운 반전을 제시한다. 생명체는 놀랍게도 차갑지 않고 복잡한 생체 환경 속에서 양자 현상을 활용하는 방법을 스스로 발전시켜 왔음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식물이 빛을 흡수해 에너지로 바꾸는 광합성 과정이나, 철새들이 아주 미세한 지구 자기장을 감지해 방향을 잡는 원리 등에서 따뜻한 생체 내 양자 효과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이처럼 생명체 내부의 특수한 분자 구조가 주변의 소음과 열을 오히려 이용해 양자 상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최신 물리학적 가능성은 뇌 속 미세소관에서도 양자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펜로즈 가설에 새로운 과학적 숨통을 트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의 과학 기술로는 뇌가 우주의 정보와 진짜로 교신하는지, 죽음 이후 의식이 우주로 돌아가는지를 실제로 측정하거나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이 가지는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과학이 아직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인간의 마음이라는 거대한 신비를 풀기 위해, 미시 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과 거시 세계를 다루는 상대성 이론을 하나의 틀로 묶어내려 한 보기 드문 도전이기 때문이다. 이 가설은 우리 각자를 차가운 우주 공간 속 한 점의 먼지 같은 존재로 보지 않고, 우주의 시공간과 깊게 얽혀 있는 의미 있는 관찰자로 재조명한다. 비록 아직 증명되지 않은 매혹적인 상상력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이는 물질에 불과한 인간과 우주의 거대한 신비를 잇는 가장 대담한 철학적, 과학적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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