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 아빠 양원주입니다.
요즘 아파트 광고에 하이엔드라는 말이 빠지지 않습니다.
‘높은(High)’과 ‘끝/한계(End)’가 합쳐진 단어로, 상품이나 서비스의 ‘최고급’, ‘고성능’, ‘가장 비싼’ 부류를 뜻합니다. 프리미엄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질 무렵, 그보다 한 단계 위라는 뜻으로 하이엔드가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정말 그만큼 높은 수준을 담은 이름인지, 아니면 광고 속 수식어인지 저는 볼 때마다 헷갈립니다.
건설사마다 이름 경쟁도 치열합니다.
현대는 디에이치, 디엘이앤씨는 아크로, 대우는 써밋, 포스코는 오티에르, 롯데는 르엘을 내세웁니다. 이 밖에도 여러 브랜드가 앞다투어 생겨났죠. 2019년 무렵부터 잇달아 태어난 이름들입니다. 반대로 지에스처럼 굳이 새 이름을 만들지 않고 자이라는 본래 이름으로 승부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요즘은 하이엔드가 너무 흔해져서 그 말의 무게가 오히려 옅어졌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죠.
이름은 이렇게 화려해지는데, 정작 집은 제대로 짓고 있을까요? 며칠 전 잠실을 지나다 플래카드 하나를 보며 의문이 더 커졌습니다. 올해 초 입주한 잠실 르엘이 매일경제가 뽑은 살기 좋은 아파트에 선정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단지는 롯데건설이 하이엔드 브랜드 르엘을 잠실에 처음 적용한 곳입니다. 청약 경쟁률이 631대 1을 기록했고, 국민평형 시세가 40억 원을 넘겼다는 보도까지 나온 그야말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최고가 아파트입니다.
그런데 올해 1월 입주가 시작되자마자 지하주차장에서 물이 샜다는 뉴스가 터졌습니다. 소방 배관 볼트가 헐거웠으며 난방을 켜지 않은 빈집 창에는 성에가 얼어붙었고, 결로와 곰팡이로 인해 입주자들에 의한 민원이 쏟아졌습니다. 입주민들은 한겨울 워터파크라는 말을 남겼고, 조합원 백여 명은 영하의 날씨에 롯데월드타워 앞에서 피켓을 들었습니다. 하이엔드라더니 처참하다는 구호가 언론에 그대로 실렸습니다.
그런 단지가 놀랍게도 반년 뒤 재건축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매경과 국토교통부가 1996년부터 이어온 대회입니다. 상 자체를 탓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한겨울에 일어난 웃지 못할 소란과 여름의 영광스러운 트로피 사이에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사실 이런 소식이 밖으로 알려지는 일은 드뭅니다. 하자가 알려지면 단지의 브랜드 값과 집값이 함께 흔들린다는 걱정에, 정작 집주인들이 입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소란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릅니다.
하자는 비단 잠실 르엘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국토교통부 발표를 보면, 최근 5년간 접수된 공동주택 하자 심사 만여 건 가운데 열에 일곱 가까이가 실제 하자로 판정되었습니다. 기능 불량과 균열, 결로, 누수가 줄줄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브랜드는 해마다 근사해지는데, 시공 품질과 판정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후분양제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지만, 산업 위축 우려에 부딪혀 전면 시행되지는 못하고 있죠.
층간소음도 그렇습니다. 정부가 사후확인제를 도입했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사에서는 검사받은 단지 세 곳 중 한 곳이 기준에 미달했습니다.
집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자산이기 이전에 식구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자리입니다. 이름을 잘 짓고 홍보하는 일도 필요하겠지요. 그래도 저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벽이 튼튼한가, 물이 새지 않는가, 위층 발소리에 잠을 설치지 않는가. 플래카드 앞을 지나며 그런 생각에 쓴웃음이 났습니다. 낯선 외국어 이름 하나보다, 하룻밤 편히 자는 집이 진짜 하이엔드가 아닐까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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